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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컨설팅 업체는 어떻게 자영업자의 등을 처먹나?

욕망을 파고들어 호황을 누린다

자영업 약탈자들-①창업 컨설팅의 실

편집자주>한국은 사실상 세계 1위 자영업 국가다. 대략 한해 100만여명이 새로 창업하고, 80만여명이 폐업한다. 고용 규모로 보면 대기업 몇곳이 매년 생겼다 사라지는 셈이다. 이 거대한 창업 시장의 회로를 돌리는 ‘신흥 엔진’이 ‘창업컨설팅’이란 이름의 산업으로 존재한다. ‘권리금’이라는 연료를 태워 돌아가는 이 신흥 엔진은 자영업자들의 소박한 꿈과 정직한 땀마저 함께 갈아넣어 삼켜버린다. 자영업자에게 기생해 번성하는 컨설팅의 세계를 3차례에 걸쳐 깊이 들어가본다.

ⓒ한겨레

권리금 6천만원짜리 가게가 ‘무권리’가 되는 데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돌연 보름 만에 다시 2천만원의 권리금이 붙어 매매됐다. 모두가 창업컨설팅 업체의 ‘장난’이었다. 권리금은 언제든 장난칠 수 있는 ‘고무줄’ 같은 것이다.

서울 시내 한 여대 앞 네일숍의 ‘권리금 누르기(깎기)’ 작업은 지난해 6월 초 시작됐다. 창업컨설팅 업체들은 문을 연 지 6개월이 넘은 가게를 대상으로 담당자를 지정해 몇달씩 집요하게 ‘누르기’ 작업을 진행한다. 창업컨설팅 업체 ○○○○의 담당자는 서유한(이하 모두 가명) 팀장이었다.

첫 통화에서 서 팀장은 네일숍 점주인 김현수(50대)씨에게 매장 매매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김씨는 권리금 6천만원을 받지 못하면 팔지 않겠다고 했다. 권리금 5천만원을 포함해 가게를 인수하고 새로 꾸미는 데 1억원 넘게 투자한 김씨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본전’이었다.

서 팀장은 내부 전산망에 금액을 입력하고 물건 등급은 ‘보류’라고 적었다. 보류 매장은 매매할 의사가 없진 않지만, 권리금 누르기를 시작하지 않은 매장을 의미한다.

누르기 작업은 2개월 뒤 시작됐다. 다시 전화를 걸어 “네일 점포 찾는 손님이 있는데 가격을 좀 낮춰서 진행해보실 생각이 있느냐”고 간 보기에 나섰다.

손님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장사가 잘 안돼 고민하던 김씨는 솔깃해졌다. “다른 매장도 여러개 보여줬는데, 이 매장을 유독 마음에 들어 하시네요. 근데 권리가 하도 무거우니까 조정을 해서 진행하시면 어떨까요.” 이 통화에서 김씨는 권리금을 1천만원 낮췄다. 서 팀장은 손님에게 브리핑하겠다며 최근 1년 매출 현황도 받아갔다.

ⓒ한겨레

서 팀장은 그 뒤로 한달이 넘도록 연락하지 않았다. 매도자의 애를 태우는 ‘뜸 들이기’가 시작된 것이다. 첫 권리금 인하 작업을 시작하면서 물건 등급은 ‘관리’ 단계가 됐다. 한번 누르기에 성공하면 가속도가 붙는다.

10월부터 본격적인 권리금 누르기가 시작됐다. “겨울방학 비수기 들어가시기 전에 무조건 파셔야죠. 비수기에는 손해 많으시잖아요. 권리 3천만원만 더 쓰시죠.” 현재 권리금 5천만원에서 무려 3천만원을 더 깎자는 말에 김씨는 당황했다. “요즘 그 동네 시세 모르시는 거 아니죠? 겨울방학 들어서 매출 더 떨어지면 그것도 못 받고 그냥 던지셔야 해요.”

이날 권리금은 2천만원 더 내려갔다. ‘밀당’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졌다. 김씨는 손톱관리 기술이 없어 직원을 3명이나 두고 있었다. 권리금으로 최소한의 본전은 챙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서 팀장이 가격을 후려치자 한푼도 건지지 못할 수 있겠다는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김씨는 매출이 더 떨어지는 겨울방학 전에는 무조건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눈치챈 서 팀장은 작업일지에 ‘1천만원 인하 더 가능할 듯’이라고 기재했고, 실제 보름 뒤 500만원을 추가로 깎았다. 6천만원이던 권리금은 세번의 통화로 2500만원이 됐다. 그사이 손님은 단 한번도 붙이지 않았다.

‘권리금 후려치기’는 서 팀장이 창업컨설팅이란 정글에서 10년을 버텨온 생존법이다. 평소 신입 직원들을 향해 “권리금을 누를 때는 점주가 화를 낼 만큼 확실히 후려치라”고 강조한다.

5천만원에서 시작했는데 3천만원을 깎자고 하면 처음에는 놀라지만 그래야 현실을 자각시켜 1천만원, 2천만원이라도 깎을 수 있단 얘기다. 서 팀장의 목표는 언제나 ‘무권리’다.

반협박을 넘어 흠집 내기도 서슴지 않는다. ‘네일은 찾는 손님도 적다, 학교 앞은 계절을 타서 매출도 좋지 않다, 애써봤지만 다른 매장에 비해 경쟁력이 없어 손님이 붙지 않는다’ 따위의 말을 이어간다.

이때가 무권리를 권하는 타이밍이다. “겨울방학 전에 내놓으시려면 신규(권리금 없는 매장)로 가시죠. 신규는 무조건 무권리인 거 아시죠?” 11월12일 권리금은 500만원까지 내려갔다.

김씨는 매출 부진과 컨설턴트의 혼 빼기가 겹쳐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11월 중순부터는 무권리로도 넘길 테니 팔아만 달라고 오히려 김씨가 사정하기 시작했다. 서 팀장은 여전히 손님을 붙이지 않았다. 결국 권리금은 ‘0’이 됐다.

서 팀장이 처음 손님을 붙인 건 11월 말이었다. 네일숍 직원으로 1년 넘게 일하다 30대에 접어들며 사장님을 꿈꾸게 된 이미선씨였다. 창업 정보를 어디서 알아봐야 할지 몰랐던 이씨는 인터넷을 뒤적이다 창업사이트에 연락했다.

서 팀장은 이씨에게 매장을 보여주며 점주 김씨에게 하던 말과 정반대로 설명했다. “여대 앞이면 괜찮은 입지다. 네일 수요가 많은 곳이다.” 원래 권리금은 3천만원 이상 받아야 하지만 2천만원까지는 최대한 조정을 해주겠다고 했다.

대신 빨리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무권리로 떨어졌던 매장이 갑자기 3천만원짜리 매장으로 값이 올랐다. 인수 결정은 딱 일주일 걸렸다. “카페 하시려는 분이 인수하시려고 해서 빨리 결정해주셔야 해요. 계약금만 우선 넣으시든가요. 계약 안 되면 돌려드려요.” 수시로 재촉이 이어졌다.

이씨는 ‘어차피 할 가게, 행여 다른 사람에게 팔릴까’ 두려웠다. 계약금과 컨설팅 수수료를 포함해 600만원을 급하게 만들어 건넸다. 나머지 권리금은 전세금을 빼서 마련했다. 권리금이 부담스러웠지만 매출 자료도 확인했고, 초보도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입지에 기대감이 앞섰다.

이씨가 권리금으로 낸 돈은 2천만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1천만원을 컨설팅 업체가 챙겼다. 이씨한테서만 1400만원의 수수료를 받은 것이다. 계약날까지 김씨와 이씨는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오직 서 팀장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었다.

“알바생들은 매장 파는 거 모르니까 찾아가서 얘기하시고 그러시면 안 된다. 사고 싶어 하는 것 티 내면 권리 조정도 어렵다”는 서 팀장의 말에 이씨는 남은 재료나 매출, 직원 정보 등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한겨레

그렇게 이씨는 지난해 12월15일 번갯불에 콩 볶듯 가게를 인수하고 ‘사장님’이 됐다. 하지만 문을 열 수가 없었다. 풀오토(주인이 운영에 개입하지 않는 대신 관리자를 두고 수익만 가져가는 가게) 방식으로 일하던 직원들이 사장이 직접 운영한다고 하자 그만두겠다고 했다.

서 팀장은 직원들도 이어받아 운영할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책임지지 않았다. 재료도 다 그대로 넘겨받는 조건이었지만 전 주인이 굿바이 세일을 하면서 남은 게 별로 없었다. 이미 계약은 이뤄진 뒤였다. 급한 대로 300만원어치를 주문했다.

장사하지 못하는 기간(한달 반)에 360만원의 임차료가 날아갔다. 인터넷과 폐회로티브이(CCTV), 포스(판매정보관리시스템) 등 50만원이 넘는 고정 비용까지 옥죄어왔다.

드디어 1월 말 가게를 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풀오토로 월 300만원대 매출이 나오기 때문에 직접 운영하면 500만원대까지도 가능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왜 장사를 시작했는지 모르겠어요. 주말도 안 쉬고 하루 종일 일해도 인건비조차 안 나와요. 임차료를 비롯한 비용으로만 월 900만원이 들거든요.”

이씨의 지금 목표는 월 100만원을 남기는 것인데, 그마저 쉽지 않을 것 같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최저임금 관련 뉴스가 눈에 들어오고 “네일숍 직원이 사장보다 더 많이 번다더라는 우스갯소리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어디다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이 이씨 분노의 타깃이 됐다. 권리금 2천만원의 절반을 수수료로 낸 전 주인 김씨는 오히려 서 팀장에게 고마워했다. “어떻게 해도 안 나가던 매장을 팔아주니까 마지막엔 고맙더라고요. 본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권리금도 좀 챙겨줬고. 그냥 폐업했으면 철거 비용까지 물어야 했을 텐데….”

이씨는 큰돈을 가져가고 연락도 없는 컨설턴트가 야속하지만 번호를 지우진 못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팔고 나가려면 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컨설턴트는 “이 자리는 무조건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권리금으로 손해를 메워야 하는 자영업자들. 창업컨설팅 업체는 그 욕망을 정확히 파고들어 오늘도 호황을 누린다. 가해와 피해의 경계가 모호한 ‘권리금 폭탄 돌리기’, 그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서 팀장은 연봉 1억원을 목표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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