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3월 15일 13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15일 13시 52분 KST

세계에서 여성이 살기 가장 좋은 나라는 여기다

부모들은 급여 80%까지 지급받는 9개월 유급 육아 휴가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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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5만 명이 사는 나라 아이슬란드는 지열 온천, 숨막힐듯 아름다운 빙하, 멋진 북극광 등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슬란드가 세계에서 여성이 살기 가장 좋은 나라라는 사실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하는 젠더 격차 보고서는 경제활동 참여, 정치적 대표성, 교육, 건강 등을 감안하여 국가별 젠더 평등 순위를 매긴다. 아이슬란드는 최근 10년 동안 1위를 지켰다. 예를 들어 작년에 미국은 멕시코와 페루 사이인 51위를 기록했다. 아이슬란드는 일하는 여성에게 좋은 나라의 순위를 매기는 이코노미스트의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꾸준히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6년에는 1위를, 2018년에는 3위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은 19위였다.

여성들에 대한 아이슬란드의 진보적 자세 덕택에 자랑거리가 많이 생겼다. 1980년에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민주적으로 여성 대통령이 집권한 최초의 국가가 되기도 했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현 총리는 2017년에 당선되었으며, 아이슬란드 역사상 두 번째의 여성 총리다. 급여 불평등 감소, 여성의 재계 최고위층 진출, 어머니와 아버지의 유급 육아 휴직 등을 목표로 하는 여러 법안이 도입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가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국가이긴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젠더 평등을 이끄는 일부 지도자들은 아직도 아이슬란드가 여성을 위한 파라다이스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아이슬란드가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칭송받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의 기준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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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현 총리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아이슬란드가 이룬 진보의 상당 부분은 강력한 여성 운동 덕택이었다. 남성 우세와 정해진 젠더 역할이 뿌리깊은 나라였던 아이슬란드에서, 여성 운동은 젠더 평등에 대한 요구를 주류로 밀어넣었다. “풀뿌리 행동주의가 절대적으로 핵심이다. 풀뿌리 행동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슬란드 여성 인권 협회의 브린힐두르 헤이다로그 오마르스도티르의 말이다.

가장 대단했던 시위는 1975년에 벌어졌다.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충분한 급여를 받지 못하는데 분노했고, 정치적으로 충분히 대표되지 못하는데 실망을 느껴 거리로 나섰다.

“우리의 상황이 아주 심각했기 때문에 크고 용감한 일을 벌일 필요가 있었다.” 오마르스도티르는 당시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1970년 뉴욕에서 평등을 요구하며 행진했던 여성들 등 국제적 여성 운동에 영감을 받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아이슬란드 여성들 중 무려 90%가 1975년 시위에 참여했다. 아이슬란드의 보수적인 여성들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파업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오마르스도티르는 “파업은 아주 좌파적인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크벤나프리다구린, 즉 ‘여성의 휴일’이라고 명명했다. 모든 여성들이 동참할 수 있는 컨셉이었다.

“그 연대는 아이슬란드에서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모든 여성들이 단합하는 전통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그때부터 아이슬란드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1976년에 젠더 평등법이 제정되었으며 핀보가도티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더 많은 여성들의 정계 진출을 돕기 위한 여성 동맹이 발족되어 1983년에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현재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여성 정치인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다. 선출된 국회의원 중 48% 가까이가 여성이었던 2016년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는 38% 정도이지만, 여성 의원이 전체의 23.7%인 미국 같은 국가들에 비하면 훨씬 높은 비율이다.

직장내 평등을 보장하는 법도 있다. 입법보다는 부드러운 자발적 접근으로 젠더 불평등 감소 추구를 선호하는 국가들과는 다르다. 재계는 처음에 반발했지만, 아이슬란드는 이사회의 최소 40%를 여성으로 구성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했다. 이 법은 효과가 있었다. 현재 공개 상장된 대규모 기업들의 이사회의 43%는 여성이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21.7%다)

“우리는 쿼터제를 실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업들에게 말해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슬란드 정부 내 평등부서의 베르글리요트 트라스타르도티르의 말이다.

여성들이 기업의 의사결정 테이블에 앉게 되었지만, 아직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트라스타르도티르는 쿼터제로 인해 여성 CEO가 늘어나길 기대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이슬란드는 2018년에 평등 급여 법을 시행하여,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급여를 받지 않음을 기업이 증명하게 하는 유일한 국가다. 같은 일을 하는 여성과 남성에게 급여를 다르게 지급하는 것은 여러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이를 어기는 기업들이 많다. 아이슬란드 총리실 자료에 의하면 아이슬란드의 젠더간 급여 격차는 약 16%다(미국은 약 20%다).

“평등 급여 법의 문제는 고용자들이 차별을 증명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오마르스도티르의 말이다. 법정 싸움을 위해서는 재정적, 감정적 자원을 끌어 모아야 했다. 그리고 여성 고용자가 개인으로서 승소한다 해도 동료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는 법을 바꾸어 기업이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강제했다. 직원수가 25인 이상인 기업은 3년마다 급여 관련 감사를 받아야 한다. 감사에서 탈락한 기업은 벌금을 내야 하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다.

아이슬란드는 육아 보조금을 지급하며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의 육아 휴가를 권장하여 가정 생활에도 평등을 추구한다.

2000년부터 부모들은 평균 급여의 80%까지(상한선은 있다)를 지급받는 9개월 간의 유급 육아 휴가를 쓸 수 있다. 남녀가 3개월씩을 쓸 수 있고, 나머지 3개월은 두 사람이 나눠서 쓴다. 각자 5개월씩을 쓰고 2개월을 공유하는 새로운 법안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정책의 파급 효과는 컸다. 아이슬란드에서 자녀를 가진 남성의 90% 정도는 육아 휴가를 사용한다. “연구에 따르면 아이슬란드의 어린이들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트라스타르도티르는 말한다. 한편 이 법으로 인해 여성들은 고용주에게 덜 차별 당하며 더 오래 일하고 급여가 더 높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는 연구가 있었다.

“보육과 육아 휴가가 없었다면 아이슬란드 여성 정치인들 다수는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그 훌륭한 본보기다.” 야콥스도티르 총리가 작년 세계경제포럼 웹사이트에 쓴 글이다.

아이슬란드의 젠더 평등 진전은 정치인 배출을 끌어내는 풀뿌리 운동의 힘과 그에 따른 법제화의 영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의 특이한 정치 및 사회적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젠더 평등에 헌신하는 북유럽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또한 아이슬란드 사회는 아주 작다. “훌륭한 발상을 가진 한 사람이 나오면 사회가 10년 안에 바뀐다.” 오마르스도티르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젠더 연구를 선택 과목으로 제공한 고교 교사를 지목한다.

“효과가 아주 좋았다. 그 교사에게 배운 학생들은 동기를 부여 받았고 눈을 떴다. 눈 가리개가 제거된 것이다.”

이 교사는 아이슬란드 전역의 다른 교사들을 대상으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10여 년 뒤, 아이슬란드 고등학교의 절반 정도는 젠더 연구 수업을 열었고 세 곳은 필수 과목으로 선정했다(많지 않은 것 같이 들리겠지만, 아이슬란드 고등학교의 10%에 가까운 비율이다).

물론 아이슬란드도 완벽하지는 않다. “아이슬란드가 세계 최고라는 것은 아이슬란드가 좋다기보다는 세계가 엉망진창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오마르스도티르의 말이다. 트라스타르도티르도 동의한다. “우리는 모두가 말하는 것처럼 젠더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희롱(세계경제포럼의 젠더 격차 보고서에는 반영되지 않은 요소다)은 여전히 큰 문제다. 2014년에 만들어진 ‘뷰티 팁스’(Beauty Tips)라는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은 강간과 성희롱 경험을 교환하는 곳이 되었다. 회원수는 3만 명 정도이며, 이는 아이슬란드 여성의 약 20%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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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스캔들은 아이슬란드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젠더 편견을 제거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시그뮌 뒤르 다비드 귄로이그손 전 총리 등의 정치인들이 바에서 여성혐오적 수사를 내뱉으며 미투 운동을 비난하는 대화를 녹음한 것이 작년 11월에 공개되었다. 귄로이그손 총리는 여성 인권 지지자를 자처했고 세계 최고의 페미니스트 남성 중 하나로 선정된 적도 있었다.

이 사건은 크라우스튀르포크(바의 이름이 클라우스튀르였다)라 불린다. 브루클린 대학의 정치학 교수 재닛 존슨은 아이슬란드 사회의 중요한 점을 드러내는 사건이라 말한다.

“표면상으로는 훌륭한 일들이 많고 여성 운동이 강하고, 아이슬란드의 페미니스트들은 정말 많이 노력했다. 반면 내가 보기에는 미끼 상술도 있다.” 존슨의 말이다. 공적인 성취를 잠식하는 비공식적 정치 인맥이 있는데, 이는 아직도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바와 뒷뜰에서 만나 결정을 내리는 남성들이다.

불평등이 끈질기게 남아있는 영역을 공격할 수 있는 희망은 이제 성인이 되는 세대에게 달려 있다고 트라스타르도티르는 말한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주 고무적인 미래를 점치게 하는 작은 혁명이 있었다. 젠더 평등은 느리지만 확실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다. 이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들은 늘 빠른 변화를 원하고 언제나 민첩해야 한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