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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20일 09시 46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20일 14시 05분 KST

대학은 어떻게 인문학을 혐오하게 되었나?(영상)

자조적 의미를 넘어 이미 공격적 표현의 무기로 사용된다

각 대학 익명 게시판을 중심으로 인문학과 인문학 전공자에 대한 혐오의 목소리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 쓸데없는 학문을 배운다’, ‘사회에 나가서 할 일이 없다’, ‘관련 전공자들은 여성이 많아 학과 전체가 페미니즘에 물들었다’는 내용의 글들이 ‘문돌이’, ‘문과충’, ‘문레기’ 등의 단어와 섞인다.

허프포스트와 한겨레는 이런 담론이 어디서 비롯됐으며, 실체는 있는지, 어떤 양상으로 퍼지며 무슨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살펴봤다.

익명 게시판에 번지는 혐오의 말들

과거에도 문대생들이 쓰는 “문송합니다”라는 표현은 있었다. “문과여서 죄송합니다”의 줄임말이다. 지난 2018년 1월 암호화폐를 두고 벌어진 JTBC 뉴스룸 긴급토론에서 유시민 작가가 잘 모르는 기술적 표현이 나오자 “제가 문과라서 죄송한데, ‘문송’한데”라고 농을 던져 유명해졌다.

시작은 더 오래다. 2015년 6월에는 SBS 뉴스가 “”인구론·문송합니다”…좌절의 인문계 취업난”이라는 기사를 내며 처음 언론에 등장했다. ‘문레기’와 ‘문과충’ 두 단어 역시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아직 기성 언론 검색에 걸리지 않는 이 두 단어는 각각 2015년 6월과 7월 인터넷 신조어 사전인 ‘디시위키’에 처음 올랐다.

인터넷에서 이 용어의 쓰임을 파악하고자, 검색이 용이하고 신조어 사용이 활발한 디시인사이드에서 해당 단어가 쓰인 글을 검색했다. ‘문레기’, ‘문사철’, ‘문과충’을 2000건씩 검색해 말뭉치를 만들고 함께 쓰인 상위 50개의 단어를 빈도별로 시각화했다. 디시인사이드는 검색어 하나 당 최대 검색 결과 글수가 2000개다.

우선 사용 빈도에서 ‘문과충’이 다른 단어에 비해 월등히 많은 점이 눈에 띈다. 검색 결과 2000개의 시간 분포를 보면 문과충은 검색 날인 3월14일부터 2018년 11월까지 분포하고 있다. 반면 ‘문레기‘의 경우 검색 결과가 지난해 9월까지 더 올라간다. ‘문사철’은 더 멀리 7월까지 간다. 즉 세 단어 가운데 문과충이 가장 빈번하게 쓰이면서 더 짧은 기간에 2000개가 몰려 있는 셈이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문과충은 세 단어 가운데 비하적이고 공격적인 표현과 가장 많이 엮이는 단어다.

취재팀은 세 단어의 게시글 2000개를 단어 별로 쪼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빈도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이 단어들이 “문송” 같은 자조적 의미를 넘어 이미 공격적 표현의 무기로 사용된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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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문사철’은 단어의 함의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주로 ‘국문(또는 어문)·사학·철학’을 줄여 순수학문을 대표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쓸데없는 학문’으로 비하하는 데 주로 쓰인다. 특히 취업 관련된 단어들이 자주 같이 쓰이며 해당 학문 전공자가 일자리를 구하는 데 취약하다는 점이 주 표적이 된 경향을 보인다.

빈도 분석 상위 50개 단어 가운데 문사철에는 문과충이나 문레기에서는 등장하지 않은 단어로, ‘입결’, ‘취직’, ‘학벌’, ‘간판’, ‘로스쿨’ 등이 눈에 띈다. 이런 단어가 쓰인 실제 표현을 보면 ”문사철은 로스쿨 아니면 답이 없다”라거나 ”법학, 경영 같은데 말고 문사철, 어학 이런 덴 왜 감? 진짜로 취직도 안된다며?”라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문사철’이라는 단어가 취업의 잣대로 소비되는 모습은 온라인 공간에서 추락한 인문학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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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레기’ 말뭉치에선 문과 출신을 ‘공부 못하는 놈‘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대학 수학능력 시험에서 이과와 문과가 다르게 치르는 ‘가형‘, ‘나형’ 등의 유형 표현과 ‘기출’ 등의 단어가 이런 경향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단어다. 구체적인 표현을 보면 ”하여간 문레기 병X 새끼들은 가형 3등급이랑 나형 3등급이랑 같은 줄 아네”따위로 무시하는 내용이 보인다. 최근 수능을 본 대학 신입생들이나 재수생 같은 그룹에서 이 단어가 특히 많이 쓰였을 가능성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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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충’ 말뭉치에는 비하적인 표현이 가장 많이 쓰였다. ‘문과충 새끼’ 식으로 낮춰 불러 ‘새끼’가 단어가 가장 자주 등장했으며, ‘병X’, ‘시발’ 등의 비하적 표현 역시 순위권 내에 있었다. 경멸적인 의미의 이 단어는 세 단어 가운데 디시인사이드에서 사용 빈도가 가장 높기도 하다. 또한 ‘문레기’와 마찬가지로 ‘수학’, ‘수능’ 등 입시 관련한 단어도 자주 등장했다.

인터넷의 글을 바탕으로 현상을 살펴볼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이 ‘허수아비 후려치기’다. 허수아비 후려치기란 비판하기 쉬운 소수의 의견이나 허위의 담론을 널리 퍼진 문제처럼 내세워 그 대상 전체가 같은 문제를 지닌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이를 공격하는 형태를 말한다. 일베의 게시글이나 태극기 부대의 발언을 가시화해 보수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디시인사이드에 나타난 글에 한정할 경우 소수 인터넷 트롤들에 의해 만들어진 ‘허수아비’에 속을 위험이 있으므로 실제 대학생들의 내밀한 생각을 살필 수 있는 다른 공간도 찾았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은 학생증 사진을 찍어 보내야 소속 학교 게시판 접근 권한을 부여받을 수 있는 비교적 철저한 회원제 게시판이다. 동시에 모든 게시물을 익명으로 올릴 수 있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취재팀은 서울 시내 3개 대학의 에브리타임 게시판을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5일과 7일, 서울 소재 4개 대학의 거리 인터뷰를 통해 오프라인에서도 실제 대학생들이 느끼는 문과 비하의 현실을 살펴보았다.

먼저 각 대학 익명게시판에서도 인문학 비하 게시물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문사철은 근데 전과 왜 안 하지?”, “난 문관데 이과가 최고다. 문과는 축소되어야 하고. 상경 거르고 다른 문과는 솔직히 학문 계속할 것 아니면 배우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음”, “문레기과 축소 좀 : 노답(답이 없다)이네” 등 인문학 자체를 비하하는 게시물이 다수 있었다.

“역시 문레기는 상경대 빼고 희망이 없나”, “제발 이과애들한테 깝죽거리지 좀 마라 문레기들아”, “문과는 문과 간 거 자체가 멍청한 걸 입증함” 등의 말에서는 경제와 경영 계열을 제외한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을 깔보는 정서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문사철 미친 페미새끼들”, “인문대가 유독 페미가 많은 이유가 뭘까? 인문대가 학문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그쪽 사상과 겹쳐서 그런 걸까? 힘든 취업에 현실을 뒤로할만한 뭔가가 필요해서 그런걸까?” 등의 발언에서는 인문대학과 페미니즘을 엮어 공격하는 양상도 눈에 띄었다.

인문학 혐오의 양상

한발 더 나아가 서울 소재 4개 사립대학교를 찾아 직접 얘기를 들어봤다. 인문대 혐오의 정서는 학생들의 의식과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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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간 동기들은 실생활에서도 ‘아무리 좋은 대학이라도 나중에 취업이나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인터넷을 보면 ‘인문계열 학생들은 취업이 안 되니까 빠른 탈출이 답’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생각이 있으면 복수전공이나 전과를 해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Y대학교 교정에서 만난 중어중문학과의 김다라(가명)씨는 “‘파고다 어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걸 대학에서 배운다’는 얘기도 들었다”며 이렇게 밝혔다. 정시로 대학에 입학한 김씨는 중국어를 현지에서 살다 온 다른 특기자 전형 입학생들만큼 자신 있게 하지 못한다.

김씨는 “그런 말을 접하면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다”라며 “중국어를 잘하면 기도 별로 안 죽을 텐데, 저처럼 정시로 들어온 학생들은 학과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다”라고 밝혔다.

다른 대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J대학의 독어독문과 4학년 나기은(가명)씨는 “(익명 게시판에서) 문충이들, 문과 똘추 새끼들이라는 표현을 봤다. 현실에서 그런 말을 직접 한 사람은 없었는데, 익명의 공간에선 그런 발언이 난무한다”라며 “우리가 하면 자학이니까 우리끼리는 할 수 있는데 비인문대생이 하면 ‘왜 저럴까?’ 싶다. 우리에 대해 모르니까 함부로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밝혔다.

S대학 영문과 2학년 정대진(가명) 씨는 “대학은 취업을 위한 곳이 아니라 학문을 하는 곳이라 필요 없는 전공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인문대생으로서 (그런 글을 보면) 화가 난다”라며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인문대생이 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J대학교 문헌정보학과 2학년 장선호(가명) 씨는 “실생활에서는 ‘문레기’ 정도를 들어봤는데, 친한 사람들끼리니까 그냥 넘어가기는 하지만, 웃어넘기기가 쉽지는 않다”라며 “익명 게시판에서의 혐오 발언의 정도는 굉장히 심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특히 인문계열 학과생은 여성 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여성 혐오의 범주와 겹치는 발언을 접하는 일도 흔하다. J대학교 독문과 4학년 신수혜(가명) 씨는 “페미니즘과 인문대를 향한 비난이 매우 비슷한 양상을 띠는 것 같다”라며 “(학내 성희롱 관련한 대자보가 자주 올라온다는 이유로) ‘대자보학과’, 따옴표를 쳐서 ‘그 학과’라는 표현을 쓰는데 무척 모욕적이다”라고 밝혔다.

같은 대학의 장선호 씨 역시 “‘문레기’·’문과충’ 등의 단어 중 가장 저열하다고 느꼈던 건 ‘그 학과’라는 말이었다”라며 “문과대에 여학우가 더 많다는 점을 들어 페미니즘을 비하하면서 동시에 문과를 비하하는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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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일부 기업에서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이유로 특정 학과의 졸업생들을 ‘골치 아픈 학과 출신’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여성이 다수인 인문대를 대상으로 타과 학생들이 낙인찍기를 한다고도 볼 수 있다”라며 “그런 흐름에는 ‘옆에 있는 똑똑한 여성이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곽덕주 교수는 “‘교육=취업’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과 태도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한 인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특히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진 인문대 여학생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입학 성적이나 취업률이 더 높다는 것을 근거로 공격하는 일부 학생들은 무의식중에 잘못된 우월의식을 내면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다만 인문학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과 공격을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혐오’로 완전히 포섭해 다루기엔 무리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홍성수 교수(‘말이 칼이 될 때’ 저자)는 “이를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혐오‘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라며 “혐오는 구조적인 ‘차별‘에서 기인한다. 표적 집단이 소수자 집단으로서 어느 정도 확고해야 하고, 또 가해 집단도 일종의 ‘이데올로기’로서 혐오를 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이어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호모포비아 등의 사회적 혐오 현상과 비교할 때 인문학 혐오가 그 정도의 양상을 띄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로서는 ‘편 가르기’ 현상 정도로는 볼 수 있다”라면서도 “다만 앞으로도 이 현상이 계속되어 특정 집단을 희생양으로 삼아 근거 없이 비난하고 공격하고, 그 집단에 대한 차별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된다면 인문학에 대한 혐오로 볼 여지가 생긴다”고 밝혔다.

혐오의 정서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공과대학생들 모두를 이런 혐오 발언의 가해자로 여기는 건 잘못된 일이며, 혐오 발언의 주체는 ‘익명 뒤에 숨어 다수를 가장한 소수일 뿐’이라는 지적 역시 옳다. 거리 인터뷰에서 만난 공과대학교 소속 학생들은 인문대생을 향한 혐오를 ‘소수의 장난’으로 인식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후 올해 Y대학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에 입학한 전성철(가명)씨는 “익명게시판이라는 특성이 본인의 개인 정보를 밝히지 않으니까 자기의 생각을 여과 없이 더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인 것 같다”라며 “그래서 현실에서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에 비해서 좀 더 폭력적인 표현도 나오는 것 같다. 그게 관심을 끌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S대학교 공학부 2학년이라고만 밝힌 박인수(가명)씨 역시 “보기는 봤는데, 진심인지 장난인지 모르겠더라”라며 “문레기나 문과충 같은 단어는 문과 자신들도 개그 소재로 썼던 단어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는 공대에 엘리트 정서가 퍼져 있는 것 역시 사실이라고 말한다. J대학교 에너지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최지연(가명) 씨는 “동기로부터 ‘(자신이) 인문대생에 대한 편견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인문대는 탁상공론이나 하는 것 같고, 게네가 공부하는 게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고 밝혔다. 최씨는 이어 “은연중에 조금씩 (문과대를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다”라며 “교수님 중에 한 분이 ‘공대생이 다른 자연대나 인문대와 다른 게 뭔지 아느냐. 우리는 돈을 만지지만, 그 사람들은 돈을 만질 수가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같은 대학교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인 강인성(가명)씨는 “(문과대를 비하하는 정서는) 학부 때부터도 많이 들었던 얘기다”라며 “공대생과 문대생 사이에는 너무도 견고해서 절대 허물어지지 않는 벽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강씨는 이어 “결국에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돈을 더 벌고, 더 좋은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인데, (대학을 졸업해서) 그게 담보되지 않는다면 굳이 학교에 온 이유가 뭐냐”라며 “자기만족을 위한 선택이냐 미래의 진로를 위한 선택이냐를 놓고 견주면 그런 말도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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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교수는 “한 공과대학 교수의 ‘공대만 돈을 번다’는 취지의 발언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주소와 인문교육의 실패를 말해주는 것 같아 정신이 퍼뜩 든다”라며 “기성세대인 우리가 무의식중에 아이들을 문화와 교양과 사상의 가치를 배제하는 경제적 속물로 몰아간 것은 아닐까 싶다. 돈이나 물질만이 아니라 추구할 가치가 있는 다른 ‘중요하고 다양한 가치’, 예를 들어 개인의 정치적 자유라든가 자신만의 경험이 주는 내적 즐거움과 같은 삶의 질적인 측면도 좋은 삶에 필수적 구성요소로서 가치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들은 한 가지 기준으로 측정될 수도 대체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일부로 추정되는 학생들이 혐오의 정서를 퍼뜨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의견이 대부분 일치했다. Y대학교 신소재공학과 2학년 강영재(가명) 씨는 “솔직히 공대 공부가 재밌어서 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취업을 염두에 두고 공대에 가는데, 이게 잘 풀리지 않아 취업 시장에서 약자가 됐을 때 상대적으로 (박탈감 같은 걸) 더 심하게 느끼는 것 같다”라며 “취업만 보고 공대에 왔는데 그 목적이 흔들리니까 커뮤니티 등에서 상대적인 약자를 공격하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게 아닐까 싶다”라고 밝혔다.

“졸업 후 취업에 진로의 포커스를 맞추고 대학에 다니기 때문에 그런 조롱을 한다고 생각한다”(전성철), “취업을 근거로 줄 세우기를 하면서 그래도 쟤보다는 내가 낫지 라면서 자기 위안을 하는 동시에 남을 깎아내리는 정서가 만연해 있다”(최지연), “자기 인생에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인생에 자신감이 있으면 굳이 나랑 남이랑 비교를 안 해도 되는데 뭔가 자존감을 이상한 데서 찾는 것 같다”(Y대학교 문헌정보학과 3학년 한예인, 가명)는 내용이 학생들의 증언에서 반복됐다.

몇몇 학생은 고등학교 때부터 답습해 온 ‘줄 세우기 문화’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꼬집기도 했다. 최지연 씨는 “이는 공대에만 국한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경대(경영·경제대학) 학생들도 생각보다 심하다”라며 “경영대 학생 중에는 (고등학교) 문과 출신이 훨씬 많은데도 본인들은 어문이나 순수 인문과 조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보이더라”라고 밝혔다. 공대 박사과정인 강인성 씨가 “문과라도 다 안 좋게 보지 않는다. 사학과처럼 너무 학문만 파는 데가 아니면, 경영이나 경제학부 쪽은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말이 이 흐름을 잘 보여준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의 곽금주 교수는 “일종의 편 가르기라고 할 수 있다. 소수인 순수인문학문과 나머지 학과로 편을 가르고 공격하면서 알량한 우월감을 드러내는 격인데, 남을 비난하는 데는 쾌감이 따른다”라며 “인터넷을 중심으로, 남을 비난하며 쾌감을 느끼는 행태가 사회 전반에 일본의 ‘놀이 문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대입을 위한 줄 세우기가 대학까지 강하게 이어지는 이유는 대학이 취업 입시의 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취재를 위해 찾은 교정에서 두 명의 학생이 “너도 스파?”, “나도 스파. 스파가 답이야”라며 주먹을 부딪쳤다. ‘스파’는 공인회계사 시험의 영어 약자인 ‘CPA’(Certified Public Accountant)를 줄여부르는 말이다.

우연히 만난 대학교 2학년 학생 두 사람이 공인 회계사에 뛰어드는 이 상황은 대학이 취업 입시의 장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앞서 언급한 강인성 씨의 “결국에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돈을 더 벌고, 더 좋은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라는 발언을 생각하면 학생들은 대학의 교육을 경제·사회적 지위 획득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취업률로 학문의 높낮이를 결정짓는 문화가 이를 증명한다. 익명 게시판에서는 학과별로 서열을 구분 짓기 위해 묶어서 레이블링 하는 단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문사철’, ‘건도토’(건축학과, 도시공학과, 토목공학과), ‘전화기’(전기전자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 ‘경경’(경영+경제) 등의 줄임말로 서로를 깔보고 조롱한다. 주로 부등호를 사용해 ‘전화기>건도토>문사철’식으로 표현한다.

취업률과 함께 학과의 서열을 결정 짓는 요소는 입학 당시의 성적이다. 영상 인터뷰를 거절한 한 S대학생은 “우리 학교는 문과대의 입결(입시 결과)이 더 높아서 인문대를 깔보는 풍토가 없다”고 답했으며, Y대학의 한 인문대 학생은 “막상 입결을 보면 얼마 차이가 나지도 않는데, 하고 싶은 학문을 하면서 깔보이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처음 대학에 들어올 때의 ‘입시 결과’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학문의 학내 위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시선을 두 발언에서 감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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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혐오는 교육의 실패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이 현상을 크게 보면 “교육의 실패”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가 봉건적 가부장제가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돈을 못 버는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문화가 형성됐다”라며 “돈 없는 사람을 천시하고 그런 직업을 낙인화 하는 흐름이 대표적인데, 지난 10년간 소위 ‘돈이 되는 학과’에 지원을 몰아 주고 산학 협력을 통해 기술 교육을 강조한 교육 정책이야 말로 이런 시장의 돈 담론을 대학에까지 전염시킨 주체다”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중등 교육이 입시 학원화 된 지 오래인 상황에서 대학은 사회로 나가기 전에 가치를 배우고 실습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라며 “지금의 학생들은 대학에서 ‘나 혼자 잘 살면 된다’는 가치를 학습하고 있다. 교육의 실패다”라고 밝혔다.

취업 경쟁이 과열된 상황에서 대학을 취업의 통로로 보는 학생들의 관점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한 가지 관점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논리가 될 때는 문제가 된다.

곽덕주 교수는 “‘교육’과 ‘취업’을 완전히 떼어놓고 볼 수는 없지만, 이 둘을 직접 연결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교육을 국가의 경제 성장이나 개인의 입신양명의 도구로 삼던 개발주의 시대 사유의 산물”이라며 “이제는 이 두 영역이 각각의 자율적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이라는 생각에 기초한 보다 장기적인 관점의 교육 정책과 노동, 고용정책의 연계가 필요한 시대이다”라고 덧붙인다.

곽 교수는 이어 “인문학의 유용성은 당장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라며 “그러나 이러한 성찰의 인문학을 체계적으로 배척한 사회의 경우 그 폐해는 매우 심각할 수 있다. 중국의 문화 대혁명의 실패가 그 좋은 예다”라고 밝혔다.

균형의 교육이 필요하다. 곽교수는 “그간에도 인문학 무용설 담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른 전 세계적인 경향”이라며 “그러나 과학과 인문학의 전쟁으로 통칭되는 이 논쟁은 학술적인 수준에서는 대개 대학의 인문 교양 교육에 과학이 어떻게 본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의 쟁점이었으며, 두 학문 간의 균형에 대한 문제이지 특정 학문의 헤게모니를 인정하자는 주장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홍성수 교수의 ”아직은 사회 현상으로서의 혐오로 볼 수 없다”라는 말에도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등 교육의 현장에서 번진 이 국소한 현상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기 전에, 아직은 바로 잡을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패한 교육이 균형의 널뛰기를 해야 할 때다. 

취재 박세회 이윤섭 이소정
데이터분석 권오성(한겨레)
영상편집 이윤섭 이소정
그래픽 김예진 박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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