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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성적 학대 혐의를 미디어가 어떻게 간과했는가

영리한 해결사 팀의 도움으로 잭슨은 자기 이미지를 조종했다.

  • 김도훈
  • 입력 2019.03.06 15:11
  • 수정 2019.03.06 15:13
ⓒPeter Still via Getty Images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에 대한 성적 학대 혐의가 공개적으로 제기된지 몇 달 뒤, 배니티 페어의 모린 오스는 1994년 1월호에 “할리우드의 기준으로도 마이클 잭슨의 괴상함은 전설적이지만, 그는 늘 유명세라는 갑옷의 보호를 받아왔다.”고 썼다.

“연애를 한다고 알려진 적이 한 번도 없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이 은둔자가 어린이들과 함께 판타지 라이프를 살기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서 거의 아무도 그 동기에 대해 제대로 의문을 품지 않았다. 특히 그를 통해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CEO와 거물들이 그랬다.”

HBO의 ‘리빙 네버랜드’는 성적 학대 고발자와 그 가족들의 삶이 산산조각날 수 있음을 파헤쳐 충격적이고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하지만 특히 두 번째 파트에서는 잭슨은 비현실적인 슈퍼스타덤 덕분에 커리어 대부분 동안 성적 학대 혐의가 미디어의 대대적 조사를 피해가게 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많은 성범죄 사건들이 그랬듯, 매체들은 잭슨에 대한 혐의 보도가 까다롭다고 여겼다. 1994년의 오스(Orth) 기사에 의하면 일부 매체는 너무 외설적이어서 다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스는 ‘수익성이 좋고 계속 자라나고 있는 셀러브리티 가십 공장’에서 돈을 받아내기 위해 잭슨에 대한 이야기를 타블로이드에 들고 간 사람들이 많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뉴욕 타임스와 로스 앤젤레스 타임스 등 평판이 좋은 매체는 1993년에 챈들러가 주장한 혐의를 자세히 다루지 않았고, 잭슨이 갈취 당한 것이라는 잭슨측 반응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마이클 잭슨이 어린 소년들을 추행할 수도 있다는 걸 그저 믿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았고, 주류 매체의 뜨뜻미지근한 보도는 대중의 반감과 주저를 반영했다.” 오스 기사다.

2009년에 사망한 잭슨은 셀러브리티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의 산물이었다. 기자, 팬, 주위 사람들(‘리빙 네버랜드’에 등장하는 고발자 웨이드 롭슨, 제임스 세이프척과 그 가족들도 포함된다)도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이에 참여한다.

이 시스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잭슨의 가족, 에스테이트, 열렬한 팬들은 ‘리빙 네버랜드’에 항의했으며, 롭슨, 세이프척, 댄 리드 감독을 위협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기까지 잭슨에 대해 나온 기사들을 보면 이 시스템 때문에 세상이 잭슨에 대한 혐의에 등을 돌리기가 더 쉬웠을 수 있겠다는 걸 알 수 있다.

 

잭슨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담당한 영리한 해결사 팀의 도움으로 잭슨은 자기 이미지를 조종했다.

평생 있었던 여러 학대 혐의를 부정했고 2005년 재판 후 무혐의로 풀려난 잭슨에겐 성적 학대 고발들이 그를 끌어내리려는 의도라고 생각한 옹호자들이 많았다. 1994년 GQ 커버 스토리는 잭슨이 ‘누명을 썼는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고, 1993년 고발에 대한 보도들은 “미국 미디어 과잉의 최악의 사례’라고 주장했다.

TV 타블로이드 쇼 ‘하드 카피’ 진행자인 다이앤 다이먼드가 1993년에 혐의에 대해 처음으로 보도했지만, 잭슨 측과 가까운 취재원이 이야기하지 말라고 지시를 받았거나 ‘돈을 원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마이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는 다정한 사람이고, 5천 달러를 주면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겠다.’ 내가 잭슨 측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는 것이 그것 때문에 정말 늦어졌다.” 다이먼드의 1994년 발언이다.

배니티 페어에 의하면 다이먼드는 잭슨의 대리인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잭슨 측은 부인한다). 다이먼드는 자기 사무실 앞에서 팬들이 자기를 공격했다. 한번은 누군가가 자기 차를 따고 들어왔다고 썼다. 2005년에는 “잭슨의 개인 탐정이 내 사무실 전화를 도청했다”(FBI 측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Peter Still via Getty Images

잭슨은 인터뷰를 삼가고 어린이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자선 활동으로 뉴스 보도를 돌림으로써 ‘흠잡을데 없는 이미지’와 보편적 매력을 키웠다.

잭슨은 자신의 이미지를 조종하며 인터뷰는 되도록 피했다. 1987년 롤링 스톤에서는 잭슨이 ‘통제광’이라고 불렀다. ‘E.T.’ 사운드트랙 너래이터로 잭슨을 기용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983년에 잭슨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조종하는, 현존하는 마지막 순수한 사람 중 하나’라고 롤링 스톤에 말했다.

잭슨이 드물게 인터뷰에 응할 때면, 주로 자선 활동이 주제로 등장했고 호의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1992년 에보니 인터뷰에서 잭슨이 ‘부정적 미디어 캠페인’을 상대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ASSOCIATED PRESS

그의 대중적 이미지를 바꾼 여러 자선 활동 중 상당수는 병든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잭슨은 일부 어린이들을 네버랜드 랜치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하기도 했고, 자고 갈 수도 있게 해주었다. 이때 성적 학대가 몇 건 일어났다는 고발도 있었다.

“모두를, 특히 이런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하고 기쁨을 주는 것은 내 재능의 일부다.” 1989년, 뉴욕 브루클린의 병원에서 4세 백혈병 환자 대리언 페이건을 만났을 때 잭슨이 뉴스데이에 했던 말이다. “내 꿈은 투어를 하며 전세계 어린이들, 배고픈 아이을 다 만나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잭슨은 대중 앞에 나타날 때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1985년 PBS 뉴스아워 중 잭슨의 유명한 펩시 광고에 대한 꼭지에서, 마케팅 애널리스트 페이스 팝콘은 왜 어린이들이 잭슨의 열렬한 팬인지 언급했다.

“미국의 모든 어린이들은 잭슨을 따라한다. 고개를 돌렸다가 눈앞의 잭슨을 본다는 건 모든 소년들의 꿈일 것이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녹취록에 기록된 당시 팝콘의 말이다.

2년 뒤, 잭슨의 한 광고에는 당시 9세였던 세이프척이 드레싱룸에서 잭슨을 보고 놀라며 돌아보는 장면이 나왔다.

 

잭슨 관련 기사에는 보통 매혹과 호기심이 깔려 있었다. 그의 수상쩍은 행동은 악의없는 ‘개인적 특이함’이나 ‘별남’으로 치부되곤 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기의 기사들은 잭슨을 묘사할 때 ‘아이 같다’, ‘순진하다’, ‘순수하다’, ‘수수께끼’, ‘은둔자’, ‘피리 부는 사람’ 등의 단어를 흔히 썼다.

일부 기사들에서는 네버랜드에서 어린이들이 자고 가는 것, 잭슨의 친구들 중 어린이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언뜻 언급하기도 했다. 지금 보면 으스스하게 느껴진다. 1992년 롤링 스톤 피처 기사에서는 잭슨이 어린이들에게 도망가는 것의 기묘함을 짚었다.

 

잭슨은 자주 어린이들을 불러 함께 논다. 개인 대변인인 밥 존스(잭슨이 모타운 소속 잭슨 5 멤버일 때 처음 함께 일했던 사람이다)는 혜택을 못받는,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고 라이언 화이트 군과 같은 경우)들을 ‘버스에 가득’ 태워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슈퍼스타 잭슨의 개인적 친구인 어린이들도 온다.

“어린이들이 여기에 오면 너무 흥분해서 잠들지 못할 때가 있다.” 잭슨의 극장 설계를 돕고 영사 기사를 맡았던 리 터커의 말이다. “가끔 새벽 2시에 전화를 받는다. ‘리, 이런 이런 영화 보여줄 수 있어?’ 네버랜드에서는 어린이들이 정해진 시간에 잠들지 않아도 된다. 어린이들이 있을 때면 이곳의 주인은 어린이들이다.”

 

당시 어떤 기사들에는 롭슨이 잭슨의 ‘어린 친구들’ 중 하나이며, 세이프척은 ‘새로운 어린 친구’라고 묘사했다.

 

기사들은 잭슨에겐 어린 시절이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들과 함께 있는 걸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잭슨은 자신이 어린이들과 있을 때 가장 편한 이유는 성인들보다는 어린이들에게 더 공감이 가기 때문이라고 기자들에게 자주 말했다.

“어린이들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1983년에 롤링 스톤에 했던 말이다.

1992년 롤링 스톤에도 이와 비슷한 언급이 있었다.

 

잭슨은 어린이들을 지극히 좋아한다. 잭슨을 아는 이들은 잭슨이 어린이들과 있을 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이유는 아이들이 자신이 빅 스타가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좋아한다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 관계자는 “당신의 키가 1미터 미만이라면 당신은 마이클 잭슨에게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잭슨과 그의 옹호자들은 그의 행동 중 일부는 잭슨이 평생 유명인이었고 외롭게 고립되어 살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자주 말했다.

“어떤 슈퍼스타든 그렇듯,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는 정말이지 분명하지 않다.”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를 감독했던 존 랜디스가 1992년에 했던 말이다. “제정신을 지키며 살기가 정말 어렵다.”

그의 어린 시절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자주 언급되었다. 잭슨은 1993년 TV 생방송에서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엄격하게 통제하기로 악명높았던 아버지로부터 육체적 학대를 당했다는 주장을 길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변명에는 문제가 많다. 슬레이트(Slate)의 대니얼 엥버가 최근 썼듯, “학대의 세대간 전파 이론은” 복잡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과학에는 온갖 세세한 사항과 조건이 따르기 때문에, 그런 명백한 설명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기사들은 보통 잭슨이 두 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초현실적 슈퍼스타이자 따라올 자가 없는 퍼포머 vs. 타블로이드가 열광하는 대상

“나는 그가 정말로 피터팬이라고 생각한다.” 잭슨의 안무가 마이클 피터스가 1984년에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그는 언제나 어른과 아이로 양분된다. 그는 기업을 운영하고 음반사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다. 한편 트레일러에 앉아 12살짜리 친구와 몇 시간이고 카드 놀이를 할 수 있다.”

롤링 스톤은 1987년에 “엔터테이너로서 그에게 맞설 사람은 없다.”고 쓰며, 동시에 잭슨은 “변덕이 심한 ‘스타 차일드’고, 사실상 평생 셀러브리티였고, 다른 셀러브리티와 동물들, 마네킹과 만화로 이루어진 동화 왕국에 산다”고 말했다.

“엘리펀트 맨의 시체를 구입해 고압실에 넣고 산소를 주입하겠다거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결혼할 계획”이 있다는 타블로이드 이야기는 그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잭슨은 자신의 이미지를 되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오프라 인터뷰 등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완전히 지어낸 것”이라고 부인했지만, 일부 기사들은 잭슨이나 대변인의 입에서 나왔던 이야기라고 주장했다(그래서 타블로이드에서는 ‘Wacko Jacko 미친 잭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오프라 인터뷰 몇 주 뒤, 챈들러가 고발하기 몇 달 전인 1993년 2월, 잭슨은 그래미 레전드 어워드를 받았다. 그의 수락 연설을 지금 읽어보면 여러 해에 걸친 여러 변명들을 모두 요약한 섬뜩한 내용으로 느껴진다.

“세상이 내가 그토록 괴상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나는 몰랐다. 하지만 나처럼 5살 때부터 1억 명 앞에서 자라난 사람은 자동적으로 남들과는 달라진다. 나는 어린 시절을 완전히 빼앗겼다. 크리스마스도, 생일도 없었다. 정상적인 어린 시절, 어린 시절의 정상적인 기쁨이 아니었다. 힘든 일, 노력, 분투의 대가로 주어졌다.”

잭슨은 “아프고 불우한 어린이들을 포함한 전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감사를 보냈다.

“나는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있을 때 정말 많은 것을 배운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문제들(도시 빈민가 범죄, 대규모 전쟁과 테러, 과잉 수용된 교도소 등)이 어린이들이 어린 시절을 빼앗긴 결과라는 것을 깨닫는다.”

*허프포스트US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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