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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협상, 2단계 ‘준 빅딜’을 제안한다

엄연한 현실을 직시한 가운데 절충적 대안을 모색하고 제안해야 한다.

ⓒLeah Millis / Reuters
ⓒhuffpost

북미 양국 입장을 절충하여 새로운 타협안을 만들 수는 없을까? 단계를 최소화하여 북한 비핵화 조치의 수준을 높이고, 대신에 미국의 제재완화 조치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있다. 거칠더라도 새로운 관점과 발상의 확장을 계속 시도해야 궁극적으로 창의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로 막을 내린 뒤 국제사회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의 행보를 점치기란 쉽지 않으나, 그동안 신중한 모습을 보여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재개와 추가 제재의 도화선이 될 것이 뻔한 인공위성을 포함한 장거리 로켓 발사와 같은 무모한 도발을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이 도발이 자신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을 한순간에 좌절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이 시점에서 도발이 초래할 파국의 가장 큰 피해자는 북한 자신이며, 그다음은 미국이 아니라 남한이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실제로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면 당장 이를 중단해야 한다.

세계가 다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장에 주목하기에는 지난 1년간 한반도의 역사를 바꿔온 북-미 관계의 새 흐름이 너무 소중하며 결렬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새로운 합의를 위해 남긴 자산이 너무 아깝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미국이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한꺼번에 교환하는 일괄타결을 선호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미국의 ‘빅딜’에 대한 집착은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동시행동이 자칫 북한한테 비핵화를 기피하고 제재완화만 허용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 같다.

반면에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제재완화가 병행되지 않는 한 어떠한 비핵화 단계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회담 결렬 직후 리용호외무상을 통해 민생분야 제재해제의 대가로 영변의 모든 핵시설에 대해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양국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을 통한 영구 폐기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핵 폐기 방식에서 미국이 그동안 요구해온 검증을 받아들인 진전된 제안이었다.

그렇다면 북·미 양국 입장을 절충하여 새로운 타협안을 만들 수는 없을까? 단계를 최소화하여 북한 비핵화 조치의 수준을 높이고, 대신에 미국의 제재완화 조치를 이끌어내는 방법이 있다고 본다. 예컨대, 2단계로 구성된 ‘준(semi) 빅딜’을 추진하는 것이다. 1단계는 북한이 핵·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의 영구중지 확약과 함께 영변을 포함한 모든 지역의 핵시설과 장거리 로켓 생산시설을 미국 등 유관국의 검증과 공동작업 아래 영구 폐기하는 대신에 미국은 북한이 ‘영변 폐기’의 대가로 요구한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을 모두 해제하고 덧붙여 민수 경협 분야에 대한 금융제재도 해제하는 것이다. 최종 2단계는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 일체를 폐기하는 대신에, 미국이 대북제재를 전면 해제하고, 북-미 수교, 평화협정 등 비핵화 최종 단계의 임무를 완료하는 것이다.

2단계 ‘준 빅딜’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 북·미 양측이 합의 위반 시 부과할 제재 내용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복원하는 스냅백(snap-back) 조치를 취하며, 미국이 정권 교체 등의 이유로 제재해제에 대한 합의 이행을 거부할 경우에도 국제사회가 미국의 동향과 관계없이 기존 북-미 합의에 따라 대북 경협을 지속한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합의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은 북·미 당사자가 아니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나 한·중·러·일 등이 참가하는 6자회담 협의체에 위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정도의 제안이라면 미국도 받을 만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에 회의적인 미국 조야의 장벽을 웬만큼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북한이 너무 많은 양보라며 손사래를 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북한은 외부세계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전략적 거부 능력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해왔는데 그 정도는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들로도 충분하다. 비핵화를 진행하는 마당에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 이유가 없다. 사실 2단계 ‘준 빅딜’ 안은 단계의 축소를 통해 불가역적 비핵화와 제재완화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이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를 고집하면 판은 깨진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국 조야를 돌파할 정도의 의미있는 비핵화 조치를 내놓지 않는 한 제재완화도 불가능해 보인다. 이 엄연한 현실을 직시한 가운데 우리는 절충적 대안을 모색하고 제안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거칠더라도 새로운 관점과 발상의 확장을 계속 시도해야 궁극적으로 창의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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