정치
2019년 03월 22일 10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22일 10시 15분 KST

[정리] 선거제 개편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국회의 갈등

선거제 개편이 미뤄질 가능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지난 17일 총 300개 의석 중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 75석 도입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 개편안을 마련했다.

 

뉴스1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 3당 대표·원내대표 및 정개특위 위원들이 11일 오전 서울 마포에서 비공개 조찬회동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이정미 정의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

 

첨예한 갈등과 논의 끝에 나온 결과물인 만큼 이번 합의안이 정치권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정치제도 개혁의 물꼬를 틀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듯 하다.

자유한국당의 반발이야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보이콧하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던 자유한국당은 여야4당의 합의가 나온 다음날 ‘독재정권‘, ‘공포정치‘, ‘좌파의 의회장악’ 이라는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들은 탈당까지 거론하며 선거제 개편안 패스트트랙 처리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여야4당은 이번 합의안을 토대로 당내 소속 의원들의 추인을 받아야 한다. 바른미래당이 반대하게 되면 합의안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선거제 개편안이 2020년 총선 전까지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이 부족하다. 바른미래당 내부의 합의 불발은 자칫 선거제 개편의 불발로 이어질 수 있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시작된 갈등

빨간불이 켜진 것은 개편안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선거제 개편안의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 지정을 두고 나왔다.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은 여야 간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쟁점 법안이 국회에서 장기간 표류하는 일을 막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은 일정 기간(최대 330일)이 지나면 상임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거치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에 올라간다”

여야 4당이 선거제도 개편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년도 총선(2020년 4월 14일) 전까지 개편안을 마무리 해야 21대 총선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개편안을 3월 말까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 내년 2월까지는 법안을 통과시킬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선거구를 획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은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이 빠진 상태로 논의를 진행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유승민 의원은 지난 20일 열린 바른미래당 긴급 의원총회에서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끝까지 최종합의를 통해서 했던 게 국회 오랜 전통이었는데 패스트트랙은 결국 숫자로 하는 것”이라며 반대 이유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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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오신환 의원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이날 의총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개편안과 검겅수사권조정 법안 등을 연계해 패스트트랙(신속지정안건)으로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의 반대에는 또다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그리고 민주평화당은 이번 선거법 개편안과 더불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평화당은 ”패스트트랙이 패키지로 가면 5·18 왜곡·날조에 대한 형사처벌법안도 같이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사법개혁안건을 선거법과 패키지로 묶어 처리하는 것에 대해 ‘여당 들러리를 서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지난 20일 바른미래당 긴급 의총에서는 ”선거제도를 다른 법안과 끼워서 협상하는 것은 순수성이 결여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언주 의원은 지난 15일 BBS 라디오에 출연해 ”(민주당이 겉으로는) 패스트트랙을 통해서 연동형 비례제 하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법들을 통과시기 위한 꼼수”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선거제 개편안 추인을 두고 바른미래당 내부 갈등이 드러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패스트트랙 안에 찬성하는 쪽은 구 국민의당계고 반대하는 쪽은 구 바른정당계(정병국·유승민·이혜훈·하태경·이언주·유의동·지상욱·김중로)이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바른미래당의 이번 갈등이 ”정당의 이익과 의원 개인의 이익의 충돌 과정에서 나온 갈등”이라며 ”이념적 갈등이 드러난 게 아니기 때문에 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배수진을 쳤다. ”더 이상의 양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 ”최종적으로 패스트트랙이 무산되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제가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한 도리”라며 원내대표직 사퇴를 시사했다.

 

기회를 엿보는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은 이번 기회를 통해 국면 재편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바른미래당의 내홍을 틈타 바른미래당 보수파를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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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및 소속 의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의회민주주의 말살 선거법 날치기 즉각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15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 한다는 것은 여당의 공수처법 처리에 들러리 서는 것”이라며 ”바른미래당의 양심 있는 의원들의 양식을 믿는다”고 말했다. 20일에도 ”야합 패스트트랙에 대해 우파 야권이 반드시 단결해 좌파 집권세력의 장기독재 야욕을 막아야 한다는 게 역사적 명령”이라며 바른미래당 반대파들에게 손짓했다.

박맹우 한국당 의원은 21일 오전에 ”(바른미래당 반대파들이) 동의하기 어려운 구조 아닌가”라며 ”이로 인해 시스템이 빨리 분열될 것이라 보고, 이번 4·3보궐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면 보수권 대통합의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신율 교수는 바른미래당 반대파들의 움직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았다. 신 교수는 ”반대하는 의원들의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는 자유한국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포석에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스트트랙 처리돼도 과제는 남아

만약 바른미래당의 내홍이 봉합되고 이번달 내에 선거제 개편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야4당끼리 개편안을 통과시키려면 이탈표를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구 숫자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기득권을 뺏길 상황에 처한 의원의 이탈표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신율 교수는 ”민주당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일부 의원에게는 개편안 무산이) 좋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제 개편으로 지역구가 사라지거나 변동되는 의원들은 이번 선거제 개편을 내심 반대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 교수는 ”자신들이 반대하지 않아도 자유한국당이 반대해주니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문제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개편안이 통과한다 해도 선거구 획정을 또 처리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은 규정상 선거 1년 전까지 마무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16대(2000년)부터 20대(2016년) 까지를 통틀어 선거구 획정이 1년 전에 마무리 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16대 - 75일 전
17대 - 65일 전
18대 - 37일 전
19대 - 44일 전
20대 - 42일 전

그런데 만약 개편안이 신속처리안건에서 정한 최대 기간인 330일을 다 채우고 통과된다면 아무리 빨라야 2월 말이 된다. 그때부터 선거구 획정에 대해 논의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게다가 이번 선거구 획정이 선거제 개편 후 처음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빠른 시간 내에 합의는 더욱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선거제 개편을 계속 반대해왔던 자유한국당 입장에서는 선거제 개편이 통과된다 해도 선거구 획정과정에서 계속 반대의견을 내며 시간을 끌 가능성도 높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선거제 개편은 다음번 총선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20년 총선 이후 재편된 의석수를 기반으로 여야가 개헌까지 고려해 ‘새 틀’을 짤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