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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08일 16시 5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08일 16시 55분 KST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이 진짜 관계 시작점이다

인간관계와 실내암벽등반은 비슷한 점이 있다

Robert Decelis Ltd via Getty Images
huffpost

실내 암벽을 탈 때는 암벽에 붙어 있는 홀드를 잡아 이동을 한다. 홀드는 돌멩이 혹은 바위같이 생긴 것들을 지칭하는 단어인데, 그 모양이 제 각각이다. 일정하지 않은 모양 때문에 손과 발, 몸의 모양을 수시로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멋대로 생긴 홀드를 안정적으로 감싸지 못해서 이내 곧 떨어지게 돼있다.

제멋대로 생긴 홀드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생김새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매끈하게 둥근 돌 모양이 아니라, 어느 부분은 그 양이 넘치다 못해 튀어나와있고, 어떤 부분은 부족해서 파여 있다. 튀어나오고 파인 정도가 저마다 달랐다. 우리도 똑같다. 어떤 특성은 조금 과해서 튀어나와있고, 어떤 특성은 부족해서 결핍된 상태이다. 모나지 않고 부족하지 않아야 이 세상 둥글게 둥글게,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며 살 수 있다고들 하는데 우리네 생김새는 울퉁불퉁하여 알게 모르게, 혹은 적나라하게 갈등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채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다만 내 것은 내가 채워도 될 것을, 조금 더 쉬운 방법으로 타인을 사용한다.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흐느껴 우는 밤에, 누군가 내 옆에 있다면 그 외로움이 가시고 행복감만 가득 찰 것 같다. 직업이 변변치 않아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위축되어 있는데, 직업 좋고 돈 많은 이가 내 옆에 있다면 목에 힘주며 당당하게 한 세상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채우려 하기 보다 상대를 통해 이득을 보려 한다. 그렇게 우리는 내 구미에 맞게 상대를 조종하고 통제하려고 한다.

허나, 세상일 어디 그렇게 만만했던 적이 있던가. 어떤 누구도 내 뜻대로, 내 입맛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이 지점이 위기이다. 상대가 내 욕망을 채워주지 않는 순간, 이 사람은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절망감과 함께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상대의 부족함에 대해 있는 힘껏 비난하고 내 사랑의 비련함을 강조하며 상대의 과오를 강조한다. 상대가 내 욕망을 채워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더욱 요구하기 시작한다.

역설적이게도 이제 관계가 끝난 것 같지만, 지금부터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지금부터가 진짜 관계 맺기의 시작이며 본질이다. 상대는 내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라 서로 관계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일뿐이다. 너와 나. 둘 다. 서로의 결핍을 완전히 채워주지는 않지만 그렇게 부족한 모습 그대로 공존하는 법을 배워간다. 내 욕망을 채워주지 못하는 상대가 밉고 야속하지만, 그 또한 그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니 그 사정을 헤아려 보려고 노력한다.

벽에 붙은 홀드처럼 우리 또한 생긴 모양이 제각각이다. 홀드에 안정적으로 내 몸을 안착시키기 위해 홀드 모양에 맞춰 내 몸을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것처럼. 내 욕구 또한 상대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맞춰 움직여야 한다. 어떤 욕구가 상대에게 너무 과하다면 좀 줄이고, 어떤 욕구는 상대가 채워줄 수 있어서 그대로 보존하고, 혹은 어떤 욕구는 너무 적지만 상대는 원하기에 오히려 부풀리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너무 튀어나온 부분은 다듬고, 너무 패인 부분은 채워가며 우리 만의 관계 모양을 만들어 가야만 한다.

처음에는 내 욕구를 채워주니 마냥 좋고 한없이 행복했지만 어느 순간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과 함께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된다. 그 순간, 상대에 대한 기대감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내 앞에 존재하는 상대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함께 맞춰가고 수용하며 살아가는 게 진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절망이라고 느꼈던 순간이 외려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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