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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시대 이후의 공간

도시의 모든 공간이 인스타그램에 매달리는 현 상황은 얼마나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 전종현
  • 입력 2019.03.19 14:23
  • 수정 2019.03.20 14:08
해리 누리에프가 디자인한 'Pink Mama'
해리 누리에프가 디자인한 'Pink Mama' ⓒcrosby studios

동시대 공간 디자인은 어떤 특정한 문법에 갇혀 있다. 파스텔 톤 인테리어, 로즈 골드 색으로 반짝이는 기물, 다채로운 무지개 색 오브제, 초록 기운을 풍기는 식물들, 흰 대리석 상판의 테이블, 타일로 마감된 바닥...네온 사인을 활용한 사이니지, 기발한 모양의 가구, 폐목재의 활용,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조명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심에는 인스타그램이 존재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눈길을 끌 수 있는 공간 문법을 통해 기존의 공간은 편집되고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다. ‘인스타그램적 공간(instagrammable space)’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스튜디오페페의 'Club Unseen'
스튜디오페페의 'Club Unseen' ⓒAndrea Ferrari & Giuseppe Dinnella
Bower Studios가 만든 West Elm 컬렉션
Bower Studios가 만든 West Elm 컬렉션 ⓒbower studios

카페, 식당, 상점, 호텔 등 상업 공간뿐만이 아니다. 뮤지엄과 도시까지 가세 중이다. 2017년 가을은 인스타그램이 뮤지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실감했던 기록적인 순간이었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거대한 팬덤을 계속 늘리는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의 회고전이 LA의 브로드 뮤지엄에서 열렸다. 일명 ‘땡땡이’로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회고전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거울방’이었다. 거울로 사방팔방 감싼 후 다채로운 색의 LED 라이트를 설치해 무한대로 증식하는 빛의 이미지를 표출한 이 공간은 ‘셀피(selfie)의 성지’로 등극했다. 입장권 판매 1시간 만에 5만 장의 초도 물량이 매진된 이유다.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e Mirrors'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e Mirrors' ⓒThe Broad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e Mirrors'
쿠사마 야요이의 'Infinite Mirrors' ⓒThe Broad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건축도 이런 흐름에 동참 중이다. 현재 가장 잘 나가는 건축사무소로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가 이끄는 BIG은 특정 사물이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쉽고 재미있는 조형과 다채로운 컬러를 활용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인스타그램적 건축(instagrammable architecture)‘을 영민하게 실험 중이다. 아예 건축가를 위한 ‘인스타그램 디자인 가이드’도 출현했다. 호주의 건축사무소, 발레(Valé Architects)는 유사(!)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된 건축 요소를 뽑아냈다. 자연과 건물이 혼연일체가 된 풍광, 네온 사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이니지, 물로 가득 차 햇살이 비치는 야외 수영장, 그리고 타일과 벽화, 심지어 패브릭까지 건물에 ‘입히는’ 행위까지! ‘인스타그램을 위한 최고의 장소 O곳’이라는 도시 여행 가이드 기사 또한 너무도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인스타그램 디자인 가이드
인스타그램 디자인 가이드 ⓒValé Architects

도시의 모든 공간이 인스타그램에 매달리는 현 상황은 얼마나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이미 초거대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그 구심력에서 쉽게 자유로워지기는 힘들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 인류 역사상 유례 없이 전 세계의 공간이 일원화되면서 런던, 뉴욕, LA, 홍콩, 도쿄 등 주요 도시의 풍경이 어마어마하게 납작해졌다. 한 공간이 가진 섬세하고 고유한 맥락에서 향유할 수 있는 깊이는 사라지고 길어야 1분이면 끝나는 ‘인스타그램 제의(사진 찍기-해시태그 입력-포스팅-좋아요 누르기-댓글 달기)’를 위한 연료로 휘발되고 있다. 시각적인 피로가 심화되면서 인스타그램적 공간에 대한 구토감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인스타그램적 공간의 미래를 생각하려면 인스타그램의 본질에 다가설 수밖에 없다. 인스타그램의 핵심 요소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이미지다. 즉 3차원 공간을 2차원 평면에 구겨 넣고 필터로 톤을 조절하며 현실에 존재하는 풍경을 비현실적 환상의 찰나로 구현하는 비주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플랫폼이 인스타그램이다. 인간의 기본 감각 중 시각을 지배하며 경험에 의거해 촉각(재료), 미각(음식)을 상기시키고, 동영상 서비스로 청각까지 커버한다. 공간이 가진 특징 중 인스타그램에서 아직 자유로운 건 후각과 공간감 정도다.

결국 현재의 일률적인 공간 문법에서 탈피하기 위해 창작자가 도입할 수 있는 건  디지털로 포획할 수 없는 기체뿐이다. 실제 방문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공기의 향은 시그니처 신트(signature scent)로, 공기의 온도는 사람의 기분을 물리적으로 좌우하는 분위기로, 공기의 흐름은 층고를 통한 개방감과 확장감의 조절로 귀결된다. 디지털카메라가 명확히 포착할 수 없는 빛의 세밀한 표현 또한 필수다. 더불어 인스타그램의 부흥에 가려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진 공간 건축의 가장 기본적인 스킬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선형 시간(linear time)의 특징을 염두에 둔 사용자 경험 디자인,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의 변형이 만드는 보편성과 이질성의 조절 등이 대표적인 예다.

OMA가 설계한 제네시스 스토어는 시그니처 신트와 더불어 자연광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천장 조명, 시선을 차단하며 내향성을 고조시키는 콘크리트 매스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여기가 인스타그램적 공간의 미래는 아닐 것이다.
OMA가 설계한 제네시스 스토어는 시그니처 신트와 더불어 자연광과 유사한 효과를 내는 천장 조명, 시선을 차단하며 내향성을 고조시키는 콘크리트 매스를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여기가 인스타그램적 공간의 미래는 아닐 것이다. ⓒShinji Takagi & OMA
SoA가 설계한 제주 '생각이섬'은 우리에게 익숙한 수치를 벗어난 공간을 구획하며 낯선 감각을 경험하길 권한다.
SoA가 설계한 제주 '생각이섬'은 우리에게 익숙한 수치를 벗어난 공간을 구획하며 낯선 감각을 경험하길 권한다. ⓒSoA

앞서 거론한 탈-인스타그램적 노력은 SNS 시대의 공간에 요구되는 ‘새로운 기능성(neo-functionality)’을 염두에 두며 상호보완할 필요가 있다. 공간이 갖춰야 할 덕목에는 집객이 빠지지 않는다. 전에는 공간이 갖는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면, 지금은 단발적인 이미지를 SNS로 유통해 방문객을 흡입 중이다. 인스타그램적 공간은 집객의 효율적인 고도화를 통해 새로운 기능성의 선례를 구축했다. 현실감을 잃지 않는 영민한 공간 편집이 필요한 때다.

* 《ARENA HOMME+》와 PUBLY에 발행한 글을 재구성했습니다.

harry.jun.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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