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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16일 18시 58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16일 18시 58분 KST

‘빨리 빨리’는 이득, ‘천천히’는 손해인가

대형 가구매장의 주차장 한 칸엔 어르신이 혼자 서 있었다

mrak_hr via Getty Images

지난 주말 날씨가 좋아 이사한 집에 가구도 살겸 한 대형 가구매장으로 향했다. 사람이 하도 많아 주차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줄을 서느라 지상도 이미 한가득 주차장이었다. 주차장 같은 지상 도로에서 30분 가량을 기다리다 겨우 순서가 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주차장도 몇 층은 이미 만차였다.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가는 차들을 찾기 위해 층을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한 어르신. 주차장 한 칸에 차가 아닌 한 나이든 어르신이 서 있었다. 주차장 칸칸마다 위에 달린 센서는 그 어르신을 차로 인식했고 비어있음을 보여주는 초록불 대신 자리가 찼다는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뭐지? 어르신을 왜 세워둔 거지? 신종 고려장인가?

우리 차가 들어가려 하니 어르신은 두 팔을 이용해 크게 X표시를 하셨다. 뭐지? 일단은 마침 맞은 편 차가 빠져나갔고 우리는 어르신의 반대편에 차를 대기 시작했다. 다른 차가 들어와도 마찬가지였다. 어르신이 서 있는 쪽으로 차가 향하면 어르신은 어김없이 팔로 X표를 만들거나 손과 고개를 양쪽으로 저으며 안 된다는 표현을 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이미 몇 층이 만차라는 표지판을 보고 주차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 어르신은 차에서 내려 비어있는 칸을 찾았고, 일행의 차가 들어오기 전까지 다른 차들이 주차를 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함께 차를 타고 주차장에 들어와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조금 빙빙 도는 게 그렇게 못 견디게 괴로운 걸까. 당장 들어와 주차를 해야 하는 차는 그 어르신 때문에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주차장을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차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르신은 우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가 차를 대고 차 안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나와 매장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까지 일행을 기다린 채 센서를 붉게 밝히고 있었다. 이 넓은 매장 주차장에 자칫하면 차를 못 댈 수도 있다는 게 두려웠을까.

한국 관광객은 1달러 더 내라?

신기한 일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 매장에는 고른 물건을 구매하고 나오면 계산대 근처에 간단히 요기 거리를 할 수 있는 스낵바가 있다. 긴 쇼핑에 지친 우리는 간단히 핫도그나 먹고 가자며 줄을 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고 조리된 핫도그를 받아 먹는 곳으로 이동했다. 식사가 아닌 간단히 간식 거리를 먹는 곳이라 서서 먹는 간이 테이블이 스무개 정도 마련돼 있었다. 네명 정도 한면을 차지하고 먹을 수 있는 정사각형의 테이블이었는데, 한명이 음식도 없이 서 있길래 자리를 함께 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우린 둘이었다. 그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리를 맡아둔 거라며 일행이 있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 또 음식도 없이 서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또 일행이 있다며 거절당했다.

음식을 주문하는 줄과 주문한 음식을 받는 줄은 길었다. 주문은 들어간 건지, 음식이 나오긴 한 건지도 모른 채 그들은 자기네 일행을 기다리며 자리를 맡고 있었다. 10분이면 먹을 간식을 위해 우리는 테이블 몇 개를 돌아다니다, 겨우 한 테이블에서 간식을 먹었다. 뒤를 둘러보니 음식이 나오지도 않은 채 그렇게 너다섯은 쓸 수 있는 테이블을 각각 한명씩 꼼짝않고 지키며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테이블이 전체의 반이 넘었다. 간식을 다 먹고 쓰레기를 치우고 가는 동안에도 처음에 물어봤던 테이블의 일행과 음식은 오지 않았다. 동시에 복수의 사람들이 한손에는 간식을, 한손에는 구매한 짐을 가득 들고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한국 관광객들은 빨리 지나가기 위해 1달러를 여권에 끼워 캄보디아 입국 수속 공무원들에게 건넸다. 너도 나도 빨리 지나가기 위해 낼 필요 없는 1달러를 내밀었고, 그 행동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문화가 됐다. 한번 자리잡은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캄보디아 공무원들도 한국 여권을 보면 당연스레 1달러를 요구한다. 1달러를 내지 않으면 한국 관광객이 기재한 입국 서류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가며 다시 써오라고 요구하거나 아주 느릿느릿하게 일처리를 한다. 어떤 블로그에는 투닥거리기 싫으면 그냥 31달러(도착비자 비용 30달러+1달러)를 준비하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부패한 캄보디아 입국 심사 공무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다른 국적의 여권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1달러를 요구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빨리빨리를 요구하던 한국인들이 이런 폐단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폐단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1달러 없이 입국 심사를 섰다가 1시간 가까이 여러 명의 공무원들에게 입국 거부를 당해야만 했다.

이런 사회현상의 답답함을 사람들에게 토로하면 흥미로운 답변들이 돌아온다. 일단 전제는 ‘어쩔 수 없다’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너무나 좁은 땅덩어리에 여러 명이 비집고 낑겨 살다보니 애초에 사회적 거리라는 게 없어서라고 답했다. 타인을 배려하려 해도 할 수 없고 그러니 타인보다 일단은 내가 우선되는 사회가 됐다는 말이다. 또 어떤 이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생존하기 위해 경쟁은 치열해지고, 그 경쟁적인 사회에서 조금만 뒤쳐져도 손해본다는 인식 때문에 그렇다고도 했다.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답변은 한국전쟁 당시 나라에서 예고 없이 한강다리를 조기 폭파했고 그 결과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일 등 트라우마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모든 답변의 공통점은 개인이 알아서 빨리빨리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손해 보거나 심지어는 생존에까지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어느 점에서는 동의하기도 하지만, 이런 현상은 경쟁과 생존과 관련되지 않은 일상에서도 여실히 보인다. 조용한 일상에서까지 타인으로부터 그런 침해를 받아야 하는 걸까. 그것이 한국에 사는 나의 운명인가.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예전에는 세대 차이의 문제일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더 겪어보니 꼭 세대 차이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같은 젊은 사람들로부터도 불쾌한 행동을 많이 겪기도 했으니까. 대신 새로운 상식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면 ‘개인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개인주의적인 게 정답은 아니겠지만 지금 사회보다는 조금 숨통이 트이고 타인을 인식하며 함께 살아가는 태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짧은 기간 동안 유럽에서 공부하며 배운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달랐다. 좁고 조금 부족한 공간을 타인에게도 웃으며 나눠주고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하는 그런 게 개인주의적인 것이다. 물론 어렵다. 나도 줄을 서다 보면 누군가가 나를 밀치고 앞설까봐, 그래서 내가 뒤쳐지고 손해볼까봐 조마조마하다. 줄을 서는 동안엔 앞 사람과 가급적이면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혹시나 내가 손해볼까봐 전전긍긍하며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조금 더 느긋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지낸다면 모든 사람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교과서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 지키려고 노력한다. 일상에서 조금은 ‘손해’보더라도 그건 진짜 손해가 아니니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기. 심지어 정말로 손해라 하더라도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하며 천천히 행동하기. 조금만 더 나 외에도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기. 그게 지금 시대의 새로운 상식이 돼야 하고 바뀌어 나가는 젊은 세대가 보여주어야 할 태도라고 그렇게 믿고 스스로 조금 느린 속도로 살아가려고 한다.

글 · 혜화붙박이장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