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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처럼 불법촬영물 돌려보는 남성들

잘못된 문화 전체를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전아무개(21)씨는 지난 8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를 위반한 혐의로 서울 강동경찰서에 긴급 체포됐다. 전씨는 여자친구를 포함해 지인, 불특정 행인들까지 여성들을 무차별 불법 촬영하고,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확대해 갈무리한 사진 등도 다량으로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전씨는 지난해 12월 여자친구 몰래 페이스북에 ‘OOO(여자친구 이름) 사진 볼 사람’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과 불법촬영물을 공유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다. 현재 경찰은 디지털 포렌식 등의 방법으로 전씨의 휴대전화 등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서도 불법촬영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ㄱ군이 같은 학교 여학생들을 불법촬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한겨레> 취재결과, ㄱ군은 불법촬영 의혹에 대해 “직접 찍은 게 아니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불법촬영물을 직접 찍은 것처럼 속여 친구들에게 자랑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직접 찍은 것이든 아니든 10대 남성들 사이에서 불법촬영물이 ’자랑’거리로 통용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ㄱ군의 같은 반 친구는 “불법촬영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500원에 살래?’ 같은 말이 공공연히 오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 쪽에서 실제 같은 학교 학생의 뒷모습을 촬영한 사진 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학교는 현재 ㄱ군에 대해 학교폭력 대책 자치위원회 등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LM Media

 

경찰이 12일 최소 10명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불법촬영을 하고 이를 ‘단톡방’에 유포한 가수 정준영(30)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카메라 등 이용 촬영 등)로 입건한 가운데, 불법촬영물 공유가 몇몇 연예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들의 보편적인 문화에서 나온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성을 물건처럼 생각하고, 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남성연대를 공고히 하는 문화가 불법촬영물 촬영과 유포의 근본 원인이라는 얘기다.

실제 <서울방송>(SBS)이 공개한 정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정씨와 동료 연예인 사이에선 불법촬영물 공유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보도를 보면, 이들은 성관계 사실을 여러 차례 자랑했고, 그때마다 다른 대화 참여자들은 영상을 요구했다. 2015년 말 정씨가 친구 김아무개씨와의 대화에서 ‘한 여성과 성관계를 했다’고 자랑하자 한 지인이 ‘동영상은 없느냐’고 묻는다. 이에 정씨는 여성과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찍은 3초짜리 영상을 올렸다. 정씨는 비슷한 시기에 잠이 든 여성 사진 등을 단체 대화방에 수시로 올리고 자랑하기도 했다. 정씨가 참여한 단체 대화방에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 지인이 찍은 불법촬영물도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가 참여한 단톡방 대화와 같은 일은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18일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에서는 ‘여친 인증 릴레이’가 벌어져 남성 13명이 검거되기도 했다. 당시 일부 일베 회원들은 여성의 나체, 잠들어 있는 모습, 성관계 장면 등을 찍은 뒤 “여친 인증한다” 등의 제목을 달아 글을 올렸다. 결국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가 수사에 나섰고, 김아무개(25)씨 등 13명을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당시 검거된 13명 가운데 20대가 8명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4명, 40대 1명 순이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관심을 받기 위해” 혹은 “일베 등급을 올리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6명은 실제로 자신의 여자친구 사진을 게시한 반면 나머지 7명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재유포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랑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활동가는 “불법촬영물 공유는 인터넷 기술에 익숙한 젊은 세대 중심으로 나타날지 몰라도, ‘성적으로 대상화된 여성의 공유’라는 점에서 세대 문제가 아닌 남성연대의 문제”라며 “지금껏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이를 통해 남성성을 인정받으려고 한 잘못된 문화 전체를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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