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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의 실패는 예견됐다

'소비자가 왜 신용카드를 사용하냐'에 대한 답이 없었다

  • 백승호
  • 입력 2019.03.07 14:45
  • 수정 2019.03.07 15:40

지난 6일, 국회 정무위 소속 김종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올 1월 제로페이의 결제실적은 총 8633건, 금액으로 치면 1억 9949만원이다. 같은 기간 신용카드(체크 카드 등 포함) 사용실적이 건수로는 15억 6천만, 액수로는 58조1천억원인 점에 비추면 초라한 성적이다.

1월 31일 기준 제로페이에 정식 등록한 가맹점이 4만6천628개인 것을 고려하면 한 달 평균 가맹점당 거래실적은 0.19건, 액수로는 4천278원에 그친다. 소위 ‘개업발’조차 먹히지 않았다.

 

 

제로페이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시범운영이 시작됐다. 소상공인의 카드수수료 부담 완화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은행과 민간 간편결제 사업자들과 준비한 결과물이다.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소상공인이 부담하는 수수료율은 매출액에 따라 0%(연 매출 8억 이하) 내지는 0.5%(연 매출 12억 초과)에 불과하다.

서비스 활성화를 위해 유인책도 내놨다. 정부는 제로페이를 사용하면 연말정산에서 사용액의 40%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를 이용하면 47만원 가량을 추가로 소득공제 받을 것이라고 광고했다. (물론 아래 기사를 참조하면 알 수 있듯 47만원이라는 액수에는 다소 과장이 섞여 있다.)

 

 

하지만 ‘소상공인과 소비자 모두 윈윈’이라는 유인책을 내건 제로페이는 1월 실적만 놓고 보면 사실상 실패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실패는 예견됐다. 허프포스트는 지난 12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리포트를 분석해 ‘소득공제’만으로는 신용카드 사용자를 제로페이로 유인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작년 9월에 발간된 ’2018 조세특례 심층평가′ 자료에 따르면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전반적인 소비/지출에 영향을 미쳤나는 물음에 전체 응답자 중 61.2%는 ”변화가 없었다”고 답했다. 또 체크카드처럼 더 높은 공제율을 제공하는 결제 수단이 등장했을 때 신용카드 이용에 변화가 있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50.1%가 변화가 없었다고 답했다.

또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50.9%가 결제의 편리성을 꼽았고 41%는 신용카드 마일리지 혜택을 들었다. 소득공제 혜택을 이유로 든 사람은 31.2%에 불과했다.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소비자의 관성이 만만치 않다는 대목이었다. 신용카드와 사용방법이 거의 동일한 체크카드가 등장함에도 신용카드 사용을 고수하는 사람이 절반이나 되는 점을 볼 때, 제로페이가 높은 소득공제를 제공한다고 해도 상당수의 사용자는 기존에 하던 대로 신용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았다.

신용카드 사용자의 41%가 신용카드 사용 이유를 ‘신용카드 혜택’으로 꼽은 사실도 주목해야 했다. 금융위원회는 ”카드 이용자는 연회비로 8000억원을 내면 4조5000억원의 혜택을 누린다”고 말한 바 있다. 신용카드 사용 자체로 소비자가 얻는 혜택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제로페이가 내세운 ‘연말정산’의 유리함을 신용카드의 혜택이 상쇄하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이제로페이를 선택할 가능성은 작았다.

마찬가지로 전통시장 활성화를 명목으로 정부가 내건 ‘소득공제 40%’도 주목해야 했다. 정부는 지난 2012년부터 전통시장 활성화를 명목으로 전통시장에서 사용한 신용카드 금액에 대해서 15%가 아닌 30%를 소득공제 해주었다. 이 공제율은 2018년에 40%로 상향됐다.

 

 

결과적으로는 큰 효과가 없었다. 매출로만 따져보자면 정책 도입 이후 전통시장의 일평균 매출액은 소폭 늘긴 했다. 도입 첫해에는 전년보다 478만원 감소한 4502만원을 기록했고 2013년에도 줄어들었지만 2014년부터 반등해 2016년에는 5000만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전통시장 매출 증가가 신용카드 등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 효과인지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2017년 기준 전통시장에서의 신용카드 이용률은 6.7%에 불과하다. 여전히 현금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조세재정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5.6%가 전통시장에서 결제할 경우 소득공제가 추가로 된다고 알고 있었으나 응답자의 61.3%는 추가 소득공제에도 불구하고 전통시장 사용에 변화가 없었다고 답한 것도 주목할만 하다.

‘소득공제’만으로는 소비자의 소비 관성을 유인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전통시장의 사례로 예견할 수 있었다.

오히려 답은 다른 데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안되는 금액이긴 하지만 전체 제로페이 결제 금액중 44%가 케이뱅크를 통해서 결제됐다는 부분이다. 케이뱅크는 올해 1월 내놓은 결제시스템 ‘케뱅페이’에 제로페이와 연계했다. 케뱅페이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쉽게 제로페이를 이용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케이뱅크를 통한 제로페이 사용자가 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소상공인 수수료 0’ 같은 대의명분이나 ‘소득공제 40%’ 같은 와닿지 않는 혜택으로 유도하기보다는 제로페이라는 서비스 자체가 소비자의 삶을 파고들 수 있게끔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도 딜레마가 있다. 사용자의 이용 편의를 높이기 위해 부대시설을 마련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용처를 넓히는 데는 돈이 든다. 그렇게 되면 제로페이를 ‘제로’로 운영하기 힘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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