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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따라 걷는 아이 - 선을 벗어나서 살면 무슨 일이 생길까?

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를 만났습니다

ⓒhuffpost

‘만일 원하는 것은 모두 이뤄주는 요술 방망이가 생긴다면 무엇을 바랄 것인가?’

자칫 유치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이에 대한 사람들의 답을 가만히 들어보면 각자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혹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만일 앞으로 마음먹은 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처음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이에 대해 머뭇거리고 정하지 못하면, 뜻대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그 기회를 놓치게 될 확률이 크다.

강의를 하면서 위의 두 가지 질문을 던졌을 때 미리 생각해둔 것처럼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스물, 서른, 마흔이 되어도 혹은 그 이상을 살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 하나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 살고 싶은 인생에 대해 정의하기 힘들어 하니 말이다.

이는 비단 성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초등학생 중에도 정답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면 자신 없어 하거나 불안을 느끼는 아이가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친구를 보면 도리어 엉뚱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낙오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지나칠 정도로 실수와 실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며 산다. 권위자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면 자기 생각조차 신뢰하지 못한다. 그러니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알 길이 없으니 다가온 기회를 그저 흘려보내고, 누군가 그려놓은 선을 따라 가며 살아간다. 혹여 선 밖으로 밀려날 것을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그림책 《선 따라 걷는 아이》는 제목처럼 선을 따라 걷기 놀이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한 여자아이의 하루를 보여준다.

몇 개의 선과 동그라미, 세모, 네모 등 단순한 도형으로 표현된 그림은 읽는 사람에 따라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한다.

아이는 바닥에 그려진 선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처음에는 마치 놀이처럼 느껴지지만, 선 밖으로 벗어나면 괴물이 사는 깊은 구멍 속으로 떨어진다는 소문에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흡사 장대 위에 놓은 외줄을 타듯이. 그래서 읽다 보면 선을 따라 걷는 아이가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이는 집에 다다를 때까지 뛰고 달리고 선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쉬지 않고 이동한다.

하지만 점점 누군가 그려놓은 선만을 따라 걷지는 않는다. 다리 위를 건널 때는 물 위를 걷고 싶은 마음,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대신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며 자기만의 세계를 선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더 이상 밟아야 할 선이 사라지자 공책에 선을 그린다.

아이가 그리는 선은 자유롭다. ‘한 평생처럼 긴 선, 아이처럼 짧은 선, 웃음 짓는 얼굴처럼 부드러운 선, 찡그린 표정처럼 날카로운 선, 지문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선’이다.

잠이 든 아이는 꿈속에서도 선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그러다 그만 선 밖으로 벗어난 구멍 속으로 떨어지고 만다. 누군가에게 들은 괴물이 산다던 그 구멍 속으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면 ‘휴~’ 하고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괴물 따위는 애초에 어디에도 없었다.

선 따라 걷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꿈속에서 이번에는 선을 밟지 않는 놀이를 하며 친구들과 한바탕 논다.

 

그림책 강의에서 《선 따라 걷는 아이》를 읽었을 때의 일이 다. 2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이 참여한 자리였는데 책을 읽고 보여준 반응 또한 매우 다양했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참여자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점, 선, 면으로만 그려진 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고 뭘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듣다 보니 자신이 느낀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뚜렷한 줄거리나 주제를 좀처럼 찾기 힘든 이 책에 대해 마음가는 대로 말한 후 듣게 될 자신에 대한 평가를 먼저 걱정하는 눈치였다. 마치 책에 있던 ‘구멍 속 괴물’에게 잡아먹히듯이 말이다.

내가 그에게 앞으로 살아가고 싶은 ‘인생 길’을 선으로 표현해보라고 하자, 그는 반듯한 수평선 하나를 그리며 “앞으로 제 인생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편안하고 안정적인 게 좋아요. 저는 그렇게 살기 위해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또 다른 참여자인 30대 워킹맘은 모범생으로 자란 자신의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마음이 저려왔다고 했다. 선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애쓰며, 혹여 선 밖으로 떨어져 구멍 속 괴물에게 잡아먹힐까 봐 두려워하며,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던 삶.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왜 그렇게 빡빡하게 살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는 그와 정반대로 키우려고 놀이식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학습을 시키느라 고가의 교육비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그는 정해진 선 밖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산 과거의 자신과 그와 반대로 살기 위해 애쓰는 지금의 모습이 왠지 똑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가 그어놓은 선을 지키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아이와 자신이 기준이 되어 편하고 행복한 길을 스스로 그리며 걷고 싶다고 말했다. 그 순간 그의 눈가에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차오른 통찰의 눈물이 반짝였다.

 

곧이어 두 아이의 엄마이며 15년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인 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경험했다는 40대 참여자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책에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모두 다 표현되어 있었다고 했다. 한창 성장기에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선을 따라 반듯하게 걷던 ‘나’를 만났고, 점점 더 빨리 달리고 달리며 누구보다 더 잘하는 것을 행복해하며 자신감 넘치던 ‘나’도 만나고, 힘겹게 올라갔다 끝도 없이 내려가고 끝이 없어 보이는 미궁 속을 헤매기도 했던 시절의 ‘나’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아이처럼 새로운 놀이를 기대하는 자신이 있다는 것이 반갑고 고맙다고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50대 참여자는 “모두의 이야기를 듣 다 보니 내가 지나온 시간도 이미 다 거기에 들어가 있네요. 그래서 별로 할 말이 없네요”라며 종이 위에 자신이 앞으로 살고 싶은 삶의 길을 부드러운 리본과 같은 선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나는 바람처럼 공기처럼 그렇게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고 싶어요. 마음가는 대로 자유롭게 그렇게 살아갈 거예요. 이제”라고 마무리하며 아이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선 따라 걷는 아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가 정해놓은 규칙인지도 모르면서 그것의 노예가 되어, 왜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규칙을 끝끝내 놓지도 못하고 지키며 살아가는 나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지금부터라도 내가 주인이 되어 나의 삶의 방식에 맞게 내가 걷고 싶은 길을 그리며 가도 괜찮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당신이 반드시 따라 걸어야 할 선은 어디에도 없으며, 누군가 그려놓은 선 위에서 내려와 나만의 선을 그린다고 해도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시작 된다. 이것이 진실이다.

* 에세이 ‘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를 만났습니다(꼼지락)’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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