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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12일 16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3월 12일 17시 18분 KST

공기가 이쯤되면 떠나고 싶지 아니한가

이민자를 위한 변명

© 안선희
요즘 제일 생각나는 도시 시드니, 호주

세계여행 후 한국 생활 22개월 차-

언제 여행을 다녀왔냐는 듯 월요병을 겪는 한 명의 직장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지만, 청소할 때조차 창문을 열지 못하는 요즘 같은 날씨엔 이민 생각이 절로 든다.

비록 나는 이민에 대한 마음을 접긴 했지만 내가 열 살, 아니 다섯 살만 더 어렸더라면 나는 남편을 설득해 이민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의 중심엔 우리가 여행하면서 만난 이민자들의 일상도 한몫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쓴 이민자 인터뷰에 남겨진 댓글을 본 후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많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써보려 한다. 떠난 사람은 비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말이다.

© 안선희
도심과 휴양지의 어울림이 매력적인 LA, 미국
huffpost

댓글 1: 취준생 A 씨,

″이민 가서 고생한 것처럼 한국에서만 했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지 않나요? 그럴 거면 말 통하는 한국이 최고지.”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세상 어느 곳이든 한국사람이 살기에 한국보다 좋은 곳은 없다. 하지만 ‘가장 살기 좋은 곳‘을 버리고, 타국에서 고생하면서까지 정착하는 이유가 뭘까? 그건 바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다.

우리가 만난 이민자들 중 30대 초반에 이민을 간 사람들 대부분은 야근을 당연시하고, 회식을 강요하고, 문화라고는 술자리 밖에 없는 회사생활이 싫어서 떠난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이야 그런 문화가 서서히 사라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조직문화는 가족보다 직장을 우선시한다.

이민을 위해 취업하느라 고생한 만큼 한국에서 면접 준비를 하고 이력서를 냈다면 어쩌면 더 높은 연봉을 받는 좋은 회사(라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에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회사는 4주간의 연차도 없고, 태풍이 오나 폭설이 오나 출근을 해야 하며, 친목을 다진다는 목적으로 꼬박꼬박 회식에 참석해야 한다. 야근수당 같은 허울만 좋은 제도는 말도 꺼내기 민망하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게 만족스럽고, 퇴근 후 술자리가 너무나 좋은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한국이 딱이다.

© 안선희
낯설어서 더욱 깊이 빠져든 모스크바, 러시아

댓글 2: 이민 갔다 돌아온 B 씨,

″나이 들면 다 향수병 걸려서 돌아오게 되어 있어. 이민 가면 남자만 고생이야.”

이민 1세대는 정말 정착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만 했다. 그들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가장 중요했고, 그러기 위해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족 간의 유대감은 적고, 자식들 다 키우고 나니 혼자 남게 된 것이다. 이건 한국의 아버지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민사회에서 ’40대 이상의 남자가 개 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어느 나라든 여성과 아이가 우선시 되기 때문이다. 이건 가부장 사회의 중축이었던 한국 남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한국에서는 최고 권력자로 군림했지만, 외국에서는 그런 우대사항이 사라지니 살기 힘들어진 건 당연한 일이다.

밥상은 당연히 아내가 차려줘야 하고, 취미라고는 TV 보는 게 전부이며, 아이 교육에는 관심도 없고, 저녁 술자리 모임만 찾는 사람이라면 한국을 떠날 이유가 전혀 없다.

© 안선희
한국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고 느껴졌던 아바나, 쿠바

댓글 3: 호주 워킹홀리데이 다녀온 C 씨,

″호주에서 청소해서 돈 많이 번다고?

 인종차별 받으며 청소하느니 한국에서 맘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이민자 인터뷰를 하면서 모두에게 물어본 질문 중 하나가 ‘인종차별을 경험해 본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이었다. 그러다 한참을 지나 깨달았다.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질문이었는지 말이다. 그냥 한국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백인이면 우대하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계면 일단 무시하는 게 한국 아니던가.

이민자 중 이런 대답을 한 사람이 있었다.

‘인종차별을 겪는 건 아무래도 사회적 위치 때문일 것 같아요.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만나는 사람은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일을 많이 경험하는 거고, 회사생활을 하면 아무래도 그런 일이 별로 없어요. 제가 호주에서 13년 살아본 경험으로는 사회 전반적으로는 차별이 적은 편이에요. 그걸 지향하고요. 만약 차별을 겪었다면 그건 차별한 사람 개인의 문제일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이게 정답이다. 물론 길거리에서 동양 여자한테 욕을 하기도 하고, 쉽게 강탈을 당하기도 하며, 상위 주류층으로 올라가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민자가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면 그 누구도 쉽게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건 본인의 노력하에 따른 것이다.

한인타운에 살면서 그 나라 언어는 배울 생각도 없고, 한국사람 모임만 찾아다니면서 그 나라 사람들이 자신과 어울리기를 꺼려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딜 가든 본인이 차별당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안선희
작은 마을이 너무 예뻐 민박집을 해 볼까 고민했었던 엘 칼라파테, 아르헨티나

댓글 4: 명절 때만 부모님 만나러 가는 D 씨,

″부모님 두고 외국 나가는 게 얼마나 이기적이야. 자식, 손주 보는 낙으로 사는 게 부모인데.”

이민자는 언제까지 불효자가 되어야 할까. 사실 막상 이민을 간다고 하면 한국에 남을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자. 지척 거리에 사는 부모님에게 (아이 맡길 일이 없다면) 얼마나 연락을 자주 하는지, 명절이나 경조사 외에 친척들을 만나는 일이 있는지 말이다.

우리가 만난 이민자 중 몇 명은 1년 동안 내가 서울에서 부모님을 만난 일수보다 더 긴 기간을 부모님과 함께 지냈다. 우리야 명절에 한 번, 생신 때 한 번 인사드리는 게 일상이지만 그들은 부모님을 해외로 모시고 또는 한국에 들어와 지내는 동안 장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 연락하는 횟수는 그 보다 훨씬 더 많다. 물리적인 거리는 멀지언정 마음의 거리는 한국에서보다 가깝게 지내고 있다.

어차피 명절에만 만나는 부모님이라면 미국에 산들, 서울에 산들 다를 게 있을까. 부모님이 편찮아지셔서 한국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면 그 또한 그들의 사정이지 다른 사람이 뭐라고 참견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민자들 중엔 일정기간이 지난 후 부모님을 초청해 함께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주말마다 가족모임을 해야 하고, 엄마가 없으면 밥도 빨래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자신을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리 못할 일도 아닌 것이다.

사는 곳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다. 누구에게는 한국이 좋을 수도, 또 누구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서울에 살다 지방으로 이사를 갔다고 해서 문제 삼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민자들은 말한다. 요즘은 메신저도 잘 되고, 한국과 교류도 쉬워 멀리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이민자들은 조금 멀리 사는 것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 글쓴이가 쓴 이민자 인터뷰가 궁금하다면 <그래서 나는 한국을 떠났다>를 참고하시길.

*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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