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버진애틀랜틱항공이 여성 승무원들에게 적용됐던 메이크업 의무 규정을 폐지하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요청이 있을 때만 지급했던 바지 유니폼도 기본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BBC와 가디언 등에 따르면, 버진항공은 지난 4일 승무원들에게 이같은 새로운 규정을 공지했다. 고객 담당 전무 마크 앤더슨은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끝에 ”직원들이 일터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제 승무원들은 화장을 하지 않고도 고객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메이크업을 원한다면 회사 가이드라인에 규정된 립스틱 및 파운데이션 색상을 따라야 한다.
버진항공의 이번 발표는 꽤나 갑작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괴짜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이 1984년에 창립한 버진항공은 비행기 앞 부분에 ‘처녀’ 그림을 그려 넣고 각각의 기체에 (대부분) 여성의 이름을 붙여 온 것으로 유명하다.
브랜슨은 창립 25주년이나 취항 10주년 같은 기념일이면 비행기 날개 위에서 여성 모델이나 승무원을 번쩍 들어올리는 ‘윙 워크’ 퍼포먼스를 펼쳐왔다. 날개 위에서 뿐만 아니라 그는 온갖 장소에서 여성을 껴안고 들어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버진항공은 창립 이후부터 새빨간 색상(‘버진 레드’)의 유니폼과 립스틱, 미니스커트 등으로 구성된 복장 규정을 적용해왔다.
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조안 스미스는 가디언에 쓴 칼럼에서 버진항공의 “21세기로의 갑작스러운 갈지자걸음”을 언급하며 ”그런 차별적인 복장규정이 법에 어긋나지도 않을 뿐더러 아직도 존재했다는 걸 지금까지 전혀 몰랐다”고 적었다.
3년 전, 영국항공 승무원들은 신입 여성 직원들이 무려 의학적 또는 종교적 이유에 따라 예외를 적용받지 않는 한은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규정에 맞서 싸워 이겼다. 이지젯이나 라이언에어 같은 저가항공사들이 여성 직원들의 바지 착용에 있어 더 자유로운 규정을 적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라이언에어가 비키니를 입은 여성 승무원들이 등장하는 달력을 발행하는 일을 중단한 건 고작 2015년이다.
이 모든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특히나 세계 최첨단 엔지니어링 기술에 의존하는 산업에서 말이다. 기내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틀에 박힌 여성스러운 유니폼을 입어야만 하는 게 여성 승무원들을 하녀에 지나지 않는 사람으로 대할 것을 권장하는 메시지를 부지불식간에 승객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불만을 제기한다. (가디언 칼럼 3월5일)
한국에서도 여성 승무원들에게 적용되는 엄격한 복장 규정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바지 유니폼을 마련해두고는 있지만 기본 지급 대상이 아니거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저가항공사들은 덜 엄격한 복장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제주항공은 안경 착용 허용, 두발 자유화, 하이힐 의무 착용 폐지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티웨이항공 역시 두발 규정을 없애는 한편 바지 등 다양한 유니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