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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챌런 : 남편을 해머로 내리쳐 살해한 영국 여성이 재심을 받게 된 사연

보이지 않는 가정폭력, '강압적 지배'에 대한 기념비적 판결이 나왔다.

  • 허완
  • 입력 2019.03.06 10:05
  • 수정 2019.03.06 17:52
샐리 챌런(오른쪽)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8년째 복역중이다.
샐리 챌런(오른쪽)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8년째 복역중이다. ⓒHuffPost UK

2010년 8월, 비가 내리던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샐리 챌런(Sally Challen·당시 56세)은 남편이 아침식사로 베이컨과 달걀을 원했으므로 집 근처 상점으로 향했다.

장을 본 뒤 영국 런던 외곽의 작은 마을 클레이게이트에 위치한 자택에 돌아왔을 때, 샐리는 무언가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마치 잠시 자신을 집 밖으로 내보내려고 남편 리처드(Richard·당시 61세)가 일부러 심부름을 시킨 것처럼.

샐리는 남편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직감은 옳았다. 조금 전에 수전 윌스라는 사람과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리처드가 데이팅사이트 ‘디너 데이트’를 통해 만난 적이 있는 여성이다. 샐리는 전날 밤 구글에서 수전, 디너 데이트를 검색한 터였다.

샐리는 남편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리처드는 고압적으로 답했다. ”샐리, 나한테 질문하지 말란 말이야.”

샐리는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베이컨과 달걀을 차려줬다. 남편은 식사를 시작했다. 그 때, 샐리는 망치를 집어들어 남편의 머리를 20차례 넘게 내리쳤다. 샐리는 리처드가 혹시라도 숨을 쉴까봐 그의 입을 행주로 틀어막았다.

낡은 커튼으로 남편의 몸을 싼 뒤, 샐리는 메모 한 장을 적어 그의 몸에 올려두었다. ”사랑해, 샐리가(I love you, Sally).” 샐리는 15세 때 처음 만난 리처드와 3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해왔다. 

샐리는 설거지를 하고는 차를 몰아 아들과 함께 살고 있던 근처 집으로 향했다. 1년 전쯤 따로 마련한 집이었다. 다음날 아침, 샐리는 둘째아들 데이비드(당시 23세)를 차에 태워 출근을 시켜줬다.

아들이 막 차에서 내릴 때, 샐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그리고는 영국해협 인근 비치 헤드(Beachy Head) 절벽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서 그는 사촌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을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곧바로 경찰과 사제들이 현장으로 향했다. 3시간 넘는 전화통화가 이어졌고, 긴 설득 끝에 마침내 샐리는 안전한 곳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신고가 접수된 비슷한 시각, 남편의 시신이 자택에서 발견됐다. 사인은 ”머리에 가해진 둔기로 인한 심각한 충격”으로 파악됐다. 샐리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샐리 챌런은 15세 때 처음 만난 남편 리처드와 3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해왔다.
샐리 챌런은 15세 때 처음 만난 남편 리처드와 3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해왔다. ⓒDavid Challen

 

재심

10개월 뒤인 2011년 6월, 재판이 열렸다. 검찰은 ‘소유욕이 강한(possessive)‘, 또는 무언가에 ‘홀린(possessed)’ 인물로 샐리를 묘사했다. 사건의 단초가 된 인물인 윌스는 자신과 리처드가 ”정신적인”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샐리가 ”가로챈” 통화 내용을 설명하는 증거도 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두 사람은 원래 사건 다음날 함께 배를 타러 갈 계획이었다. 리처드는 전화를 걸어 날씨가 좋지 않으니 약속을 취소하자고 했다. 윌스는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어 대신 다음날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법정 증언에 따르면, 샐리는 또한 강박적(obsessive)이었다. 그는 남편 리처드의 이메일을 들여다봤고, 그의 문자 메시지를 훔쳐봤으며, 남편의 비아그라 갯수를 확인했다.

살해 이유를 묻자, 샐리는 이렇게 답했다. ”잘 모르겠다. 그저 그가 나랑 같이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샐리의 변호인들은 ‘도발 방어(provocation defence)’를 주장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샐리의 우울증 진단서가 법원에 제출됐다. 검찰은 이같은 진단을 반박했다. 리처드의 행위는 재판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당시 재판에 참석했던 이웃 주민 잭 코디는 국선 변호사에게 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거기까지 가지는 맙시다’였다.” 코디의 말이다.

″샐리의 오빠들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변호팀은 살인 피해자를 공격하면 샐리에게 안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리처드가 (샐리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판사는 전혀 몰랐다고 본다.” 

7일 동안 이어진 공판 끝에 샐리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소 22년형의 무기징역형이 선고됐다. 판사는 리처드가 다른 여성과 맺은 ”우애 관계”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샐리가 잔혹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했던 유일한 남성을 살해했다.” 판사가 밝혔다. 이후 항소심에서 샐리의 형량은 4년 줄어들었다.

그리고 1심 선고 8년 만에, 샐리는 살인죄를 벗을 기회를 갖게 됐다. 지난 목요일(2월27일), 항소법원은 이틀 간의 심리 끝에 샐리에게 내려졌던 살인 유죄 선고를 뒤집는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렸다고 BBC 등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2018년 3월 재심 청구 신청이 받아들여진 지 1년여 만의 일이다. 

인디펜던트는 ”챌런의 사건이 가정폭력의 복잡성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진다면 혁명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멍들고 병원 신세를 진 여성들만 도움을 줘야 할 유일한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보는 고정관념이 ‘어두운 골목의 강간범’이라는 비유처럼 낡은 것이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진보일 것이다.”

영국 런던 근교 작은 마을 클레이게이트(Claygate)에 있는 자택 마당에서.
영국 런던 근교 작은 마을 클레이게이트(Claygate)에 있는 자택 마당에서. ⓒDavid Challen

 

강압적 지배

법원은 샐리가 남편으로부터 ‘강압적 지배(coercive control)‘를 받아왔다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한국에서 ‘정서적 학대’로도 번역되는 강압적 지배는 가족 관계(주로 부부관계) 등 친밀한 관계 내에서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정서적, 감정적 학대 행위를 뜻한다.

여성 및 아동에 대한 가정폭력을 전문으로 다루는 영국 단체 ‘우먼스에이드(Women’s aid)’에 따르면, 강압적 지배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가정폭력이 항상 물리적이지는 않습니다. 강압적 지배는 피해자를 해치고, 처벌하고, 겁에 질리도록 하기 위한 괴롭힘, 위협, 창피 주기, 협박 등의 학대 행위 또는 행동 양식을 가리킵니다.

강압적 지배는 가정폭력의 한 형태이지만 물리적 폭력과는 다르다. 폭행을 당한 흔적도 없고, 따라서 병원 진단서 같은 것도 없다. 흉기도 등장하지 않고, 임박한 생명의 위협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당방위’ 여부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강압적 지배 관계에서, 가해자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권력 행사를 통해 피해자의 행동과 심리를 통제한다. 피해자는 지배를 받을수록 오히려 가해자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상보다 깊은 상처가 피해자에게 남는다. 

영국에서 강압적 지배가 처음으로 범죄 행위로 규정된 건 2015년 제정된 강력범죄법(Serious Crime Act)을 통해서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강압적 지배는 아직 처벌 가능한 범죄 행위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샐리의 변호를 맡은 해리엇 위스트리치는 샐리가 판결을 받을 당시에는 강압적 지배라는 개념이 형법상 범죄로 규정되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어필했다. 가정폭력 사건을 전문으로 맡아 온 위스트리치 변호사는 여성주의 법개혁 단체 ‘여성을 위한 정의(Justice for Women)’ 공동설립자이기도 하다. 

챌런 부부의 두 아들이자 유력한 증인인 데이비드(31세)와 제임스(35세)도 모친의 재심을 촉구하는 운동을 벌여왔다. 부부의 마을 주민들, 친구들, 심지어는 살해된 리처드의 가족과 그의 옛 친구들까지 재심을 지지하고 나섰다.

가정폭력 전문가, 정신과 의사 등이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항소법원은 살해 당시 샐리의 심리 상태, 샐리와 리처드 사이에 강압적 지배 관계가 있었는지 여부를 검토했고, 살인죄 적용 여부를 다시 판단해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판결이 나오자 방청석에서는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고 BBC는 전했다. 교도소에 수감중인 샐리는 영상으로 연결되어 판결을 지켜봤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 샐리는 살인 혐의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심신미약 상태에 따른 고살(故殺)은 고의적 살인에 비해 낮은 형량을 적용 받는다. 재심 결과에 따라서는 살인죄를 벗고 석방될 가능성도 열리게 된 것이다.

샐리와 리처드의 결혼식 사진. 1979년.
샐리와 리처드의 결혼식 사진. 1979년. ⓒDavid Challen

 

샐리가 리처드를 만났을 때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샐리는 고지식한 가정에서 자랐다. 영국 육군 공병대 준장을 지내며 주로 인도에 머물렀던 부친은 그가 6세일 때 세상을 떠났다. 샐리가 태어났을 때 이미 10대이던 네 오빠는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샐리는 ”뜻밖에” 태어난 막내딸이었다.

샐리는 집에서 모친과 함께 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샐리는 ‘O-레벨(16세 이하)’까지만 학교에 다녔다. 그의 모친은 여자가 그 이상의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여겼다. 반면 샐리의 오빠들은 모두 고등교육을 받았고, 훗날 회계감사관, 회사 임원 등으로 경력을 쌓았다.

리처드 챌런의 부친은 자동차 전문 기자였다. 리처드는 자동차광이었다. 그의 학교 친구 델런 블랙모어는 2대2 소개팅에 나갔다가 샐리를 만났다. 블랙모어는 다른 여성과 만났고, 리처드에게 샐리를 소개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샐리는 15세, 리처드는 22세였다.

샐리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리처드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청소를 했고, 요리를 했다. 그러나 리처드 곁에는 항상 다른 여성들이 있었다. 17세가 되던 해에 샐리는 오빠들의 손에 이끌려 병원을 찾아 후기 낙태(late-term) 수술을 받았다. 

이후 샐리의 오빠들은 리처드를 찾아갔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다른 남자의 아이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샐리가 훗날 위스트리치 변호사에게 털어놓은, 처음으로 겪은 폭력에 대한 증언도 있었다. 샐리는 다른 여성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리처드는 계단 밑까지 샐리를 끌고 내려와서는 문 밖으로 쫓아냈다.  

샐리의 증언에 따르면, 그 사건 이후 평생 동안 샐리는 비슷한 일을 겪게 될까봐 리처드에게 맞서기를 극도로 꺼렸다.

그럼에도, 샐리는 리처드와 결혼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의 결혼은 성공적이었다. 리처드는 일주일에 6일씩 일했고, 마을에 자동차 영업소를 소유하게 됐다.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고 샐리는 더할 나위 없이 헌신적인 엄마였다.

리처드 역시 평범하고 다정한 아빠처럼 보였다. 그는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랜드로, 스페인 남부 휴양지 마르베야로 휴가를 떠나곤 했다. 두 아들을 작은 경주용 자동차(go-kart) 경주장에 데려가기도 했고, 오토바이에 태워주기도 했다.

(왼쪽부터) 챌런 부부의 첫째아들 제임스, 둘째 데이비드, 그리고 리처드.
(왼쪽부터) 챌런 부부의 첫째아들 제임스, 둘째 데이비드, 그리고 리처드. ⓒDavid Challen

 

보이지 않는 폭력

실상은 달랐다. 챌런 부부가 살던 작은 마을의 주민들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리처드가 아내를 면박주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곤 했다. 두 아들도 크면서 서서히 아빠의 문제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둘째아들 데이비드는 아빠가 엄마를 끊임없이 모욕했고, 소소한 규칙을 따를 것을 엄마에게 강요했다고 말한다. 아빠는 자주 엄마의 ”살찐 허벅지(thunder thighs)”를 조롱했고, 누군가 엄마의 외모를 칭찬하기라도 하면 ”(샐리의) 발가벗은 모습을 못봐서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첫째아들 제임스는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모두가 잔뜩 긴장했다. 보통 저녁식사 자리는 불편했다. 엄마가 요리한 게 아빠가 좋아하는 것인지를 두고 이어진 언쟁 때문이었다.”

리처드는 샐리가 자신의 허락 없이는 혼자서 친구들을 절대로 만나지 못하게 했고, 샐리가 잠시 일자리를 구했을 때는 그에게 생활비 부담을 모두 떠넘겼다. 리처드는 자기가 번 돈으로 페라리를, 까르띠에 시계를 샀다. 자동차 경주대회를 보러 다녔다.

샐리가 혼자 만날 수 있도록 ‘허용’된 유일한 친구는 저 멀리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새라 굿윈이었다. 이유는? 리처드가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만난 그의 남편과 먼저 친구가 된 사이이기 때문이었다.

위스트리치 변호사는 이렇게나 ”놀라울 만큼 고지식한” 결혼 관계가 아직도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나는 수많은 가정폭력 사례들을 봤지만, 이런 식의 부부 관계가 아직도 존재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이었다. 모든 건 ”리처드에 대한 봉사”였다. 

샐리에 따르면, 부부 간 성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섹스는 리처드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리처드는 샐리의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타박했으므로, 샐리는 섹스를 하기 전에 항상 몸을 씻고 와야 했다. 샐리는 이 문제 때문에 진지하게 의사에게 상담을 받은 적도 있다. 물론, 의사는 ‘그렇지 않다’고 샐리를 안심시켰다.

리처드는 대놓고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여러 개의 휴대폰을 들고 다녔고, 이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몰랐다. 뻔한 거짓말을 했고, 자신은 아무런 해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 행동했다. 샐리에게 미쳤냐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셨냐고 말했다. 

샐리는 리처드에게 맞서는 대신, 어느 순간부터 자문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정신이 나간 걸까? 내가 남편을 잘못 의심하는 걸까?’ 샐리는 동네 보건소에 찾아가 불편증, 식욕부진, ”가정 내 스트레스”를 호소하곤 했다. 

여성 폭력 전문 컨설턴트 다비나 제임스 하만은 위스트리치 변호사가 항소법원에 제출한 탄원서를 작성했다. 그는 리처드가 샐리를 통제하기 위해 전형적인 통제 전략을 사용했다고 본다. 국내에서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혐의 재판을 통해 주목 받은 개념인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다. 

그에 따르면, 리처드는 샐리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사소한 규칙들을 강제했다. 샐리를 고립시켰고, 끊임없이 비판했다. 감정적으로 학대했다. ″리처드는 샐리가 스스로를 완전히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도록 하면서도 점점 더 강하게 자신에게 종속되도록 만들었다.” 하만의 설명이다.

리처드의 가족들도 이를 증언한다. 호주에 살고 있는 형수 트리쉬는 가족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챌런 부부가 힘께 호주에 왔던 때를 회상했다.

″샐리가 부부 관계에 대해 말한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샐리는 ‘내가 리처드를 떠나기라도 하면 그는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멀리 떨어져있긴 하지만 영국에 있는 가족들을 도와주지 못했던 게 후회스럽다.”

굿윈은 ”새라가 이야기하는 건 한 가지 밖에 없었는데, 그건 리처드였다”고 말한다. ”끝이 없었다. 내가 샐리를 알게 된 시간 동안, 샐리는 리처드에게 사로잡혀서 극도로 사랑을 갈구했다. 샐리는 그를 화나게 하거나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했다. 그저 그의 사랑을 받고 싶어했다.”

샐리 챌런의 두 아들은 아빠를 살해한 엄마의 재심을 원한다.
샐리 챌런의 두 아들은 아빠를 살해한 엄마의 재심을 원한다. ⓒDavid Challen

 

벗어날 수 없었다 

2009년 11월, 샐리는 마침내 이혼을 ‘결행’했다. 결혼 30년 만의 일이었다. 당시 샐리는 굿윈에게 이혼을 결심한 이유를 털어놨다. 남편이 드나들던, ‘마사지 업소’로 위장된  성매매업소를 경찰이 수색하는 모습을 TV에서 본 게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샐리는 남편의 뒤를 밟아 그가 이곳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샐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집을 새로 마련해 그곳에서 둘째아들 데이비드(당시 22세)와 함께 살았다. 첫째아들 제임스는 독립한 상태였다. 

리처드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샐리는 행복해질 수 없었다.

″리처드는 샐리의 인생이었다. 그가 없어지자, 샐리에게는 자기 삶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굿윈의 말이다. ”나는 잘 하고 있는 거라고, 시간을 가져봐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결국 샐리는 리처드에게 재결합을 요청했다. 리처드는 이메일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다음의 조건들 하에서만 당신의 복귀를 검토할 것이다. 이혼 절차를 계속진행하고 종결할 경우, 당신은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 20만파운드(약 3억원) 밖에 받지 못할 것이다. (...) 담배 끊을 것. 내가 말하는 도중에 계속 끼어드는 것을 중단할 것.” 

곧 두 사람은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은퇴한 상태였던 리처드는 호주에 가서 새로운 시작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살던 집을 정리한 돈으로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다음에 살 곳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샐리는 리처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미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가 요구한 ‘재결합 조건’이 결국에는 어차피 진행될 이혼으로 부부의 재산 대부분을 독차지하려는 꼼수는 아닌지 의심했다.

샐리는 리처드의 전화기를 해킹해 문자메시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들 데이비드는 ”아빠가 살해되기 2주 전, 엄마의 행동이 이상했다”고 말한다. ”주의가 산만했고, 집중을 하지 못했고, 잘 듣지도 않았다.” 

BBC에 따르면, 재판이 끝난 뒤 데이비드는 법원 앞에서 소감을 밝혔다. ”이건 놀라운 순간이다. 법원은 우리가 가족으로서 항상 말해왔던 것처럼,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우리가 볼 때 엄마가 겪은 학대는 (재판에서)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었고, (범행 당시) 엄마의 정신 상태 역시 고려되지 않았다.”

법원은 살해 당시 샐리 챌런이 '강압적 지배'에 따른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증거를 받아들여 그에게 적용됐던 살인죄를 다시 판단해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진은 둘째아들 데이비드 챌런(왼쪽에서 두 번째)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영국 런던, 2019년 2월28일.
법원은 살해 당시 샐리 챌런이 '강압적 지배'에 따른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증거를 받아들여 그에게 적용됐던 살인죄를 다시 판단해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진은 둘째아들 데이비드 챌런(왼쪽에서 두 번째)이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영국 런던, 2019년 2월28일. ⓒDan Kitwood via Getty Images

 

기념비적인 판결

직접 법원 증언대에 서기도 했던 데이비드는 판결이 나오기 전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아직도 아빠를 사랑한다.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바로 강압적 지배다. (...) 이건 가정폭력에 있어 기념비적인, 분수령이 될 순간이다.”

그는 ”경찰의 힘 만으로는 강압적 지배를 포착할 수 없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이걸 (범죄로)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영국이 강압적 지배를 형법상의 범죄로 규정한 이래 처음으로 이를 변호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지 법원이 검토한 사례이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재심이 개시되면 샐리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리 검토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위스트리치 변호사는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는 강압적 지배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고 훨씬 더 깊은 이해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여성을 위한 정의’의 변호사 클레어 마워는 ”징역형을 받은 여성들의 숫자는 이례적으로 높으며, 대부분의 경우 여성들이 저지른 범죄가 트라우마의 결과라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여기에는 어떤 정의도 없다”고 말했다.

″법원은 여성들에게 살인에 대한 부분적인 변호(의 여지)를 제공하거나 형량을 선고할 때 여성들이 겪은 학대를 반영해야 한다.” 마워 변호사의 말이다.

 

한편 한국에서 강압적 지배는 아직 범죄행위로 인지조차 되지 않는다. 1997년에 제정된 가정폭력처벌특별법은 신체적·물리적 폭력에 한해 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지속적인 폭력과 신체적 학대를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아내가 한국 법원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25년 전 변호사 시절 관련 변론을 한 사례가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등장한 개념인 ‘매 맞는 아내 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도 한국 법원에서는 정당방위의 사유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참작동기 살인’으로 분류돼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이 선고될 뿐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6년 낸 ‘부부간 심리적 폭력의 실태 및 범죄화에 대한 연구’에서 현행법의 문제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현재의 법이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꾼다는 것을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 보호 보다 앞세우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행법이 가정폭력을 ”피해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로서 인식하기보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극복되어야 할 고충과 같이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민사회가 법 개정을 요구해 온 이유다. 

입법조사처는 당장 영국처럼 강압적 지배를 범죄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가정폭력 개념의 재정의”와 ”법적 인식의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가정 내의 심리적 폭력 행위를 범죄로 처벌하는 것은 서구에서도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첨단의 법들이다. 우리나라의 가정폭력 관련 법 담론이나 법 제도를 고려할 때 이런 법들을 모델로 하여 부부간 심리적 폭력의 범죄화를 도입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 그 전에, 가정폭력 개념의 재정의, 법적 인식의 제고, 스토킹처벌법의 제정, 경찰의 인식과 전문성의 제고 등 개선해야 할 많은 부분들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 ‘부부간 심리적 폭력의 실태 및 범죄화에 대한 연구’ 2016년 12월)

샐리 챌런 사건은 오랫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가정폭력 형태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불러 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고통을 겪고 있을 피해자들에게 비로소 새로운 언어가 주어졌으니 말이다.

인디펜던트의 해리엇 홀은 이렇게 적었다.

재심 결과가 무엇이든, 이 역사적인 판결은 오랫동안 간과되었던 종류의 학대인 체계적인 통제에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은 공포에 신음하고 있는, 챌런과 같은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그들이 탈출을 할 수도 있고, 살아남을 수도 있고, 살해를 당할 수도 있고, 심지어 살해를 할 수도 있다. 그들도 보호하기로 결정할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가? (인디펜던트 3월2일)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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