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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인권-상편] 지난 겨울, 그는 경찰의 '마약수사 끄나풀'로 일했다

선처를 앞세워 은밀한 '수사 협조' 요구를 했다.

  • 최성진
  • 입력 2019.03.21 10:11
  • 수정 2019.03.21 13:56
ⓒDaniel Kaesler / EyeEm via Getty Images

2018년 수사기관이 적발한 마약류 사범(마약사범)은 1만2613명이다. 한국의 마약 중독자가 이미 10만명을 넘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최근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을 중심으로 ‘물뽕’ 투약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이달 초 대대적인 마약류 합동점검을 예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국가정보원, 대검찰청, 경찰청 등 9개 관계부처가 나선다. 마약류 사용이 의심되는 취급자에 대한 합동점검과 특별단속도 이뤄진다.

많은 중독재활 전문가는 단속과 처벌 중심의 접근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검거 실적’이라는 숫자를 지나치게 앞세우다 보면, 마약 중독자의 재활과 인권이라는 가치가 소홀히 다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수사와 구금, 이후 재사회화 과정에서 마약 중독자가 겪는 인권침해 사례를 상·하로 짚어봤다.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배우고 있는 류현수씨(가명·30)는 지난해 2월초 필로폰(메스암페타민) 투약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1박2일간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평생 처음 유치장이란 곳을 경험했다. 귀가한 뒤에도 경찰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류씨는 비슷한 전과가 없는 초범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아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 대신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약퇴치본부)에서 40시간의 재활교육을 받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기소유예란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대상으로 검사가 판단해 기소하지 않는 제도다.

긴급체포 시점부터 3월 중순 서울 당산역 근처에 있는 마약퇴치본부 중독재활센터에서 마지막 4회차 교육을 마치고 나오기까지 한 달이 조금 넘게 걸렸다. 류씨한테 그 기간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 기소유예를 받아보겠다며 경찰과 함께 수갑을 채운 다른 시민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그는 당시 경찰의 ‘끄나풀’ 혹은 정보원으로 일했다.

“그때 저를 가장 많이 힘들게 한 건 죄책감이었어요. 마약사범을 붙잡아 경찰의 검정색 승합차에 태우면, 저는 앞자리에 앉아요. 검거된 사람은 형사와 뒷좌석에 앉고요. 그 사람이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이혼한 뒤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일도 너무 안 풀리고 힘들어서 마약에 손을 댔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SNS를 통해 낯선 사람한테 마약을 권유하는 것이 류씨의 첫번째 ‘임무’였다. 국외에 서버를 둔 텀블러에서 ‘차가운 술(마약을 뜻하는 은어) 함께 하실 분 찾아요’ 등 문구로 미끼를 던진 뒤,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텔레그램으로 넘어가 1대1 비밀대화를 이어갔다. 시간과 장소를 정해 온라인에 존재하던 ’잠재적 마약사범’을 현실세계로 불러내면, 경찰이 그 현장을 덮쳤다. 

류씨가 경찰의 끄나풀이 된 이유는 ’불안’ 탓이었다. 처음 검거됐을 때, 경찰은 그에게 필로폰 투약이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길게 설명했다. 구속을 피하려면 마약 판매책을 밝혀야 한다고도 압박했다.

류씨는 필로폰을 누구한테 샀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판매자와 연락을 주고받던 텀블러와 텔레그램에는 이미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조급해졌다.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피해 잠시 마약에 손댄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

형사 처벌을 걱정하던 류씨에게 경찰은 “너한테 필로폰을 판 사람을 못 잡았으니, 다른 마약사범이라도 붙잡을 수 있게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렇게 해야 네가 기소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경찰은 카카오톡을 통해 마약 중독자를 불러내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좋은 술’ 사진을 건네줬다. 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하얀 가루, 필로폰 사진이었다. 

ⓒpashapixel via Getty Images

수사를 받아야 하는 범죄 피의자는 수사기관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많은 검사나 경찰관은 피의자의 곤궁한 처지와 그들의 불안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잘 안다. 선처의 유혹 앞에서 류씨는 ‘수사 협조’라는 명목으로 얼굴도 모르는 다른 마약사범을 잡으러 다녔다. 그때는 “이렇게 해야 네 죄가 가벼워지는 것”이라는 말을 믿었다. 물론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협조해야 할 의무란 존재하지 않는다. 피의자의 유죄를 입증하는 건, 어디까지나 수사기관의 몫이다.

“그런 말도 들었어요. ‘마약에 손대는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 약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절대로 못 끊는다. 우리한테 조금이라도 일찍 잡히는 사람은 그나마 다행인 거야.’ 경찰과 함께 마약사범 잡으러 다니는 게 괴롭더라도 그게 장기적으로는 그들을 도와주는 길이라고 믿고 참으라는 이야기였어요.”

경찰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류씨한테 연락했다. 당시 그는 평일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카카오톡으로 ’오늘 일이 너무 없다. 네가 한번 만들어봐’ 이런 식의 지시가 떨어지면, 그는 근무시간에도 수시로 텀블러와 텔레그램에 드나들어야 했다. 새벽 1시에도, 휴일에도 경찰은 그를 찾았다.

처음에는 온라인을 통해 마약을 권유한 뒤, 서울 종로구 모텔 등 특정 장소로 마약사범을 꾀어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류씨의 ’쓰임새’는 더 많았다. 경찰은 약속장소에 나갈 때 늘 그를 불렀다. 상대방에 관한 정보, 만남이 이뤄지게 된 모든 과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였다.

마약사범 검거를 돕거나, 범인이 도망가면 붙잡으라는 경찰 지시도 받았다. 신변의 위협이 느껴졌다. 그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혹시 범인이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까 두려워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온 류씨한테 나이가 지긋한 형사는 “우리와 함께 있으면 너도 경찰로 알테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며 웃었다. 그건 형사가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여겨졌지만 대꾸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류씨는 6~7차례에 걸쳐 주로 초범이나 재범으로 보이는 마약사범을 ’오프라인’으로 불러냈다. 그 중 2명은 경찰에 붙잡혔다. 그의 끄나풀 노릇은 자신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이 나올 때까지 40여일 간 이어졌다.

류씨의 이런 고백과 관련해 경찰은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류씨한테 ‘수사 협조’를 받은 건 사실이지만, 경찰이 이를 먼저 요구하거나 강요한 적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에 대한 조사를 담당한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어디까지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잘 모르겠는데, 사실 마약사범 특성상 (피의자의) 수사 협조가 이뤄지면 감형을 받는 건 맞습니다. 마약사범이 검거되면 자신이 먼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희에게 많이 물어보죠. 그러면 저희가 ‘이런 방법도 있으니 본인 시간이 허락된다면 스스로 노력해서 제보를 한번 해보라’고 말해주는 정도입니다. (류씨를 대상으로) 저희가 계속 연락해서 요구하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경찰이 이런 식으로 잠재적 마약사범을 불러내어 검거하는 수사기법은 전형적인 함정수사에 해당한다. <마약학의 이해>(2007년)에서는 함정수사를 “수사기관이 거짓이나 계략, 끄나풀을 써서 범죄를 유발한 뒤 그 함정에 빠진 범인을 검거하는 수사방법”으로 정의한다.

수사기관이 마약사범을 붙잡으려고 함정수사 기법을 썼더라도 그 자체가 위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함정수사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고 판례도 일정하지 않다. 다만 애초 범죄의 의도를 가진 사람한테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한 것에 그치는 경우에는 적법한 수사로 인정하는 것이 대법원의 관련 판례다.  

류씨의 사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SNS를 통해 마약을 권유하는 것, 다시 말해 범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만 한 게 아니다. 약속장소에 나가 마약사범을 함께 검거했고, 그 다음에는 신고자가 되어 경찰과 함께 ‘범죄의 재구성’에 나서야 했다.

경찰의 지시 아래 참고인 진술서를 쓸 때, 류씨는 비로소 그들의 관심이 마약사범의 재활이나 사회복귀가 아니라 ‘검거 실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거잖아요. 사실은 제가 먼저 온라인으로 접근해서 마약을 함께 하자고 불러낸 건데, 참고인 진술서는 ‘저 사람이 나한테 함께 마약을 하자고 제안해왔기에, 이런 내용을 신고합니다’ 이런 식으로 쓰라는 거에요.”

참고인 진술서에 첨부한 텔레그램 대화 사진에도 마찬가지로 ‘기술’이 들어갔다.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는 자동삭제 기능이 있어요. 30초 단위로 자동삭제 타이머를 맞춰놓고, 제가 먼저 만나자고 제안해요. 그런 다음 제 메시지는 사라지고, 상대방이 ‘어디어디서 몇시에 만나자’ 이렇게 대답하면 그 순간을 포착해서 다른 카메라로 찍는 거에요.(텔레그램은 비밀대화의 화면캡쳐를 허용하지 않거나, 캡쳐 사실을 상대방한테 알려준다) 이런 식으로 증거를 남기면 맥락이 조금 어색하기는 해도, 마치 상대방이 먼저 만나자고 연락해온 것처럼 보이는 거죠.”

경찰이 마약사건 피의자와 관련한 증거를 조작하도록 하고 허위 진술서 작성을 주도했다는 논란이 빚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류씨의 담당 경찰은 이에 대해 “누가 먼저 불러냈든, 그게 혐의 입증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지시를 할 이유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한다.

경찰 주장과 달리 ‘누가 먼저 불러냈느냐’는 마약사건 피의자한테 중요할 수 있다. 함정수사의 적법성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보면, 경찰의 끄나풀이 피의자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범행 장소’로 불러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Hailshadow via Getty Images

류씨를 가장 ‘웃프게’ 만든 건, 경찰이 자신을 통해 찾는 사람은 마약 공급책이나 상습투약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가 텀블러 등을 통해 꾀어낸 마약사범의 대다수는 초범이나 재범으로 보였다. 경찰의 수사 방식 자체가 ‘함정수사가 아니면 검거가 극히 곤란하거나 거의 불가능한 범죄’를 대상으로 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경찰이 저한테 늘 ‘반드시 마약을 해본 경험자를 불러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현장에서 검거한 뒤 마약 반응검사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음성이 나오면 경찰로서도 낭패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경험이 많은 상습범이라면 ‘위험할 수 있어서 그러는데, 예전에 마약 해본 경험은 있어요?’ 이런 질문을 하는 저같은 사람을 상대할지. 어차피 텀블러에서 제 꾀임에 빠져 약속장소에 나오는 사람은 거의 초범 아니면 재범일 수밖에 없는 거죠.”

수사기관이 필로폰이나 대마초 등 마약류 투약 사실을 확인하려고 할 때, 소변검사나 모발검사를 실시한다. 모발검사를 통해서는 최대 1년 이내에 투약한 마약까지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류씨는 마약류 경험자를 잡아야 한다는 경찰 지시를 이행하려고, 텀블러 등에서 꼭 ’최근 1년 이내 마약을 경험한 분’만 찾았다. 

수사기관이 단순 투약으로 입건된 마약사범한테 공급책이나 공범 검거를 위한 수사협조를 요구하고 이를 통해 형량을 깎아주겠다는 식의 거래를 제안하는 것은 사실 드문 일이 아니다. 다만 피의자의 안전마저 무시한 채, 경찰의 필요에 따라 이들을 이용하는 것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서울지방경찰청 인권위원을 맡고 있는 김자연 변호사는 “아무리 범죄자라고 해도 수사단계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수사기관이 마약 중독자의 취약한 처지를 악용하는 방식으로 수사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또 김 변호사는 “류씨의 주장대로 경찰이 참고인 진술서 허위 작성을 강요했다면 이는 형법상 강요죄나 직권남용,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혐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이 제조나 밀반입 등 마약범죄의 뿌리에 접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적 채우기’를 위해 함정수사 기법까지 동원해서 초·재범 검거에 몰두하는 것은 마약근절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윤현준 인사랑연구소 중독사업본부장(서강대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은 ”유럽에서는 단순 사용자와 오랜 중독자, 알선·판매자를 철저히 구분해 단순 사용자한테는 구금 대신 치료를 권하는 추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이미 약물 비범죄화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다. 한국처럼 단순 사용자까지 엄벌에 처하는 마약정책은 가장 잘못된 접근방식”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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