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19년 03월 07일 17시 48분 KST

북한과 미국은 왜 협상장에서 '다른 꿈'을 꾸었을까?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대담을 나누었다

 

 

한겨레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대담을 하고 있다. 



 

북한은 명확해졌는데, 미국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과와 그 이후 양쪽의 행보를 두고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연세대 명예특임교수)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내린 잠정 진단이다.

문 특보는 “미국에서 ‘폼페이오·비건 패러다임’과 ‘볼턴 패러다임’이 각축해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손을 들어줬다”고 짚었다. “회담 이후 미국 쪽 메시지가 불분명하고 혼란스럽다. 두 패러다임과 이를 추슬러야 할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세 축 사이에 뭔가 엇박자가 난다”는 것이다. ‘볼턴 패러다임’이 ‘선 비핵화, 후 보상’을 핵심으로 한다면, ‘폼페이오·비건 패러다임’은 ‘비핵화-상응조처 점진·동시·병행’ 방안에 가깝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의미있는 비핵화 조처를 취했을 때 미국이 제재를 일부라도 완화할 생각이 있는지가 아직도 불분명하다”며 “이게 핵심적인 문제”라고 짚었다.

상황 진단은 같은데, 한반도 평화 과정을 추동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촉진 방안을 두곤 서로 다른 경로를 조언했다.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생각을 파악해 (5·26 통일각 회담과 같은) 판문점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해 중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토대로 “남-북-미 3자 정상회담 추진이 필요하다. 압축된 정상회담 방식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이 판문점 원포인트 회담을 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은 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큰 틀에서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토대로 “북-미 정상이 만나 도장만 찍을 수 있는 수준까지 실무협상을 벌여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특보와 이 전 장관은 한반도 평화 과정의 모멘텀을 지속시키려면 남북관계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한국 정부가 중재자 구실을 하려면 남북관계에서 일정한 대미 자율성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짚었다. 문 특보는 “(제재와 관련해) 미국의 우려를 한국이 더 우려해서 스스로 족쇄를 채운다”고 비판했다. 이 전 장관과 문 특보는 “제재 대상이 아닌 남북관계는 물론, 제재 틀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통일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담은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 안 연세대 통일연구원에서 이제훈 선임기자의 사회로 1시간30분 남짓 진행됐다.

 

사회 : 합의 무산의 가장 큰 이유는?

문정인(이하 문) : 트럼프 대통령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빅딜을 선택한 게 가장 큰 이유다. 볼턴의 ‘선 폐기 후 보상’이다. 핵·생화학무기·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전체를 폐기하라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김 위원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그게 아니고서야 합의를 못할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종석(이하 이) : 미국이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인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문 :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1월31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 4개조의 ‘점진·동시·병행 이행’, 곧 ‘멀티 트랙’ 접근을 내비치며 ‘협상의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하노이에서 볼턴이 갑자기 ‘주인공’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왜 이런 ‘이중적 신호’를 보냈는지 의문이다. 북-미 정상이 ‘친교만찬’을 하던 27일 밤, 미국 언론은 온통 (트럼프 대통령의 전 변호인인) 마이클 코언의 하원 청문회에만 관심을 쏟았다. 코언 청문회라는 국내 정치적 변수 때문에 ‘노딜’로 방향을 선회한 게 아닌가 싶다. ‘노딜’이 되려면 미국은 북한이 받지 못할 빅딜을 던져야 했을 거다. 27일 밤, 28일 오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적할 필요가 있다.

 

Business Insider FR

 

사회 :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 이전, 곧 ‘선 비핵화’ 노선으로 선회했다는 뜻인가?

이 : 확고한 전략 선회가 있다는 느낌은 안 든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비핵화 조처에 상응해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용의가 있어 보인다. 다만 이번엔 볼턴으로 상징되는 국내 비판세력을 고려해 그런 선택을 한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직후 회견에서 보여준 전략이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볼턴의 말도 구체적이지 않다.

문 : 불분명하다. 볼턴식 접근은 싱가포르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 같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하는 걸 보면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연장선 아닌가.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한테 중재를 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나. 트럼프 대통령한테 볼턴은 국내 정치용, 폼페이오는 협상용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사회 : 회담 이후 북-미의 행보도 이례적인데.

이 : 합의 무산 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지도 않고, 남북·북미 대화가 끊기지 않은 건 놀랄 만한 일이다. 구시대 회담 악습의 반전이자 회담 역사의 새 역사를 열었다.

문 : 북-미 모두 회담이 성공했다고 한다. 심지어 볼턴조차. 두 정상 사이에 ‘딜’은 무산됐지만, 이면에 충분한 교감과 신뢰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몇주 안에 평양에 협상팀을 보내고 싶다’는 폼페이오 장관의 제안을 접하니 더 그렇다. 파국이 아닌 과도기적 결렬, 긴 프로세스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재개가 가능하다고 본다.

 

사회 : 김 위원장의 전략을 어떻게 보나?

이 : 리용호 외무상의 회견으로 분명히 드러났다. 영변 핵시설을 미국이 원하는 검증·사찰 방법으로 완전·영구 폐기하겠다는 제안이 핵심이다. 공개적으로 밝혔기에 되돌릴 수 없다. 그런데 미국은 북이 이만큼 하면 제재를 완화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않고 있다. 영변은 일각에서 주장하듯 ‘폐공장’이 아니다. 북한 핵능력의 최소한 절반 이상이다. 그런데 미국은 ‘골포스트’를 옮기려 한다.

김 위원장한테 연락사무소나 종전선언은 지난해 여름까지의 관심 사항이었다. 지금은 제재 완화가 가장 중요하다. 다만 1㎝라도 제재 완화를 원한다. 남북경협만 예외로 하는 건 북한한테는 ‘언 땅에 오줌 누기’다. 북한의 경제, 미래와 연결된 제재 완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 이뤄지고, 북-중 경제협력의 틈이 생긴다는 생각이다.

문 : 북한은 줄곧 원칙적인 접근을 해왔다. 싱가포르 공동성명 1조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은 “적대적 의도와 정책의 해소”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첫 단계가 제재 완화 요구다. 그러고 나서 연락사무소, 평화선언, 국교 정상화 등이 오는 것이다.

 

사회 : 북한이 요구한 ‘제재 해제’의 수준을 두고 북-미의 말이 엇갈리는데?

이 : 북쪽이 ‘제재 전부 해제’를 요구한 것과 같다는 미국 쪽 해석은 억지 논리다. (미국의) 대북 제재는 뿌리가 깊고 광범위하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가 하나도 없던 2005년에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을 위해 북쪽에 386컴퓨터를 제공하려 했는데 못 했다. 컴퓨터가 군수용으로 전용될 수 있어 안 된다는 미국 국내법 때문이다. 민생 분야 제재가 시작된 게 2016년부터다. 전체 제재에서 아주 큰 비중은 아니다. 미국은 북쪽이 그때부터 비명을 질렀다고 본다. 그래서 ‘그게 다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문 : 북쪽이 대량살상무기를 다 폐기하면 더 밝은 미래를 보장해 주겠다는 볼턴식 ‘노란 봉투 약속’은 허구다.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점진적 동시 교환만이 북핵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다.

 

사회 : ‘톱다운’ 방식을 두고 말이 많은데.

이 : 이번에 ‘톱다운’으로 풀어가며 두 정상과 (직접) 연결된 실무대표의 협상을 병행한 건 협상 방식의 진화다. ‘비핵화-제재 해제’라는 핵심 쟁점을 풀지 못했지만, 연락사무소, 평화선언 등엔 실무협상에서 공감을 이뤘다. 톱다운 방식이 좀 더 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만, 실패 운운에는 동의할 수 없다.

문 :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북쪽의 ‘영변 폐기’ 제안을 볼 수 있겠나. ‘보텀업’ 방식만으론 아무것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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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 3차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언제까지 무엇이 이뤄져야 하나?

이 : 미국 쪽의 불명확성이 해소돼야 한다. 의미있는 비핵화에 맞춰 제재를 일부라도 완화할 용의가 있는지 확인돼야 한다. ‘선 폐기, 후 보상’으로는 접점을 찾을 수 없다.

문 :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생각이 볼턴 쪽이면 어렵다. 폼페이오·비건 쪽이면 문 대통령의 중재가 가능하다. 아무리 늦어도 미국 대선이 본격화할 내년 여름 이전엔 풀어야 한다.

 

사회 : 문 대통령은 촉진자·중재자로서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고 보나?

문 : 북·미 정상의 생각을 읽고 ‘최대공약수’를 찾아야 한다. 북·미가 궤도에서 일탈하지 않게 막아야 한다. 북·미 양쪽으로 다 움직여야 한다.

이 :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의 중재를 요청했고, 김 위원장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중재자 구실을 하려면 남북관계에서 일정한 대미 자율성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북한이 우리를 중재자로 받아들이고 신뢰한다. 지금까지는 대미 자율성 측면에선 잘 안 됐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비핵화와 연동시키면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미국과 협상해 제재 예외 영역으로 만들어 비핵화 과정과 분리시켜야 한다. 이 어려운 국면에도 남북관계가 모멘텀을 추동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용기가 필요하다.

 

사회 : 남북관계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문 : 문 대통령이 “제재 틀 안에서 최대한 찾아, 속도감 있게 준비하라”고 주문했는데, 통일부 등이 ‘최대한’ 하고 있지 않다. 너무 몸을 사린다.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해야 한다.

이 : 2017년과 비교해 한반도 안보 상황은 상전벽해다. 남북관계 관리는 현상 유지만으론 안 된다. 지속적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한다. 돈을 들이지 않고 남북교류는 어렵다.

 

사회 : 중국·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나?

문 :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도 협력해야 한다. 일본을 제치고 나갈 순 없다. 지금 한-중 협의가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에 ‘올인’(다 걸기) 하고 있다. 이래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외교에 큰 진전을 보기 어렵다.

이 : 중국이 긍정적인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문을 만들어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설득할 수 있도록 한-중이 머리를 맞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야 한다.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 도출 과정에서 한-중의 협력 선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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