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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 탄생 신화’ 구지가 논란 불러올 흙방울 출토되다

"가야의 건국신화를 재조명할 중요한 자료가 될 것”

  • 김도훈
  • 입력 2019.03.20 14:14
  • 수정 2019.03.20 14:39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

숫제 위협조로 끝나는 이 노래는 교과서에도 나올만큼 유명한 겨레의 고대 시가다. 2000년전 가락국(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을 비롯한 여섯 가야 왕들의 탄생신화가 깃든 노래, 이땅에서 가장 오래된 집단 주술요이자 노동요로 꼽히는 <구지가>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구지가>는 서기 42년 3월 경남 김해 일대인 가락국에서 처음 탄생한다. 마을사람들의 우두머리인 아홉명의 구간(九干)들이 구지봉 봉우리에서 ‘사람들 있느냐’며 울려오는 신의 소리를 들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구지가>를 익혀 천상에서 내려올 지도자를 부르라는 계시였던 것. 구간들은 수하의 백성들을 구지봉 기슭에 불러 모았다. 신이 일러준 대로 흙을 파헤치고, 춤을 추면서 <구지가>를 힘차게 불렀다. 그러자 하늘에서 황금알 6개가 금궤에 실려 내려오지 않는가. 이윽고 알이 부화되자 준수한 6명의 남자가 나와 각각 6가야의 왕좌에 앉게 된다. 후대 말하는 6가야국 연맹체 시대의 시작이다.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은 가장 큰 알에서 나온 인물로 가장 큰 나라인 금관가야를 이끌어갔다.

김수로왕의 탄생 신화 이야기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 <구지가>가 새삼 입길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금관가야와 맞수 관계로 패권을 겨루었다고 후대에 전해져온 대가야 무덤 유적에서 건국신화의 <구지가> 제의 장면을 이미지로 풀어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미지의 그림이 발견되었다.

문화재발굴기관인 대동문화재연구원은 대가야의 대표적인 유적인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국가사적)의 최근 발굴 성과를 20일 공개했다. 유적 정비를 위해 진행된 이번 발굴 조사에서는 5세기 말~ 6세기 초 조성된 소형 석곽묘(돌덧널무덤) 10기와 돌방무덤 1기가 드러났다고 한다. 가장 뜨거운 눈길을 모은 건 5세기 말께 아이의 주검을 묻으며 만든 길이 165cm, 너비 45cm 정도의 작은 돌덧널무덤이다. 여기서 가야 시조가 탄생하는 장면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들을 선묘로 새긴 직경 5cm가량의 토제방울 1점이 튀어나왔다. 방울의 표면에는 거북등과 관을 쓴 남자, 춤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6종의 독립적인 그림들이 새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섯종의 그림을 현미경 등으로 정밀 분석한 결과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남성의 성기(구지봉), 거북(구지가), 관을 쓴 남자(구간), 춤을 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하늘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금합을 담은 자루 등 가야건국신화의 내용으로 명백하게 해석할 수 있는 도상들이 판별된다고 연구원 쪽은 주장했다.

그림들이 ‘가락국기’에 나오는 가야 건국신화의 내용과 도상적으로 잘 들어맞는다는 말이다. 이런 견해대로라면, 문헌에만 나오던 가야 건국신화의 모습이 유물에 투영되어 발견된 최초의 사례가 된다. 연구원 쪽은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삼국유사>가락국기에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난생신화는 더 이상 금관가야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야 지역 국가들의 공통적 내용일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 앞으로 여러 가야의 건국신화를 재조명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가야의 토제 구슬에 새겨진 미지의 그림들.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작은 석곽묘에서 나온 것이다. 모두 6종이 그려졌는데, 유물을 발굴한 대동문화재연구원은 가야건국신화와 <구지가>의 제의적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가야의 토제 구슬에 새겨진 미지의 그림들.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작은 석곽묘에서 나온 것이다. 모두 6종이 그려졌는데, 유물을 발굴한 대동문화재연구원은 가야건국신화와 <구지가>의 제의적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동문화재연구원

토제방울이 나온 석곽묘에서는 이외에 소형 토기 6점, 쇠 낫 1점, 화살촉 3점, 곱은옥(曲玉) 1점 등과 아이의 이빨, 두개골 조각들도 나왔다. 묻힌 토기나 철기가 대가야산인 것으로 미뤄 생활용품으로 제작된 토제방울 역시 대가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배성혁 연구원 조사실장은 “발굴한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 학계 관계자들한테서 상세한 자문을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울 표면의 도상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구지가>를 비롯한 건국신화의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가야의 토제 구슬에 새겨진 미지의 그림들.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작은 석곽묘에서 나온 것이다. 모두 6종이 그려졌는데, 유물을 발굴한 대동문화재연구원은 가야건국신화와 <구지가>의 제의적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가야의 토제 구슬에 새겨진 미지의 그림들.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의 작은 석곽묘에서 나온 것이다. 모두 6종이 그려졌는데, 유물을 발굴한 대동문화재연구원은 가야건국신화와 <구지가>의 제의적 이야기를 풀어낸 그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동문화재연구원

학계 쪽은 의미있는 발견임에 분명하지만, 방울에 그려진 도상에 대해서는 주관적으로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연구원이 건국신화를 풀어낸 이미지들이라고 해석한 도상들도 보는 이의 식견, 안목에 따라 다른 동물이나 사물의 형상으로도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고구려고분 벽화와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연구해온 전호태 울산대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신중하게 봐야한다는 견해를 폈다. 전 교수는 “암각화를 비롯한 선사시대, 고대의 그림들은 서사적인 줄거리에 따라 도상을 풀어내지 않고 한꺼번에 여러 장면들을 축약시켜 이미지를 풀어내는 양상을 보여주는게 특징”이라며 “작은 토제방울에 여섯종이나 되는 신화의 내용들을 서사적으로 줄줄이 묘사한다는 게 선뜻 설득력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구지가>의 연고지격인 옛 금관가야의 땅 김해 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관심사다.

고령군은 20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적들에 대한 공개 설명회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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