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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해방전선은 진정한 동물의 대변자였을까

사람은 동물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 없다.

ⓒhuffpost

크라운힐 농장은 계곡 깊숙이 자리잡아 눈에 띄지 않았다. 1998년 8월 영국 남서부 뉴포레스트. 어둠이 깔리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행동을 개시했다. 경비견을 잡아 가두고 철조망을 끊고 농장에 침입했다. 밍크를 꾀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불과 2시간 만에 밍크는 밖에서 대기하던 수송팀에 인계됐고, 뉴포레스트의 넓은 숲과 늪지로 풀려났다. 케이지(우리)에서 ‘해방’돼 처음 자유를 맛본 밍크는 6천 마리나 됐다. 그해 겨울, 두꺼운 털을 명품 패션에 헌납하고 죽음을 맞았을 생명이다.

모든 이가 비난에 나서다

급진주의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전선(ALF)이 벌인 사건이었다. 당시 가장 ‘핫한’ 동물단체였다. 점조직처럼 비밀 운영하면서 농장 습격과 사보타주(태업), 방화 등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다른 동물단체를 합한 것 이상의 주목을 받았다.

동물해방전선은 동물의 목숨 값을 사람의 목숨 값과 똑같이 여겼다. 영국과 미국 시골에 산재한 공장식 농장의 닭과 돼지를 풀어주는 직접행동을 1년에도 수십 차례 했고, 가끔씩 대학 실험실의 원숭이, 수족관의 돌고래도 대상으로 하는 비밀작전을 수행했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이 단체를 테러단체로 올려놨고, 활동가들은 감옥을 드나들었다. 단체의 중심인물인 배리 혼은 방화 등의 혐의로 동물권 활동가로선 이례적인 18년형을 받고, 네 번째 옥중 단식을 하던 중 숨지기도 했다.

1982년에는 초콜릿바 ‘마스’에 쥐약을 넣었다며 대중을 혼란에 빠뜨렸고, 한참 뒤 그런 적이 없다고 밝혔다. 마스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충치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사건은 많다.

‘뉴포레스트 밍크 해방 작전’은 너무 매끄럽게 진행돼 자신들도 놀랄 지경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비난의 후폭풍이 몰아쳤다. 이런 식으로 나라 전체가 눈을 부라리고 달려든 적은 없었다.

동물권 운동에 동정적인 영국 언론조차 비난에 나선 데에는 밍크가 방사된 뉴포레스트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숲과 습지라는 점이 컸다. 밍크가 새로운 포식자로 등장해 생태계가 교란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됐다. 학자들과 동물단체도 이번 캠페인에는 등을 돌렸다. 스티븐 해리스 브리스틀대학 생물학과 교수는 사건 직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인터뷰에서 운 좋은 밍크는 물새와 토끼를 잡아먹고 연명하겠지만 대부분 굶어죽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밍크의 운명은 물론 지역 야생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라 비난했고, 현재도 모피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동물 존중’의 마크 글로버는 “모피 반대운동에도 재앙, 밍크에게도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동물해방전선이 연대운동의 분위기를 깨는 ‘풋내기 활동가’나 ‘관심종자’들이 모인 단체라는 시선은 동물단체들 사이에서 더욱 강해졌다. 사실 뉴포레스트 밍크 해방 작전이 진행된 1998년 8월, 이미 영국은 모피농장 금지를 앞두고 있었다. 노동당 정부는 모피농장에 압도적인 반대 여론이 있다면서, 이미 한 달 반 전에 관련 법 제정을 공언했다. 영국에는 모피농장이 11곳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2000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모피농장 금지법을 제정한다).

반면 동물해방전선은 자신들만이 진정한 동물의 편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캠페인 전략을 구사했다. 단체에서 유일하게 공개되는 인물인 대변인 로빈 웹은 사건 직후 “노동당 정부가 모피 금지법 제정 약속을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으므로 정당한 행위”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도 밍크들이 죽을 거라는 거 알고 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유를 맛볼 수 있다. 게다가 밍크는 영국에서 이미 외래종으로 정착했다. 다른 종을 싹쓸이하지 않는다. 일부는 살아남아서 자연적인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뉴포레스트 사건의 비밀

이 사건이 재조명된 것은 20년 가까이 지난 2018년 2월이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경찰 비밀요원 한 명이 동물권 단체 활동가로 위장해 뉴포레스트 작전에 참여했다고 폭로했다. 국가적인 난리법석을 떨면서 경찰이 미제로 남겨놓은 사건의 범인 중 하나가 경찰이었다니!

영국 경찰은 의외로 보도를 순순히 인정했다. 숨진 아이의 이름을 도용해 ‘크리스티 그린’으로 동물해방전선에서 위장 활동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린은 2000년 초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친구 장례식을 간다면서 활동가 네트워크에서 사라졌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위장 활동으로 심적·신체적 고통을 겪었고, 경찰을 그만둔 뒤 자신이 감시했던 동료와 스코틀랜드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전했다. 혁명과 거짓말 스토리의 결말이 사랑이라니! 영화 같은 일이었다.

동물해방전선은 20세기 후반 동물권 신장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활동이 역사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얼핏 보기엔 그렇다. 불법을 가리지 않고 터뜨리는 방식의 캠페인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사건 중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좇는 언론의 본성에 맞닿았다. 동물해방전선이 풍기는 혁명적 낭만주의도 젊은 활동가의 지속적인 투신을 이끄는 요인이었다. 반면 대다수 동물단체는 무대 뒤 정책과 제도의 영역에서 일했다. 지루하고 더디고 영웅이 되지 않는 방식이지만 이런 행동이 용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은 동물해방전선으로 대표되는 급진주의가 예전처럼 회자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바가 제도에 많이 수렴됐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동물에게도 내재적 권리가 있어 이를 침해할 수 없다는 ‘동물권’ 주장을, 삶의 질을 개선해 고통을 줄이자는 ‘동물복지’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였다. 이미 유럽연합은 산란계의 케이지 사육을 금지했고, 밍크 등 모피농장은 거의 사라졌으며, 유인원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나라도 늘어나고 있다.

동물해방전선은 동물의 진정한 대변자였을까? 이 질문은 6천 마리 밍크의 운명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6천 마리 중 4천 마리 이상이 엽총의 표적이 되거나 그물에 걸려 농장에 다시 갇혔다. 운 좋게 빠져나간 밍크는 처음 만난 야생의 삶터에서 당황해 굶어죽거나, 용맹스러운 밍크는 포식자로 정착해 다른 종의 죽음을 이끌었을 것이다. 어쨌든 수많은 생명이 잠시나마 ‘세상 뒤집어지는 경험’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그들에게 무한의 공포였는지, 환희에 찬 도전이었는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공포였을까 환희였을까

어둠을 깨고 잠입한 활동가들의 폭죽 같은 행동이 세상을 바꾸었음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산 동물을 역사의 제단에 바친 제사장이었을까?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동물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고 불가지론에 빠져서도 안 되고 쉽게 단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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