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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야동문화’다

'야동'을 웃음코드로 사용한 방송이 상황을 키웠다

‘야동’은 우리 TV 남성예능이 즐겨 쓰는 웃음코드다. 2007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로 처음 등장했다. ‘야동순재’ 때만 해도 권위적인 가부장의 이중성을 드러내 전복의 쾌감이 컸다. 반듯함의 정석 ‘국민 MC’ 유재석도 한때 ‘야동 애호가’ 캐릭터를 들고 나왔다.

김진송(계간 『홀로』 편집장)의 말대로 우리 TV 예능에서 “야동은 성 엄숙주의를 타파하는 귀여운 도발, 남자라면 당연히 보는 문화, 인간성을 보여주는 소재로 스스럼없이 등장한다”. 지난해 MBC ‘나혼자 산다’에 출연한 가수 쌈디는 싱글남의 무기력을 호소하며 “야동을 끊은 지 3개월”이라고 했다. 남자가 야동을 안 보면 비정상, 문제 있다는 식이다. 출연자들이 안타까워하며 동조했다.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한 그룹 아이콘은, 지금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승리의 야동에 대해 언급했다. 승리가 흘리고 간 ‘야동이 든 외장 하드’를 “뜻밖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100개의 폴더가 배우별로 분류돼 있어, 승리의 이상형을 다 알 수 있었다”는 이들의 말에 남성 진행자들이 박장대소했다.

문제는 시중에 유통되는 ‘국산 야동’의 상당수가 일반인 대상 불법 촬영물이란 점이다. 야동은 “그저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의 증거 자료”(김진송), 디지털 성범죄의 현장이다. 그를 남성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이나 취미쯤으로 가볍게 웃어넘기는 동안 불법촬영 범죄의 심각성, 보다 본질적으로 여성의 도구화, 성적 대상화 문제는 까맣게 지워진다.

정준영, 승리, 용준형, 최종훈, 이종현. 한때 대중의 환호를 받던 아이돌 스타들이 성폭력 혐의로 줄줄이 경찰에 불려 나가며 추락하고 있다. 외신까지 "성스캔들로 흔들리는 K팝 세계”라고 주목하는 초대형 스캔들이다. 승리가 이사였던 클럽 버닝썬에서의 약물 강간, 성 상납, 성매매 알선, 마약류 유통 의혹에서 정준영이 핵심인 단톡방 내 불법 촬영 공유까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여기에 경찰 유착 의혹도 나온다. 3년 전 여자친구 불법 촬영 혐의로 고소당한 정준영이 무혐의로 풀려난 것에 대해서도 부실수사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KBS ‘1박2일’ 멤버였던 정준영은 4개월 짧은 ‘자숙’ 끝에 프로그램에 복귀했다. 시청률에 눈 먼 공영방송이 너무 쉽고 무책임하게 빨리 면죄부를 줬다. 정준영의 피해 여성은 최소 10여명이다. 방송의 도덕 불감증이 상황을 키운 셈이다.

이들이 단톡방에서 나눈 메시지는 차마 이 자리에 옮기지 못할 정도다. 죄의식은커녕 여성을 물건처럼 다뤘다. “이들에게 여성은 사냥에 성공한 헌팅 트로피다. 사진과 영상을 친한 남성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이 그룹에 속할 자격이 충분한, 진짜 남성다운 남성임을 증명하고 증명받는다. 이것이 남성 사회가 결속되고 유지되는 원리다.” 작가 박신영이 ‘성관계 동영상을 공유하는 남성 문화가 만연한 이유’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문제는 정도야 달라도 일반인 단톡방, 남초 커뮤니티에서 유사한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논란이 되는 남대생 단톡방의 ‘얼평(얼굴평가)’ ‘몸평(몸매평가)’ 같은 성희롱 문화가 그렇다. 남성들끼리 모여, 남성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희롱거리로 삼는다. 그러다 누군가 야동을 올린다. ‘야동순재’도 즐겼고 ‘유느님’도 즐긴 것이니 문제없다. 불법 촬영물인지 아닌지 알 바 없다. 만약 그런 ‘야동문화’가 불편하거나 싫은 남자는, 남자 같지 않은 남자로 따돌리고 배제한다.

정준영과 일반인의 비교가 가당치 않다고? 정도는 달라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각자 내 안의 ‘야동문화’를 성찰해보기 바란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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