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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인권-하편] 한국은 그들의 사회 복귀를 막아 세운다

취업, 실업급여 제한 등 기본권 침해가 심각하다

  • 최성진
  • 입력 2019.03.21 13:51
  • 수정 2019.03.21 14:06

2018년 수사기관이 적발한 마약류 사범(마약사범)은 1만2613명이다. 한국의 마약 중독자가 이미 10만명을 넘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최근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을 중심으로 ‘물뽕’ 투약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이달 초 대대적인 마약류 합동점검을 예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가정보원, 대검찰청, 경찰청 등 9개 관계부처가 나선다. 마약류 사용이 의심되는 취급자에 대한 합동점검과 특별단속도 이뤄진다.

많은 중독재활 전문가는 단속과 처벌 중심의 접근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검거 실적’이라는 숫자를 지나치게 앞세우다 보면, 마약 중독자의 재활과 인권이라는 가치가 소홀히 다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수사와 구금, 이후 재사회화 과정에서 마약 중독자가 겪는 인권침해 사례를 상·하로 짚어봤다.

ⓒDmitro2009 via Getty Images

마약 중독자의 ‘인권 타임라인‘은 거꾸로 흐른다. 마약사범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일반적 인식은 ‘그러게 누가 마약을 하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약 중독을 사회 구조의  문제에서 찾는 게 아니라 개인의 일탈로 보는 경향이 강한 탓이다.

대다수 중독재활 전문가는 마약 중독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을 줄이려면, 중독자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로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박진실 변호사는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치료현황 및 대책에 대한 연구’(2015년) 논문에서 ”미국에서는 중독을 개인의 사회적, 심리적 결핍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맥락에서 바라본다. 이에 따라 마약류 중독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중독을 범죄보다는 질병으로 여기고 치료와 재활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기울인다”고 소개했다.

마약 중독을 질병으로 바라볼 것인지, 범죄로 접근할 것인지는 서구 사회에서 이미 충분히 다뤄진 쟁점이다. 187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정부가 부모의 권위에 반항하는 젊은 세대의 아편 흡연을 금지하려고 만든 ‘아편법‘(Opium Den Ordinance) 이래로 여러 나라는 형사처벌 중심의 엄벌주의 정책을 여러 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이런 법률들은 거의 효과가 없었고, 때로는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했다.(‘마약의 역사’ 150쪽 참고)

이에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약 중독을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뇌질환의 일종’이라고 규정하며 중독을 질병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의학계에서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장기간 투약한 사람에 대한 뇌 검사를  실시해보니 80살 노인 치매환자 상태와 비슷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마약 중독자에 대한 엄벌주의의 태도를 거의 버리지 않고 있다. 마약류 제조 및 판매사범과 단순 투약자를 크게 구분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대검찰청의 마약류 범죄백서(2017년)를 보면, 교정시설에 수감된 마약사범 중 단순 투약사범은 52%에 이른다. 소지사범(7.1%)과 더하면 60%에 육박한다. 반면 공급(밀조·밀매·밀수)사범은 28%에 그쳤다. 

단순 투약자까지 치료·재활이 아닌 형사처벌 대상으로 접근하는 사회는 마약 중독자의 인권을 쉽게 외면한다. 마약 사건을 다루는 검찰·경찰의 무리한 함정수사와 실적주의, 마약사범에 대한 교정당국의 차별적 처우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교정시설에 수감된 마약사범의 인권침해에 관한 내용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에 따르면 부산구치소에 수감중인 윤아무개씨는 지난해 8월 지인으로부터 몇권의 책자를 받아보려고 했다. 윤씨가 읽고자 했던 책자는 ‘국민권위위원회가 우편으로 보낸 공익신고제보 관련 안내책자‘, ‘부산시청이 보낸 부산광역시전도‘, ‘지인이 발송한 ‘구금시설 교정관련 법규집(A4 용지 출력물)’ 등 세 건이다.

부산구치소는 윤씨의 도서 반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약류 반입 등을 차단함으로써 마약류 수용자를 보호하고 시설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처”라는 것이 부산구치소장의 설명이다.(2018년 10월15일 민원회신)

부산구치소의 주장에는 나름의 법적 근거가 있다. 형집행법 시행규칙에서는 마약류 수용자를 ‘엄중관리 대상자’로 보고, ”소장은 수용자 이외의 사람이 마약류 수용자에게 물품을 교부하려고 신청하는 경우에는 마약류 반입 등을 차단하기 위해 신청을 허가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마약류 반입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물품”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했다.(207조) 마약사범의 도서 반입 요구를 교정시설 관리자의 판단에 맡겨 놓은 것이다.

부산구치소 측에서는 마약류 차단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마약류 수용자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로 교정시설에 입소하고 있으며, 교정시설 입소 뒤에도 마약류를 흡입하기 위해 외부인을 동원하는 등 각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 부산구치소의 주장이다. 실제로 LSD 등 아주 적은 양으로도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마약류는 과거 책자와 만화, 심지어 우표 등에 흡수된 형태로 유통되는 사례가 있었다.

다만 부산구치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중대한 모순이 있다.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마약류 수용자도 서신이나 소송 관련 서류는 주고받을 수 있는데, 구치소의 주장대로라면 이런 문서가 마약류 반입에 활용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편지나 소송서류는 되고 A4 용지 출력물만 안 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에 강 사무국장은 ”마약류 반입 차단을 위해서라면, 도서 반입을 원칙적으로 불허할 것이 아니라 별도의 마약류 탐지 장비를 도입하면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인권위 진정이 이뤄진 뒤에도 (3월15일까지) 부산구치소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도서반입도 허락하지 않는 교정당국의 경직된 수용 정책에 대해 마약 중독자는 비참함과 분노를 함께 나타낸다. 이는 마약류 반입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는 교정당국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파트 건설업을 하는 이동욱(48)씨는 2001년부터 2016년까지 마약류 투약 혐의로 여러 차례 실형을 선고받았다. 북쪽으로는 의정부교도소부터 남쪽으로는 대구교도소까지 많은 교정시설을 경험했다. 

″책 반입은 원래 안 됐어요. 저는 그런 게 웃기다는 거에요. 교도소나 구치소에서도 사람을 사귈 수가 있고, 친구가 생길 수도 있잖아요. 정말 내가 어떤 책을 받아보고 싶다면, (서신 왕래는 가능하니) 집에 편지를 써서 ‘어떤 책을 보내되, 내가 아니라 옆 방 103번 홍길동한테 보내줘’ 이렇게 하면 되거든요.”

이씨가 교정시설에서 경험한 마약사범에 대한 차별적 처우는 도서 반입금지 조처만이 아니다. 그의 주장은 좀더 이어진다.

″그것보다 비참한 일들도 많아요. 2008년께였을 거에요. 인천구치소에 있다가 형이 확정되어 대구교도소로 징역 살러 갔거든요. 그때가 한겨울이었는데, 교도관이 제가 갖고 있던 이불과 속옷, 양말을 모두 물에 담구는 거에요. 내가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항의했더니 마약사범이라서 그런다는 거에요. 마약은 물에 녹으니까요.”

ⓒst_lux via Getty Images

마약 중독자가 느끼는 인권침해는 무엇보다 그들이 사회에 복귀할 때 가장 아프게 다가온다. 마약 중독자라는 낙인을 스스로 무시하기에는 이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아직 차갑기만 하다.

한겨레 기자로 일하던 허재현(38)씨는 지난해 5월 필로폰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 해고 소식을 들었다. 주된 해고 사유는 그가 ‘형사소송의 원인이 되는 불법 행위 및 규정 위반’ 등을 금지하고 있는 사규를 어겼다는 것이다.

현직 기자가 마약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큰 파장으로 이어졌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억의 바다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단 한 명이 있다면 그건 분명 허씨다.

″악몽을 꿀 때가 많아요. 경찰에 붙잡히거나 재판받는 장면이 꿈에 등장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제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저를 비난하는 장면만 자꾸 떠오르는 거에요. 아직도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워 어떤 모임에 초대받아도 대부분 거절하고 있어요.”

허씨가 그 사건으로 겪은 가장 큰 삶의 변화는 자존감의 추락이다. 현행 법과 제도는 사회에 복귀하려는 그의 시도를 번번이 가로막았다. 그는 ”분명 잘못을 저지른 것도 맞고 여전히 그때 일에 대한 반성과 후회를 거듭하고 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나를 마약 하나로만 평가하고 있는 것같아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택시기사로 일해보려고 문을 두드린 택시업체에서는 ‘마약 전과가 있어서 어렵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행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24조)에서는 마약관리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의  운전업무 종사 자격을 2년간 제한한다.

해고에 따른 실업급여 수급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센터 직원은 허씨에게 ‘중대한 귀책사유로 해고됐다’(고용보험법 58조)는 이유를 들어 실업급여 신청을 거부했다. 생계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고용센터가 그의 실업급여 수급 자격을 인정하겠다고 통보한 것은 지난 1월이다. 노무사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그가 반년 넘게 ‘투쟁’한 결과다.

허씨는 최근 몇몇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 ‘중독회복연대’(가칭)라는 이름의 시민단체를 직접 꾸렸다. 마약 중독자가 겪는 인권침해 사례를 사회에 고발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 주된 목표다. 곧 마약 중독자가 수사 및 구금, 그 이후 재사회화 과정에서 겪는 인권침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낼 예정이다.

허씨는 ”세계 각 나라에서 마약 중독자의 건강한 사회 복귀를 돕는 수많은 NGO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만 없다”며 ”중독회복연대를 통해 마약 중독자의 회복을 가로막는 한국 사회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는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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