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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영화관람이 여전히 불편한 까닭

법률 개정안은 번번이 폐기됐다.

ⓒAdmir Dervisevic / EyeEm via Getty Images
ⓒhuffpost

시각장애가 있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모 영화관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 하고 싶다는 것이다. 얼마 전 가족들과 영화관에 갔는데 중간에 나왔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을 모르니 앉아 있는 것이 고역이어서였다. 그래서 가족들도 불편해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장애인의 영화관람 정책은 1999년 한국 영화 <쉬리>의 자막 상영에서 출발했다. 이후 장애인영화제(2000년), 장애인 영화 정책(2005년) 사업으로 이어지며 자리를 잡아 왔다. 20년이라는 흐름 속에서 장애인이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은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장애인이 원하는 극장에서, 원하는 영화를 자유롭게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각장애인은 영화 장면을 보지 못하여, 청각장애인은 듣지 못하여 영화를 보기 어렵다.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장면 해설이나 자막 등 서비스만 제공해주면 충분히 영화 관람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서비스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장애인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시각장애인은 영화관 무인단말기(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없고, 영화관 안에서 혼자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영화관 안의 좌석은 물론 화장실 등의 시설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팝콘 등을 주문하고 싶어도 키오스크를 혼자서 이용할 수 없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여 수어(手語)를 잘하는 직원이 없다. 발달장애인이 동반자가 없는 경우 극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문제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현행 관련 법률의 미비 때문이다. 현행 관련 법률 내용이 임의 규정이어서 영화(관) 사업자가 이를 준수할 의무가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장애인들은 오래전부터 영화 관련 법률 개정에 힘을 쏟아왔다. 한국 영화를 만들 때부터 시각·청각 장애인 콘텐츠를 만들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관 시설도 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법률 개정안은 번번이 폐기됐다. 정치권의 무관심과 영화(관) 사업자들의 반대 때문이다.

이를 보다 못한 장애인단체들이 몇년 전에는 영화관 사업자들을 상대로 문제 제기를 했다. 시각·청각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낸 것이다. 몇년간의 법정다툼 끝에 장애인들이 승소했다. 하지만 현재 영화관 사업자들이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를 한 상태다. 장애인 영화관람 지원을 위한 법률 내용이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법원의 결정을 준수할 의무가 없다고 보아서였다.

올해는 한국 영화 100년이 되는 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9년 <의리적 구토>가 한국인들에 의해 영화로 처음 만들어졌다.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한국 영화는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 영화 100년을 맞는 장애인들은 우울하다. 자유롭게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장애인단체들은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관련 법률에는 장애인이 영화관을 이용하는 데 필요한 편의시설을 보강하고, 시각·청각 장애인의 영화관람 콘텐츠를 제공하도록 할 예정이다. 영화 관련 법률에서도 영화관 사업자의 장애인 영화관람 지원 내용을 명확히 명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한국 영화의 역사에 장애인도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다.

영화 관련 단체들이 지난해부터 한국 영화 100년을 기념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진정으로 한국 영화 100년이 축제가 되려면 장애인들의 영화관람 환경 개선도 깊이 짚어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와 정부는 발의되는 관련 법률안이 꼭 개정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영화(관) 사업자들도 이제는 장애인을 영화의 소비자로 바라보아야 하며, 법 개정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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