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2019년 02월 27일 15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27일 15시 37분 KST

왜 왼손잡이 유격수는 없을까

이종범은 왼손잡이용 글러브를 구하고 싶었다.

뉴스1
huffpost

“아~, 그때 왼손잡이 글러브만 구할 수 있었더라도!”

꽤 아쉬운 것 같다. 그의 집은 가난했다. 오른손잡이용 글러브도 겨우 구했는데 왼손잡이용 글러브는 더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야구를 시작했을 때, 그는 ‘왼손잡이’를 버렸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LG 코치 얘기다.

이종범 코치는 원래 왼손잡이다. 밥도 왼손으로 먹고, 당구도 왼손으로 친다. 야구만 오른손으로 한다. 순전히 ‘글러브’ 때문이다. 어린 시절 선택은 그를 최고 명품 유격수로 성장하게 했다. 하지만 타석에선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유가 있다.

야구에서 왼손잡이는 1루 외 내야 수비 때 불리하다. 오른손잡이는 타구를 잡고 곧바로 1루로 공을 던질 수 있지만 왼손잡이는 송구할 때 왼쪽으로 몸을 돌려야 해서 시간이 지체된다. 0.1초 차이로 아웃, 세이프가 갈리는 야구에서는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감독들은 2루수, 유격수, 3루수 자리에 왼손잡이를 거의 쓰지 않는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9년까지 메이저리그 20시즌 동안 1루수 외 왼손잡이 내야수가 출전한 경기는 단 1경기 뿐이었다. 이 또한 경기 후반 대타로 출전했다가 1이닝 동안만 3루 수비를 봤다.

프로야구 경기만 보더라도 1루수 외에는 내야 수비를 보는 왼손잡이를 보기 힘들다. 1루수에는 오른손, 왼손 구분이 굳이 필요 없지만 왼손잡이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땅볼 혹은 번트 타구를 잡고 2루로 송구할 때 오른손잡이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1,2루 사이로 흐르는 타구일 경우 글러브를 낀 오른손으로 공을 낚아채기가 편리하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미국프로야구 선수 파블로 산도발(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이종범 코치처럼 원래 왼손잡이였다. 하지만 야구 선수의 꿈을 키우면서 9살 때부터 오른손으로 던지는 것을 연습했다. 동경하던 ‘베네수엘라의 보석’ 오마르 비스켈과 같은 유격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 유격수가 아닌 3루수로 뛰고는 있으나 이 역시 왼손잡이였다면 꿈꿀 수 없는 수비 위치였다.

왼손잡이 포수도 드물지만 이유는 약간 다르다. 오른손잡이 타자의 위치상 포수가 3루 송구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미국의 유명한 야구 저술가 빌 제임스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포수의 주요 조건이 강한 어깨인데, 강한 어깨의 왼손잡이 선수를 투수가 아닌 포수로 쓰기에는 아깝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왼손 포수는 홈플레이트 태그 플레이 때 글러브를 오른쪽에 끼고 있어 몸을 왼쪽으로 틀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아마추어에서는 아주 드물게 왼손 포수를 볼 수도 있으나 0.1초 차이로 세이프, 아웃이 결정되는 프로에서는 왼손 포수가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비 포지션 제약이 있으나 왼손잡이 타자는 공격할 때 오른손잡이 타자보다 오른손잡이 타자보다 1.524m가량 이득을 본다. 타자 박스(오른손 타자는 투수의 시선에서 포수의 왼쪽에, 왼손 타자는 포수의 오른쪽에 위치한다)가 1루 베이스에 더 가까워 오른쪽 타자보다 3~4 발자국을 단축시킬 수 있다. 아마추어 때부터 수비는 오른손으로, 공격은 왼손으로 하는 우투좌타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이유다.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왼손타자가 많다.

이종범 코치가 현역 때 우투좌타로 활약했다면? 한국야구는 서건창(넥센 히어로즈) 이전에 한 시즌 200안타 시대를 맞았을 수 있다. 이 코치는 자신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들인 오른손잡이 이정후에게는 왼손 타석을 권했고 이정후는 데뷔 시즌이던 2017년 신인 최다 안타 기록을 깼다.

2018 케이비오(KBO)리그 선수 등록 기준으로 우투좌타 비율은 16.7%였다. 2017시즌에는 28.1%였다. 메이저리그 통산 3089안타를 친 스즈키 이치로 또한 우투좌타인데 그의 내야 안타 비율은 20%가 넘는다. 오른손잡이인 이치로 또한 어릴 적부터 일부러 왼손으로 타격 연습을 했다. 1루에서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파이어볼러’인 SK 외국인 투수 앙헬 산체스도 이종범과 비슷한 케이스다. 산체스 또한 왼손잡이인데 오른손 투수가 됐다. 13살 때까지 유격수와 투수 포지션을 오갔고 유격수 포지션 상 오른손을 더 사용하다 보니 오른손으로 던지는 게 더 익숙해졌다.

야구는 과학이다. 왼손잡이 포수, 유격수가 없는 이유만 봐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가.

* 필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

PRESENTED BY 호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