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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홀로 앉아 있을 노년의 나, 상상해보니

상상만으로는 가볼 수 없는 영역이다.

  • 홀로
  • 입력 2019.03.04 14:31
ⓒtapui via Getty Images
ⓒhuffpost

아빠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오래다. 재작년 설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빠는 대학병원에 장기 입원했고, 당뇨 합병증으로 수차례 뇌, 장, 신장 관련 수술을 해야 했다. 그나마 지금은 좀 안정이 되어 몸의 반절이 마비된 상태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안정기에 접어들어 이제 간단한 의사표현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두번 신장 투석을 위해 응급차를 타고 대학병원을 오가고 있으며, 다음 주에는 혈관 수술을 앞두고 있다.

사실상 가정 살림에 평생 보탬 준 적 없었던 아빠의 부재인지라 우리 자매들은 ‘아빠가 없다고 뭐 집안이 망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아빠가 생존한 상태로 병원비가 매달 300만원씩 나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평생 가장이었던 엄마는 사보험 하나 없는 남편의 병원비를 갚느라 빚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자기 아빠가 병들어 누워 있는데 뭐 저렇게 건조해? 이런 가혹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당뇨 환자이자 백수 상태로 30년간 입원과 퇴원만 반복하는 환자가 가족 구성원인 사람은 이렇게 병증을 돈과 연결시키게 된다.

직장도 보험도 없이 평생을 풍운아로 살았던 남자가 말년에 오래 병원 신세를 질 경우 병원비가 포탄처럼 쏟아지고, 그로 인해 온 가족이 얼마나 피폐한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쓸 기회가 있길 바라며, 이번엔 요양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며 비혼 여성인 내가 느낀 생각들을 쓰려 한다.

청결하고 조용한 요양병원?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평소 감감했던 친척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보게 된다. 병문안 온 친척들은 하나같이 “니가 아직 결혼을 안 했지? 몇살이더라?”부터 물었다. 몇살인지도 모르는 그 집안의 딸을 만났을 때 관계가 3촌이든 8촌이든 어른들은 “결혼 언제 하려고 여태 그러고 있어? 아빠 편찮으신데 기쁜 소식 들려줘야지”라는 말을 주창한다. 여기에 더 무례한 사람은 “살 먼저 빼야겠다”고 외모 품평까지 곁들인다. 병문안 오는 사람마다 나이와 결혼 여부를 물어대는 통에 다들 여기 오기 전에 단체 카톡방에서 말이라도 맞추고 오는 줄 알았다.

어차피 잠깐 보고 말 어른들이기에 나 역시 사무용 미소로 응대했는데, 나중에는 인내심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때 마침 나에게 ‘결혼 안 할 거니?’라고 같은 질문을 또 물어본 사람이 외숙모였다. 외삼촌이 다정한 남편이 아니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던 나는 외숙모에게 “결혼하면 행복한가요?”라고 되묻고 말았다. 다행히 외숙모는 나보다 훨씬 인내심이 강하고 상냥한 분이셨고, 버릇없는 내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야, 외숙모가 예전에는 여자가 능력만 있으면 혼자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내가 요양병원에서 일해 보니까 가족 없이 늙으면 참 쓸쓸하더라. 너 생각해봐라. 병원에 있는데 찾아올 가족이 없어봐. 그거 엄청 외로워.” 그 전에 만났던 어른들의 잔소리에 미동 없던 나의 마음은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요양병원에 홀로 앉아 외로운 노인’이라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자 할 말이 없어졌다. 그것은 상상만 해도 매우 슬픈 풍경이었다.

고향이 지방인지라 아빠의 요양병원은 자주 찾지 못한다.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 요양병원을 방문하면서 내가 놀란 것은 그곳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청결하고 조용한 곳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아빠는 그동안 세군데의 요양병원을 옮겨 다녔다. 가는 곳마다 상황이 달랐지만 공통점은 6∼8명이 한 병실을 쓰고 요양보호사들이 환자 한명 한명을 세심히 챙겨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봤던 요양병원은 깔끔한 옷을 입은 환자들이 화기애애하게 친목을 다지거나, 어깨에 카디건을 걸치고 앉아 조용히 창밖 풍경을 내다보는 깨끗한 곳이었는데 실제 요양병원은 그렇지 않았다. 창문이 없는 병실도 있었고, 창문이 있다면 그 옆은 추워서 환자가 기피하는 침대 자리였다. 한 채널로 고정된 TV(이번 설에는 주로 씨름만 봤다)는 맥락 없이 시끄러웠고, 다들 멍하니 그것을 응시했지만 시청하는 표정들은 더할 나위 없이 무료했다. 대학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겨온 뒤 양치질을 거의 못한 아빠의 치아는 까맣게 죽었고, 옆 침대 할아버지는 세상에 궁금한 게 어찌나 많은지 1분도 쉬지 않고 말을 걸거나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다. 악취가 심한 화장실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고, 여기저기에서 앓는 소리가 났다. 더 심한 것은 화장실 문이 열린 채로 볼일을 보거나 더 병증이 심한 환자는 누워서 볼일을 보면서 뒤처리 광경을 공개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다들 몸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갈 곳이 없는 환자이고, 거기서 수치심까지 챙겨줄 여력은 없으니까. 몸이 아프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게을러진다는 것, 스스로를 돌볼 여력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누워만 있는 아빠는 안 그래도 무기력한 사람이 우울증까지 걸려서 남은 게 식욕과 욕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나의 아빠는 그를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아내가 병원비를 감당하고 있으며, 매주 병문안을 가는 자식이 있으니 나은 처지였다. 그다지 열심히 살지도 않았으며, 좋은 부친도 아니었고 부양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말년에 보호받는 아빠를 보며 나는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라는 게 어쩌면 사회에 남은 마지막 안전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할 수는 없을 테니, 계속 이대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이대로 계속 혼자 살다가 늙어서 요양병원 들어가면 되지 뭐.” 예전에는 아주 뻔뻔하게 하던 소리를 이제는 쉽게 하지 못하게 됐다. 내가 늙었을 때 나는 요양병원에 들어갈 돈이 없을지도 모른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요양병원은 저렴하지 않다. 그곳에서는 수술이나 시술은 할 수 없어 응급상황에서 큰 병원으로 이송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감당할 가족이 없으면 선택의 여지는 죽음뿐이다. “그러면 그냥 죽지, 뭐”라고 나는 이제 뻔뻔하게 말할 수 없다. 아프고, 고독하고, 내 몸을 내가 감당할 수 없게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일은 상상만으로는 가볼 수 없는 영역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우리는 늙어서 고독하게 죽어가는 요양병원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자, 여기서 아까 얘기했던 쉴 새 없이 말을 한다는 옆 침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그 할아버지가 옆자리 환자의 딸에게 참견을 안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결혼 안 했지? 얼른 자식을 낳아야지. 아픈 사람한테는 손주만큼 좋은 게 없어.” 이미 나의 결혼 여부라는 데이터 수집이 끝나 있던 할아버지는 대뜸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병문안 뒤 병원을 나서며 동생이 얘기했다. “언니, 내가 웃긴 얘기 해줄까? 언니한테 애 낳으라고 한 할아버지, 총각이다? 결혼 한번도 안 했고 자식도 없대. 웃기지.” 그러한 것이다. 본인도 비혼이면서 남한테 자식부터 낳으라고 조언하는 할아버지의 참견이란 그냥 ‘웃긴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니 비혼으로 늙어 우리 모두 요양병원에서 만나게 된다면, 적어도 남에게 ‘자식 낳으라’는 참견은 접어두자. 웃긴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글 · 늘그니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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