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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극기 부대는 김진태를 연호하고 518을 폄훼하는 걸까?

직접 합동연설회를 찾아가봤다.

  • 백승호
  • 입력 2019.02.27 14:20
  • 수정 2019.03.19 11:42

 

지난 21일, 리얼미터 여론조사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태극기 부대에 취해야 할 자유한국당의 입장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단절해야 한다’는 응답이 57.9%로, ‘포용해야 한다’는 응답(26.1%)의 두 배 이상으로 집계됐다.

그런데 정치성향별 여론을 살펴보면 큰 차이가 난다. 스윙보터로 볼 수 있는 중도층에서도 일반 여론과 비슷하게 단절 여론(65.8%)이 포용 여론(18.7%)보다 높았다. 심지어 보수층 여론도 포용 여론이 더 높긴 했지만(52.7%) 단절 여론(32.3%)과 심각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에 자유한국당 지지층은 단절 여론이 13.5%에 불과했던 데 비해 포용 여론이 64.8%를 보였다.

이 여론 지형은 자유한국당이 최근 보이는 ‘극우적 행보’를 설명할 수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박근혜 탄핵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중도층을 포섭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김진태 후보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황교안 후보도 간접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27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날 당대표를 선출한다. 당대표는 당내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다. 지금은 중도층보다는 집토끼를 신경 써야 할 시점이다.

허프포스트코리아는 지난 22일, 성남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당대표 선거 제3차 합동연설회를 찾았다. 입구에는 황교안 후보 지지자와 김진태 후보 지지자가 진을 치고 유세를 펼쳤다. 황 후보 측 지지자가 여론조사 결과를 읊자 김진태 측 지지자는 제동을 걸었다. 여론조사 결과는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각 후보자의 열성 지지자 둘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4일 공표된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지지층의 당대표 후보 지지도는 황교안이 60.7%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고 김진태 후보와 오세훈 후보가 각각 17.3%, 15.4%를 기록했다.”

허프포스트코리아는 합동연설회 앞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들이 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지, 자유한국당 지도부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그리고 현 정부에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지. 왜 극우적 주장을 반복하는지 또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알아보았다.

 

 

″이번 선거는 문재인의 음모”

자유한국당의 열성 지지자들, 특히 김진태 후보자의 지지자들은 불신이 가득했다. 세상이 자신을 속이려 하고 있고 미디어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공정하다고 믿는 것은 자신들이 생산한 콘텐츠밖에 없었다. 이 콘텐츠는 유튜브로 유통된다. 한 지지자는 “유튜브가 유일하게 애국 국민들을 일깨우고 정보를 주고 있다”며 “아직도 눈이 먼 일부 우매한 국민들은 아직도 태극기가, 우리가 바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진실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이런 유튜브 방송이다. 다소 조잡해 보이는 음모론이다. 정치 고관여자들은 선거를 전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박근혜 탄핵은 뼈아픈 참패였다. 전쟁을 치러보지도 못하고 패배한 것이다. 음모론은 이들의 패배에 이유를 제시해준다. 그 전쟁이 공정한 방법이 아니었다고 설명해준다. 음모론은 다시 불신을 만든다. 이 불신을 다시 음모론이 채운다. 어느 순간 음모론은 일상이 된다. 김진태를 지지하는 이들은 자신의 패배를 예견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 다소 복잡한 배경을 들이민다.

“이번 선거는 하나 마나입니다. (당대표 선거를) 중앙선관위에 맡겨버렸습니다”

자신을 구국동지회 회원이며 3사관학교 출신이라고 설명한 서명수 씨는 황교안 후보가 문재인 대통령의 한패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가 고려연방제로 가기 위해서는 숙주가 있어야 한다. 문재인이 갑자기 (나라를 북한에) 가져가려고 하니까 반항이 심하다. 중간에 숙주가 있어서 정화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황교안이 내정돼 대타로 들어왔다”

실제로 서씨 이외에도 많은 김진태 후보 지지자들은 현장에서 중앙선관위가 당대표 선거 조작을 위해 개입했다고 외쳤다. 앞선 유튜브가 설명하듯 이들은 19대 대선이 조작됐다고 믿는다. 그 조작의 배경에는 중앙선관위가 있으며 문재인이 북한에 나라를 갖다 바치기 위해서는 자유한국당의 협조가 필요하고, 그를 위해 황교안을 당대표로 심는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이다. 황교안이 문재인의 숙주라는 증거를 대기 위해 그들은 탄핵 사건으로 꺼낸다. 황교안 후보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있을 때 탄핵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란 게 ‘황교안 숙주설’의 근거다.

 

“국민들은 개돼지다”

이들은 여론도 믿지 않는다. 자신을 영화배우로 소개한 이재왕씨는 여론조사에 대해 “기껏해야 500~1000명 조사한 것. 우린 그것 안 믿는다.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나라는 거짓이 판을 친다. 진실과 정의는 다 사라졌다. 그냥 우기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들이 진실을 외면한다며 비판했다. 이씨는 “(나향욱이) 국민들은 개돼지라고 말했는데 국민들이 그걸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태극기 집회 4년 하다 보니까 정말 국민들은 개돼지”라고 말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진실을 국민들이 외면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게 답답해서 이재왕씨는 “우리는 태극기 들면 매일 운다”고 말한다. 자신들을 향한 비판에 대해서도 “우리나라가 언제부터인가 태극기를 들면 눈치 보는 나라가 돼버렸다”며 “당당한 국기인데 왜 눈치 보고 들어야 하냐”며 불만을 토해냈다.

이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게 대표적으로 김진태다. 보통사람들 입장에서 김진태는 ‘극우적 주장’을 펼치는 위험한 정치인이지만 이들에게는 ‘진실을 대변하는 유일한 후보’다. 서명수 씨는 “우리 태극기 전사들은 김진태만이 우리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본다”고 말한다. 그는 “그래서 만사를 제쳐놓고 전업을 내팽개치고 내돈 쓰고 나왔다”고 말한다.

자유한국당 당대표 합동연설회 현장을 들어가면 김진태 후보측 지지자들이 맨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황교안 후보의 연설 도중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현장의 상황은 여론조사와 온도차가 있었다. 당대표 후보 3인 중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지 않고 개혁 보수를 표방한 오세훈 후보를 태극기 부대를 등에 업은 김진태 후보가 앞설 수 있다는 예측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한겨레는 “당대표 후보 가운데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김진태 후보가 2위로 급부상하면, 이들 태극기 세력의 목소리가 당에서 공론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라에 힘이 없기 때문에…”

자유한국당 서울 중구 여성회장이며 황교안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윤희 씨는 한국이 현재 중요한 기로에 서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도 망했고 통일신라도 망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조선 말, 일제강점기 때처럼 사라질 기로에 서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문재인의 대북 친화적 정책이 위기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이 상황은 실제 공포다. 이윤희씨는 우리에게 “위안부가 왜 생겼나? 나라에 힘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것. 지금이라고 나라가 잘못돼서 제2의 위안부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며 “우리 대한민국이 힘을 가져야만 제2의 위안부도 생기지 않고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씨는 “우리 태극기 전사들은 (북한 공격을 위해 미국에) 우리 머리 위에 포탄을 퍼부어라 같이 죽겠다(고 요청한다). 왜? 우리 자손들은 자유대한민국에 살아야 한다. 저 엄혹한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런 세상을 막기 위해서는 선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현장을 차지하고 있었던 많은 이들은 60대 이상, 즉 한국전쟁을 겪었거나 전후에 태어나 전쟁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다. 이들에게는 북한과 체제경쟁을 벌이며 전쟁이 일어날까 두려워했던 시대의 잔상이 남아있다. 이 기억은 인구 5000만이 넘고 1인당 GDP가 3만불이 넘는 한국의 현재를 압도한다. 이들에게 북한은 언제든 한국을 공격할 힘을 갖고 있는 나라로, 한국은 금세 체제전복이 가능한 나라로 기억된다. 그래서 북한은 일종의 ‘불순물’이다. 북한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강한 힘으로 압도해야만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북한 문제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강한 힘을 가졌으며 체제전복의 위험이 없는 미국의 최근 대북 행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현 정부의 대북 행보는 ‘불순’하게 바라본다. 이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는 곧 북한에 나라를 바치려는 시도가 된다. 이들에게 ‘북한의 지령’이나 ‘종북 세력의 암투’ 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북미정상회담을) 베트남에서 하는 것은 김정은에게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베트남처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문재인의 공은 전혀 없다. 오로지 북한만 바라보고 철책을 없애고 북한 퍼주기 (하다가) 나라 경제가 망하고 안보가 망한다.”

 

5.18 민주화운동은 일종의 구심점

광주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이들은 생각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말을 나눈 이들은 대체로 5.18 민주화 운동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진짜 유공자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가짜를 가리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의견을 중심으로 피아를 구분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한 지지자는 자신이 한 때 홍준표 전 대표를 지지했던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홍준표는 5.18(희생자를) 유공자로 만든 사람”이라며 “홍준표는 5.18, 5.18은 더민주당. (그래서) 홍준표는 더민주당”이라는 주장을 외쳤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홍준표 당신이 해야 한다고 (지지) 했다”고 말한다.

또다른 지지자는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말까진 하지 않겠다”면서도 “어떻게 일반 시민들이 무기고를 터나. 어떻게 시민군이 공수부대를 죽이냐”며 “가짜 유공자들 때문에 진짜 유공자가 욕을 먹고 있고 광주시민 전체가 매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를 탄핵하자, 제명하자 할 수 있겠나. 이들이 당선돼야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며 “5.18이 정립돼야 역사가 바로 선다. 5.18 때문에 이 나라가 망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태도로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5.18 민주화운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열성 지지자들 밖에서는 이들의 망언이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행동’이지만 그 지지자들 사이에서 그들의 입은 ‘정의를 바로 세우는 행동’이 된다.

 

자유한국당이 빠진 함정

자유한국당은 모순적 상황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내부 지지자들의 맘을 얻기 위해서는 위험한 주장을 펼쳐야 한다. 5.18 민주화 운동을 흠집 내고 탄핵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문제는 이 주장이 중도세력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사안이라는 점이다. 후보자들은 당내에서의 생존을 위해 극우적 목소리를 펼치지만 그 결과로 이들이 당내 권력을 잡게 되면 자유한국당의 외연확장은 곤란해진다. 이렇게 되면 당장 다가올 총선부터 위험하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당내 권력을 얻기가 쉽지 않다. 당장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오세훈 후보의 지지율이 자유한국당의 향방을 가르는 바로미터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사람 중 비교적 온건한 이들은 황교안 후보를, 강경한 이들은 김진태 후보를 지지한다. 이들 눈에 오세훈 후보는 없다. 오세훈 후보가 김진태 후보에게도 밀리면 사실상 당내 개혁세력이 힘을 잃을 우려에 처한다. 자유한국당의 극우적 행보에 드라이브를 걸 세력이 점점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쯤에서 여론조사를 다시 살펴보자. 중도층에서 태극기부대와 자유한국당의 단절 여론이 65.8%가 나왔다. 포용은 18.7%였다. 태극기 부대가 극우적 세력으로 인식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극우적 행보에 염려를 표하는 중도층 여론도 그 정도가 될 것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한국의 전국단위 선거가 사실상 ‘스윙보터를 얼마나 끌어오느냐’의 싸움이란 점을 고려할 때 진짜 기로에 서있는 것은 자유한국당이다. 그리고 이들은 4월3일에 있을 재보궐 선거에서 극우적 행보의 첫 성적표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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