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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선 소개팅에 나가도 "직영이세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일터 밖의 차별은 현장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다.

  • 양승훈
  • 입력 2019.03.05 15:58
  • 수정 2019.03.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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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huffpost

성인 남성이 거제도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다름 아닌 ”대우 다니세요? 삼성 다니세요?”라는 질문이다. 대답을 하면 상대는 뜸을 들이다가 다시 묻는다. ”직영이세요?” 폭력적인 언사일 수 있지만, 거제도 사람들은 습관처럼 던지는 질문이다.

1987년 이후 노동조합은 생산직의 ‘직영화’를 추진했다. 외부에서 조달 하는 자재 제작 등을 제외하면, 야드에서 진행하는 모든 공정 은 정규직 직원들이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중노동시장이 다시금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대 후반 무렵이다. 1990년 전체 사내하청 인원은 73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인원의 20% 수준이다. 그러나 사내하청은 급격히 증가했다. LNG선 호황기에 대량 수주로 인한 물량 처리를 위해 택한 것이 바로 사내하청화였다. (정규직으로 인한) ‘고정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

2014~2015년, 가장 많은 선박과 해양플랜트 건조를 진행할 무렵에는 3만~4만 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각 조선소에 서 일했다. 80% 가까운 생산 공정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맡았다. 해양플랜트 분야는 생산관리자와 몇몇 감독자(반장)를 제외하면 아예 사내하청업체가 생산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박은 직영이 60%를, 해양플랜트는 외주가 90%를 담당했다.

문제는 노동의 유연성이 그들을 불안정노동에 노출시킨다는 점이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은 매년 하청업체 대표의 추천을 통해 신입사원을 충원하지만 그 규모는 각각 100명이 채 안 되며, 30대 중반 이상이 되면 아예 그 대상에서조차 배제되기도 한다. 사내하청 업체에서 단기간에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면 대표의 눈에 들어 사내하청 노동자 신분에 갇히게 되는 일이 일쑤다.

2000년대에 들어 여러 조선소들이 연이어 위기를 맞았다. 2007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가 축소되고, 2013~2014년에는 STX 역시 위기에 빠졌으며, 통영과 고성 등의 중소형 조선소도 도산 위기를 겪게 되었다. 실직한 노동자들은 그때그때 ‘품’을 파는 물량팀이나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로 세워진 작은 사내하청업체에서 불안한 고용 상태와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 야 했다. 2016~2017년에 걸쳐 단행된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직영 생산직 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사내하청업체들은 줄도산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동남권에서 3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실직으로 이어졌다. 그 피해는 오롯이 하청 노동자들이 떠안게 되었다.

조선소의 카스트

삼성과 대우 두 조선소는 하청 직원들과 직영 직원들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활동들을 조직해왔다. 직원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행사에 하청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정기 상여금이나 여름과 겨울 두 번에 걸쳐 나오는 성과급도 직영 직원에 준하는 수준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노동조합은 단체협상 문구에 ‘사내 하청노동자 처우 개선‘을 빼놓지 않고 걸어둔다. 임단협이 실제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직영 정규직의 처우에 우선순위가 밀릴 따름이다. 회사는 ‘고정비 상승’을 명목으로 정규직을 뽑으려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힘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들어 있다. 경기가 좋을 때조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불안에 내몰린다.

‘카스트’는 작업장 내에서 일상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하청 노동자들은 공구를 받기 위해 창고에 갈 때 직영을 우선으로 챙겨준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직영 담당자들은 하청 직원들이 공구를 헤프게 쓴다고 응수한다. 하청 노동자 들은 작업중에 안전관리자들이 자신들에게만 험하게 지적 한단다. 안전관리자들은 하청 노동자들이 안전 규정을 잘 지키지 않아 애를 먹는단다. 하청 노동자들은 다시 규정이 너무 빡빡하다고 반박한다.

직영 현장 감독자들(반장, 직장)은 하청 이 일하는 곳은 기초 질서가 엉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주인의식‘을 걸고 넘어진다. 그러나 ‘주인‘이 아닌데 ‘주인의식’을 갖기란 쉽지 않다. 결국 고압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직영 현장 감독자와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하청 노동자들의 실랑이는 계속된다.

더불어 주말이나 휴무일, 명절에 쉬는 ‘직영‘들과 달리 하청 노동자들은 여지없이 출근해야 한다. 휴일수당, 시간외 수당 등을 챙기기 위한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힘들고 긴급한 일을 이들이 도맡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돌관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많은 것이다. 여기서 ‘돌관‘이란 공정이 지연되었 을 때 밀린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돌파해 관철’하는 것을 일 컫는 준말이다.

하청 노동자들은 일이 몰릴 때마다 손쉽게 동원된다. 야근, 휴일 근무, 명절 근무 역시 언제나 하청 노동자들의 몫이다. 원청회사에서 제공한 수십 대의 귀향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하청 노동자들은 자기들끼리 조를 정해 쉬는 날을 쪼개어 공정을 처리한다. 이런 날 조선소 근처의 식당가는 문을 닫기 일쑤여서, 이들은 원청에서 나눠준 빵이나 우유 등의 간식으로 끼니를 때우곤 한다. 공구 창고에서 꼭 필요한 공구를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다 반사이다. 차별과 설움은 일하는 와중에 하청 노동자들의 뼛 속 깊이 각인된다.

일터 밖의 차별은 현장보다 훨씬 더 적나라하다. 무엇 보다 이들을 가장 쓰라리게 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직영이세요?”라는 질문이다. 원청 정규직인지 아닌지를 확인받는 일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한다. 특히 소개팅이나 미팅 자리에서 위의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물론 직영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밝히면 상대에게 진즉에 거절당한다. 만나는 자리에서 직영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분위기는 곧바로 냉랭해진다. 어릴 적부터 성장 과정을 공유해온 연애가 아니고서야 장기적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상대에게 여성들은 쉽사리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2010년대 중반부터 농촌에 널리 퍼진 국제결혼광고 열풍은 거제에도 예외 없이 불어 닥쳤다.

해양플랜트 등으로 조선소의 물량이 증가하면서 외주 비율이 절정에 달한 2014~2015년, 물량팀이라는 이름 의 ‘뜨내기‘가 거제에 유입됐다. 이들 중 다수는 타지에 가족 을 둔 채 거제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업 실패 혹은 금전적 이유로 곤란에 빠진 사람들은 조선소 ‘대기업’ 현장에서 일하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인력시장 광고에 이끌렸다. 이들은 낮에는 위험천만한 현장에서 푸대접을 받고, 퇴근해서는 편의점 도시락을 사다가 소주를 마시며 합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다음 기회는 잘 보이지 않는다.

* 필자의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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