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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11일 15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11일 16시 10분 KST

시범경기는 실험경기다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제대로 즐기기 위한 몇 가지 상식

Masterpress via Getty Images
huffpost

“오타니 거품 아니야?”

2018년 봄,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었다. 대답은 늘 같았다. “글쎄.”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예비고사 성적만 보고 섣불리 본고사 성적을 예측할 수는 없다. 시범경기는 그저 ‘실험’ 경기이기 때문이다.

현대 야구에서 보기 드물게 투타 겸업을 하는 ‘이도류’인 오타니 쇼헤이는 2018시즌에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닛폰햄 파이터스 소속으로 일본 야구를 뒤흔들었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는 30개 구단 대부분 관심을 보였다. 선택권이 있던 오타니는 30개 구단에 편지를 보내 ‘나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하라고까지 요구했다. 최종 7개 구단을 상대로 직접 면접까지 봤다.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요란한 과정을 거쳐 미국 야구에 입성했지만 그가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내용은 초라, 그 자체였다. 타자로는 11경기에서 타율 0.125(32타수 4안타) 1타점에 그쳤고 투수로는 두 차례 등판해 2⅔이닝 9피안타(3피홈런) 5탈삼진 9실점의 수준 이하 성적을 냈다. “마이너리그 수준”이라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달라졌다. 오타니는 개막 한 달 동안 4경기에 선발 등판해 2승1패 평균자책점 4.43을 기록했다. 타자로는 타율 0.333, 4홈런 12타점의 성적을 올렸다. 흠잡을 데 없는 활약으로 아메리칸리그 4월의 신인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오타니는 과연 시범경기 때 연막작전을 폈던 것일까.

2012년 시범경기 때 박찬호도 오타니와 비슷했다. 미국, 일본 리그를 거쳐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국내 야구에 첫 선을 보인 박찬호는 시범경기 2경기 등판, 8⅓이닝 16피안타(2피홈런 포함) 2사사구 5탈삼진 12실점(12자책)의 성적을 남겼다.(풀어쓰면 8회 1사까지 잡는 동안 매 회 평균 2개의 안타를 두들겨 맞고 총 12점을 내줬다는 얘기다. 9회 정규이닝으로 환산하면 평균자책점이 12.96점에 이른다.) 당연히 실망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여러 의문부호가 달렸다. 하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첫 등판(4월12일 청주 두산전)에서 6⅓이닝 4피안타 2실점 호투를 보여줬다. 선발투수로서는 합격점을 받을 만한 성적이었다. 

실력을 일정 부분 검증받은 베테랑은 시범경기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치를 굳이 시범경기를 통해 재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투수의 경우 80% 정도의 컨디션으로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한 개씩, 혹은 반개씩 빠지게 던지면서 타자들을 실험한다. 스프링캠프 동안 새롭게 연마한 구질도 실험해 본다. 시범경기 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면 정작 정규리그 맞대결 때 불리해지기 마련이다. 류중일 LG 감독은 “시범경기 때는 투수들이 타자와 상대할 때 평소 안타를 잘 허용했던 공을 일부러 던져서 왜 맞았는지 분석하기가 딱 좋다”라고 했다.

일부 주전급 타자들은 시범경기 활약을 오히려 경계하기도 한다. 타격감이 너무 일찍 올라와 오히려 개막 이후 타격 사이클이 떨어질까 두려워한다. 은퇴한 ‘국민타자’ 이승엽은 “시범경기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보는 시기”라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 감독들 또한 2~3년 차 풀타임 주전의 경우 시범경기에서 1할대 타율을 기록하더라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시범경기에 100% 이상 전력을 다하는 이들은 신인 혹은 2군 투수다. 감독들에게 눈도장을 받기 위해서다. 타자들도 마찬가지다. 1군 붙박이 자리가 보장된 것이 아니라면 미친 듯이 방망이를 휘둘러야만 한다. ‘3월 깜짝 스타’가 많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시범경기 성적이 그대로 정규리그 성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16년 시범경기 때 4할대 타율(0.400)을 뽐냈던 발디리스는 정규리그 개막과 동시에 부진에 빠지면서 그해 8월 중도 퇴출됐다. 부상의 여파가 있기는 했으나 타율 0.266, 8홈런 33타점은 기대 이하 성적이었다. 2014년 시범경기 타격 1위 정의윤도 비슷했다. 정의윤은 시범경기 동안 타율 0.429를 기록하면서 눈길을 끌었으나 정규 시즌 타율(0.283)은 3할에도 못 미쳤다. 2012년 시범경기 동안 타율 0.459의 미친 타격감을 뽐낸 박정권 또한 시즌 타율은 0.255에 불과했다. ‘시범경기 성적을 믿지 말라’는 이유다.

미국 프로야구도 비슷하다. 마이너리거는 시범경기를 통해 성적을 올려야만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들어갈 수 있다.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는 백업(후보) 포지션에 3~4명이 경쟁할 정도로 치열한 전장이다.

시범경기 성적이 메이저리그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2017년 미네소타 트윈스 소속이던 박병호는 시범경기 때 타율 0.353(51타수 18안타), 6홈런, 13타점의 남부럽지 않은 성적을 올렸으나 구단 내부 사정상 메이저리그 개막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고 시즌 내내 마이너리그에만 머물렀다.

시범경기는 그저 ‘시범을 보이는 경기’ 일뿐이다. 시범경기 팀 성적 또한 정규리그 성적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2017시즌 시범경기 1위였던 kt 위즈는 정규리그 때는 꼴찌로 내려앉았다. 2016시즌 시범경기 1위 삼성 또한 ‘본고사’인 정규리그에서는 창단 첫 9위의 굴욕을 맛봤다. 시범경기 성적으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진짜 실력은 개막을 한 뒤에야 알 수 있다. 그냥 즐기고 새로운 얼굴에 환호하라. 그것이 시범경기를 즐기는 방법이다.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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