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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브렉시트 연기를 승인했다. 단, 새로운 조건을 달았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굴욕'이나 다름 없다.

  • 허완
  • 입력 2019.03.22 10:58
  • 수정 2019.03.22 15:41
ⓒEMMANUEL DUNAND via Getty Images

유럽연합(EU)이 EU 탈퇴 날짜를 연기해달라는 영국의 요청을 승인했다. 그러나 EU는 영국의 ‘시간 끌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EU 지도자들은 2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브렉시트 연기 문제를 논의했다. 전날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6월30일까지 브렉시트를 미뤄달라고 공식 요청한 터였다. 애초 영국은 3월29일부로 EU를 탈퇴할 예정이었다.

EU 지도자들은 밤 늦게까지 마라톤 회의를 벌였고, 연기 요청을 승인하되 새로운 날짜를 제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메이 총리는 EU의 제안을 수용했다.

EU는 다음주에 영국 하원에서 진행될 3차 승인투표(meaningful vote)에서 브렉시트 합의안(Withdrawal Agreement)이 통과될 경우 5월22일까지 브렉시트 날짜를 미뤄주기로 했다. 영국은 그 때까지 브렉시트 이행을 위한 관련 법안들을 처리할 시간을 벌게 된다.

반면 브렉시트 합의안이 하원에서 또 한 번 부결되면 영국은 4월12일에 EU를 탈퇴해야 한다. 만약 그 때가서 영국이 브렉시트를 더 미루고 싶다면 EU에 향후 계획을 밝히고 유럽의회 선거 참여에도 동의해야 한다. 장기 연기다. 메이 총리가 거듭 부정적 의견을 밝혀왔던 옵션이다.

ⓒEMMANUEL DUNAND via Getty Images

 

결과적으로 보면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연장을 얻어내긴 했지만 EU가 정한 시간표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됐다. 사실상 주도권을 내준 것이다. 이날 회담에서 메이 총리가 향후 계획에 대해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한 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한 관계자가 ‘아무것도 없었던 90분’으로 묘사한 EU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메이 총리는 자신에게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피할 계획이 있다고 EU를 설득하는 데 극적으로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다음주에 하원에서 합의안이 세 번째로 부결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어떠한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고 한다. 

한 EU 지도자의 측근은 ”메이 총리는 (승인투표에 대비해 의원들을 상대로) 표를 조직하고 있는지조차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투표에서 패배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세 번이나 물어봤는데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끔찍했다. 지독했다. 메이 총리의 (평소 태도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얼버무리는 정도가 심했다.”

EU 지도자들이 합의안이 부결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메이 총리는 이를 통과시키는 플랜 A에 집중하고 있다고만 답했다고 한 관계자는 덧붙였다.

바로 그 때가 ”메이 총리에게 계획이 없으니 우리가 하나 제시해줘야겠다”고 EU 지도자들이 결정한 순간이라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가디언 3월21일)

한 외교 관계자는 EU가 내놓은 제안은 ”노딜 브렉시트가 벌어지더라도 그건 EU가 선택한 게 아니라 영국이 선택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EU는 노딜 브렉시트를 피할 시간적 여유도, 선택의 기회도 영국에게 충분히 줬으니 나머지는 영국의 책임이라는 얘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 시간 넘게 이어진 회담에서 메이 총리는 ”(합의안이 부결됐을 때의 대책에 대해)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고 한 외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크리자니스 카린스 라트비아 총리는 상황이 이런데 ”왜 그렇게 (상황에) 낙관적인” 이유가 뭐냐고 메이 총리에게 물었다.

메이 총리가 자리를 뜨고 나머지 회원국 지도자들끼리 회의가 진행됐고, 이 자리에서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는 메이 총리가 합의안을 통과시킨다면 ”기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또다른 지도자는 영국이 사실상 ”덫을 놓았다”고 평가했다. 실패할 게 뻔한 계획을 들고와서는 EU에게 노딜 브렉시트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Sean Gallup via Getty Images

 

도날드 투스크 EU 상임의장은 회담이 끝난 후 기자회견을 열어 ”영국 정부에게는 여전히 합의안에 의한 브렉시트, 노딜 브렉시트, 브렉시트 장기 연기 또는 브렉시트 취소라는 선택지가 있다”고 말했다.  

“4월12일은 영국이 EU의회 선거를 실시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날짜다. 그 때까지 선거에 참여하기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브렉시트를 장기 연기하는 옵션은 자동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함께 기자회견에 임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EU가 노딜 브렉시트를 비롯한 모든 결과에 대비하고 있으며, 기존 합의를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그는 영국 하원이 합의안을 재차 부결시키면 ”우리는 다음주에 다시 만나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환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와 메이 총리가 지난주에 스트라스부르에서 합의한 것에 대해 영국 의회에서 합의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장기 연기’가 언제까지를 뜻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융커 위원장은 ”맨 끝까지(till the very end)”라고 답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연기 요청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담 내용을 잘 알고 있는 한 고위 외교관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메이 총리에게 ”테레사, 우리 어디로 가는 겁니까?”라고 물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영국이 브렉시트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는 한 EU가 연기 요청을 받아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재앙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고 한다.

FT는 한 EU 외교관의 말을 인용해 두 지도자가 ”거의” 심각한 충돌 단계까지 갔다고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영국의 혼란스러운 탈퇴를 방치하면 역사가 EU를 가혹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영국 의회에서 합의안이 부결되면 노딜 브렉시트가 기본 옵션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 직후 달러대비 영국 파운드화는 1일 기준으로 올해 가장 큰 폭으로 폭락했다고 FT는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영국 시민들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지만 또한 유럽 차원의 프로젝트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지도자들은 영국인들의 뜻을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우리는 또한 우리 EU 시민들의 이해관계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브렉시트에 준비되어 있다. 이건 프랑스가 선택한 게 아니고, 영국인들이 선택한 것이다. 우리가 안타깝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이를 준비할 시간을 가졌다. 유럽 차원의 프로젝트는 계속되어야 하고, 더 강해져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말이다.

한편 영국 재계를 대표하는 CBI(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와 노동계를 대표하는 TUC(Trades Union Congress)는 이례적으로 공동 성명을 내고 노딜 브렉시트의 ‘재앙’을 피하기 위한 대안을 내놓을 것을 영국 정부에 촉구했다.

″우리나라는 국가적 비상사태를 마주하고 있다. 최근의 결정들은 노딜 브렉시트 위험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영국 전역의 기업과 커뮤니티들은 이 결과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은 몇 세대에 걸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우리는 각각 수백만의 노동자들과 수많은 기업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그들을 대신해 정부가 브렉시트 접근 방식을 수정할 것을 요청하기 위해 이 성명을 작성한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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