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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이사 갈 수 없다

이웃을 영원히 질투하거나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다

ⓒhuffpost

 

국가는 이사 갈 수 없다

일본을 질투했다. 친절한 사람들, 깨끗한 거리, 놀라울 정도의 인프라(기반시설), 생동감 있는 문화. 모든 것이 질투가 났다. 그러니까 이건 20여 년 전 20대 시절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이야기다. 나는 도쿄를 갔다와서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일본과 한국 사이는 30년 정도의 갭(간극)이 있는 것 같아. 한국이 일본처럼 되려면 아직 멀었어.” 그렇다. 20대의 나는 잠재적 친일파로서 독립기념일에 서울 광화문에 거꾸로 매달려 매질을 당해야 옳았을 젊은이었을지도 모른다. 

 

ⓒOleksii Liskonih via Getty Images

 

삼일절에 일본 가정식이 어때서

당시는 1990년대였다. 일본 문화 개방으로 제이팝(J-Pop)과 일본 영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가히 그것들은 선진 문물이라 할 법했다. 나는 그걸 흡수하고 또 흡수했다. 케이팝(K-Pop)이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에 나는 제이팝과 한국의 ‘가요’를 비교하고 또 비교했다. 스마프(SMAP) 같은 아이돌 그룹이나 아무로 나미에 같은 가수는 한국에서는 나올 수 없으리라 믿었다. 한국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거장은 나오지 않으리라 여겼다. 삼성이 소니처럼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도쿄를 갔다왔다. 날씨는 청명하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거리는 깨끗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더는 질투심이 생기지 않았다. 처음 일본에 간 때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울은 여러모로 도쿄와 비슷해졌다. 사람들은 조금 더 친절해졌다. 거리는 조금 더 깨끗해졌다. 인프라는 조금 더 늘었다. 문화는 압도적으로 생동감 있어졌다. 나는 시부야 교차로를 걷다가 거대한 전광판이 달린 트럭을 봤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일본 콘서트를 홍보하는 차였다. 확실히 한국은 일본을 따라잡고, 아니 극복하고 있었다.

 

 

다만 극복하지 못한 것은 한국인들의 멘탈(마음)이다. 삼일절 전날 일본 여행 관련 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두 명의 유튜버가 사죄를 했다. 울면서 “국내 정서를 파악하지 못하고 여러분이 고지해주신 뒤에야 시기의 부적절을 인지했다는 게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라고 했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 역시 2017년 9월 방영된 ‘일본 가정식 편’을 재방송했다는 비난을 받은 뒤 사과했다. 나는 멍해졌다. 어쩌면 올해가 삼일절 100주년이기 때문에 벌어진 과한 소동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동은 여전히 한국인이 일본을 마음속으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지난해 한국의 국민소득은 3만달러를 넘어섰다. 국민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기준이다. 한국은 이로써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천만 이상 국가들을 의미하는 ‘30-50클럽’에도 전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들어갔다.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다음이다. 물론 국민소득 3만달러를 유일한 선진국 기준으로 삼는 건 무리일 것이다. 소득만 올라간다고 선진국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이 통계학적 수치는 한국이 지난 몇십 년간 먼 오르막길을 끊임없이 올랐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참조할 가치가 있다.

 

반일보다 극일

일본은 우리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는 이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웃’이라는 것이다. 이웃을 영원히 질투하거나 미워하면서 살 수는 없다. 국가는 집이 아니다. 이사를 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일보다는 ‘극일’일 것이다. 많은 면에서 우리는 일본을 따라잡았거나 넘어섰거나, 적어도 비슷해졌다. 삼일절 연휴에 일본으로 휴가를 가고 일본 관련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 국가가 되는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극일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완전한 극복은 완강한 반대보다 강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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