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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08일 16시 08분 KST

61년생 여성노동자 정옥자가 평생 벗지 못한 '임금차별의 굴레'

'해고 위기'에 몰린 중장년 여성노동자 고용안정 방안 필요

한겨레

코오롱글로텍에 자동차 시트를 납품하는 하청업체 성진씨에스(CS)에서 20여년 일해온 봉제노동자 정옥자(가명·58)씨는 지난해 3월 회사 폐업으로 동료 80여명과 함께 해고됐다. 최근 몇년간 자동차 업종 구조조정으로 일감이 줄어든 탓이다. 봉제 경력 43년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고, 앞으로도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야 하지만, ‘환갑에 다다른 나이’에 재취업이 어려워 눈앞이 아득하다.

정씨는 1970∼1980년대 저임금 노동자로 시작해 1990년대부터는 공장 자동화로 단순생산직으로 일해왔다. 우리 사회는 이런 여성 노동자들의 희생에 바탕을 둔 ‘인건비 따먹기’로 성장했다. 1990년대 외환위기로 실직 위기를 겪고, 2000년대 본격화된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다 어느덧 은퇴기에 이른 정씨 또래 노동자들은 제조업 국외 이전 등으로 최저임금 일자리마저 지키기 어려운 ‘마지막 해고’ 위기에 놓였다.

■ 여성에게 더 가혹한 고용불안 공장 노동자인 남편의 수입이 불안정한 탓에 정씨는 실질적 생계부양자 구실을 해왔지만, 일과 출산·양육·가사를 병행하기 위해 퇴사와 재입사를 반복했다. 정씨는 아이들을 낳았던 1980년대 중후반 봉제공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봉제 부업을 하다 다시 직장을 구했다. 재입사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근속은 인정되지 않았다. 하루도 쉰 적이 없지만 ‘시장이 사주는 커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정씨의 실직은 처음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씨는 여성복 회사 ‘나산’의 공장에서 일했는데,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는 정씨와 동료들에게 두달치 월급과 퇴직금을 주지 않고 해고했다. 하지만 나산은 이듬해 가을부터 140% 이상 매출 신장을 기록하며 재기했다. 경제위기는 ‘체불임금’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여성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국가도 이들을 돌보진 않았다. 1997∼1998년 남성 경제활동참가율이 76.1%에서 75.1%로 1%포인트 감소할 때 여성은 49.8%에서 47.1%로 2.7%포인트가 줄었다.

■ 임금차별은 덤 1970년대 산업화 시기부터 여성 노동자의 역할은 짐작과 달리 ‘보조’만이 아니었다. 1970년에 이미 1000명 이상 제조업 사업체의 여성 노동자 비율이 61.8%에 이르렀다. 18살 미만도 8%였고, 대부분은 29살 미만이었다.

정씨도 16살이었던 1976년 서울 미아리 봉제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강원도 삼척에서 올라와 아침 8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철야를 하며 청바지를 만들어 고향의 가족을 부양했다. 한달 내내 청바지를 만들어 월급 4만5천원을 받았다. 동생들 학비란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수출 역군이자 부양자였지만 처우는 열악했다. 장시간·고강도 노동은 당시 제조업 생산직 노동자에게 매한가지였지만 여성은 임금차별도 덤으로 겪었다. 정씨는 “봉제 기술도 없는 남자 직원 월급이 기술 있는 여공의 두배쯤 될 때도 왜 남자는 돈 더 받냐, 하는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성별 임금격차의 차이와 차별’(2001) 보고서를 보면 1970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여성의 평균임금은 남성의 45%에도 못 미쳤다. 최저임금은 사실상 여성의 문제였다. 1970년대 최저임금제 실시를 주장하는 언론 보도의 중심에는 언제나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등장했다.

■ 경력 43년도 ‘커리어’ 못 돼 ‘저임금의 굴레’는 ‘여성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정씨는 “회사는 월급을 적게 주든 많이 주든 집에서 가까운 게 제일이었다. 5∼10분 거리에 직장을 잡아놓고 점심시간에는 집에 뛰어가서 빨래나 설거지, 청소를 했다”고 1980년대를 회상했다. 1985년 정씨가 첫아이를 낳고 다녔던 코오롱 신사복 봉제공장에는 요즘 웬만한 기업에도 없는 ‘직장어린이집’이 있었다. 당시 중소 규모 제조업체에 숙련된 여성 인력이 절실히 필요했단 방증이다.

얼핏 기혼 여성이 일하기 편한 환경처럼 보이지만 되레 저임금 일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굴레도 됐다. 여성 노동자들은 집에서 직장이 가깝다는 이유로 저임금을 감수했고, 정부는 주거지에 만드는 ‘아파트형 공장정책’으로 저임금 일자리를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주면 주는 대로 받았다”는 정씨는 봉제 실력이 쌓이고 쌓여도 최저임금 수준을 못 벗어났다. 경력 40여년 노동자 정씨가 지난해 3월 해고 전까지 받은 월급은 초과노동수당을 다 합쳐도 월 120만원 수준이었다. 회사는 2010년 이후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상여금을 기본급화하고 수당을 삭감해 임금을 동결했다.

평생을 일해온 결과는 보장된 노후가 아니다. 봉제업이나 전자산업 등에서 일해온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은 제조업 해외 이전 등으로 은퇴를 앞두고 잇따라 일자리를 잃고 있다. 지난해 해고 뒤 실업급여마저 끊긴 정씨는 “월급이 적고 특근을 밥 먹듯 해도 내 일처럼 했는데, 공장을 닫아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사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2017년 기준 연평균 가처분소득으로 보더라도 남성 가구주는 4665만원인 반면 여성 가구주는 그 절반 수준인 2277만원에 불과했다. 2017년 나온 ‘한국의 성평등보고서’를 보면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의 빈곤율은 2010년 20.1%에서 2016년 18%로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남성 가구주 빈곤율은 절반 이하인 8.7%(2016년 기준)이다. ‘노동자의 미래’ 박준도 활동가는 “젊어서 저임금 인력으로 동원된 중장년 여성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로 조용히 대량해고되고 있다”며 “이들을 고려한 산업정책, 고용안정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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