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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크루즈와 '완벽하지 못한' 미투 운동 지지자들에 대하여

처음 그를 지지하고 나섰던 많은 여성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HuffPost

이상적인 세계에서라면 우리는 대중 앞에서 변형을 겪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 사용으로 인해 우리의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합쳐지면서, 가끔 우리의 가장 괴로운 개인적 경험과 그에 따른 우리의 변화가 팔로워들 앞에 그대로 드러날 때가 있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가족 구성원의 죽음, 질병, 이혼에 대한 발표를 접하는 일이 흔해졌다.

배우 테리 크루즈가 2018년에 막강한 할리우드 에이전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밝혔을 때, 그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다. 크루즈의 주장을 부정하고, 그 정도 되는 사람이 그렇게 피해자가 될 수 있느냐고 의문을 표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옹호하는 사려깊은 이들이 더 많아 보였다. 대부분은 여성이었으며, 이들은 크루즈가 유해한 남성성을 없애자는 운동의 완벽한 지지자라고 보았다.

그렇지만 최근 크루즈의 행동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지지자’(ally)로 석불리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시켰다. 일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 운동에 남성들을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것도 이를 보면 정당화된다.

최근 몇 주 동안 크루즈는 동성 커플 여성들이 제대로 어린이를 키울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트윗을 썼다(후에 사과했다). 크루즈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 주장을 조롱했던 남성들에게 사과하며, 자신을 의심한 것도 그럴 법하며 그들은 비판을 받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내 성폭력을 지지해주지 않았을 때 내가 했던 발언들로 인해 상처 받은 흑인 남성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내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의심했을 것이다.”

 “수치 당하는 것에 대한 상처와 혼란을 이해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그래서는 안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처음 그를 지지하고 나섰던 많은 여성들은 이걸 배신이라고 느꼈다. 미투 운동이 힘을 얻어 갈 때 여러 여성들(그들 중에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도 있었다)은 그를 기꺼이 맞아들였다. 그러나 1년 정도 지난 지금, 크루즈는 미투 운동의 언어를 빌어 이 운동을 일어나게 만든 남성들을 옹호하고 나섰다.

테드 크루즈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는 남성이며, 미국에서는 남성들이 큰 권력과 특권을 가진다. 그가 초 남성적 이상에 굴복한 것은 진정한 연대는 일시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굿 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선언하거나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다른 남성들의 성차별을 비난하는 이런 논평 글로 표현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연대에는 시간이 걸리고, 상대의 욕구에 대한 세심함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현재 테리 크루즈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또한 여러 여성들이 미투 운동에 참여할 만한 남성들이 없다고 느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진보가 있으려면 불완전한 지지자도 필요하다는 걸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지각력이 없는 지지자는 별 쓸모가 없다.

테리 크루즈의 최근 행태를 보면 보다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여성들은 그가 깨우치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특히 흑인 여성들은 자신의 내면화된 트라우마를 여성들에게 돌리는 남성이 깨우치게 해줄 시간이 없다.

여성에게 힘을 주고자 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크루즈를 버리고 가는 게 제일 나을 수 있다. 이들의 자기 보호를 위해서도, 크루즈의 자아를 위해서도 아마 그게 최선일 것이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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