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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도 마음이 중요하다

인권에도 마음이 중요한 3가지 이유

ⓒ한겨레
ⓒhuffpost

하노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이번에는 어떤 역사를 쓸 것인가. 현재 진행 중인 한반도 상황에는 과거와는 다른 특징이 많다. 그중 하나가 양국 지도자의 성격이다. 두 사람 다 자기중심적 과시형인데다, 목표지향적 성취욕에 불타고, 위험감수 승부사적 기질이 두둑하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끌리는 것일까. 언론에서 이런 측면을 많이 부각하는데, 이를 단순히 가십거리로만 볼 순 없다.

국내외를 통틀어 정치 지도자들의 만남에서 양자의 ‘케미’에 이렇게까지 주목한 사례가 근자에 또 있었던가. 최고 의사결정자들의 정서적 친밀성에 바탕을 두고 톱다운 방식으로 내린 결정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 통일, 그리하여 남북한 주민들의 인권에까지 획기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세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두 사람의 성격적 특징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지도자들의 마음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지난달 <한겨레>에서 서재정 교수가 말한 대로 현재 북-미는 “서로를 겨누는 군대와 무기체계, 군사연습 자체가 필요 없는 상황을 만드는 노정”에 있으므로, 양국 관계 변화의 핵심에는 “마음 안에 있는 적대감, 불안감을 씻어내는 과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 미국, 한국 국민들의 마음 변화가 대단히 중요하다. 전통적인 냉전형 군비통제 논리 혹은 대북제재로써 비핵화를 압박해야 한다는 식의 전략적이고 계산적인 사고로는 현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서 교수는 강조한다.

1945년 제정된 유네스코 헌장도 이와 비슷한 점을 지적한다. 헌장의 첫 문장을 보라.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쳐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이다. 서로의 풍습과 삶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세계인들 사이에서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공통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이 의혹과 불신으로 인한 생각 차이가 너무나 자주 전쟁을 촉발시켰다.”

냉전이 격화되고 동서 진영 갈등을 지정학적 체스게임으로 설명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마음에 주목하는 접근 방식은 비과학적이고 비체계적인 방식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정치학, 경제학, 사회학에서 인간행동의 심리적 추동 원인을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비국가 행위자들이 왜 급진화되기 쉬운가 하는 질문에 거시적 시스템의 분석만으로 답하긴 어렵다. 차가운 인지(이성적 사고)와 뜨거운 인지(심리적 동기)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과거엔 인지 지도를 그리거나 심리학적 프로필로서 지도자의 성격 특징이 정치적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개별 사례들로부터 일반 원칙을 도출하려는 경향이 늘었고, 지도자가 처한 상황이나 제도환경의 차이가 의사결정의 인센티브를 다르게 만드는 측면을 분석한다. 인권학에서도 사회심리에 주목한 지 이십년쯤 되었다. 대표적인 연구 흐름을 살펴보자.

첫째, ‘인류 공동체’에 대한 태도다. 역사, 문화, 전통 등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하나의 인간가족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을 연구한다. ‘인류 공동체’ 개념은 15세기부터 조금씩 발전해왔다. 존 던이 17세기 초에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낭만적인 인류 개념을 표현한 시다. “대륙의 한 부분이 대양의 파도에 휩쓸려 나간다. 우리는 인류의 한 부분, 그러니 마을에서 조종이 울릴 때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아보려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이런 전통을 이어받은 간디는 다음과 같이 웅변한다. “모든 인류는 서로 나눌 수 없는 한 가족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든 사람들의 잘못에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아무리 사악한 인간이라도 나와 동떨어진 존재라고 끊어낼 수 없다.” 인권은 모든 인류를 나의 내집단으로 간주하겠다는 엄청난 지성적·정치적 기획인 셈이다.

한가지 질문을 해보자. 세월호, 백남기, 송파 세 모녀, 김용균…. 이런 사건들로부터 우리가 경험하는 정서적·도덕적 충격을 콩고, 시리아, 예멘, 로힝야 사태에서도 동일하게 느끼는가. 우선 나부터도 머리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으로는 그게 잘 안 된다. 인간의 공감능력은 가까운 집단부터 시작해서 여러개의 동심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권은, 우리가 어떤 집단과 동일시하는 자아범주화를 제일 높은 수준, 즉 인류 전체와 동일시하는 차원으로 확장할 것을 요청한다. 인권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면 공감의 동심원을 하나의 큰 동그라미로만 그려야 한다. 솔직히 말해 어려운 일이며, 그만큼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성격에 따라 인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 자기범주화의 동심원이 작을수록, 다시 말해 자기 종족 중심적일수록 인권으로부터 멀어진다. 세상을 상하로 나누는 데 익숙하고, 사회적 지배성향이 강할수록 반인권적 행동을 하기 쉽다. 전통, 복종, 처벌을 중시하는 우익권위주의적 성향일수록 인권과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공감성향이 있고, 도덕적 추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인권과 정비례하는 태도를 보인다.

셋째, 인권에 찬성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권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은가.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대다수 사람은 추상적 차원에서는 인권에 찬성하지만 구체적인 인권문제를 접하면 평상시의 사고방식으로 재단하는 경향이 있다. ‘착한’ 피해자와 ‘싸가지 없는’ 피해자를 나누고,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권문제와 그렇지 않은 인권문제를 나눈다. ‘피해자답게’ 행동하는 불쌍해 보이는 사람의 인권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자가 사회통념과 어긋나는 문제를 호소하거나 자기주장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은 사람에게는 냉담하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인권의 역사는 추상적 인권원칙과 실질적 인권의식 사이의 일관성을 높이려는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범과 행동기준에 자기 행동을 맞추려는 경향도 있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은 열등한 집단에 대해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 집단의 추론 방식을 무비판적으로 따르기 쉽다. 유유상종은 인권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자기들끼리만 소통하는 SNS에서의 확증편향이 무서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한국인이 겉으로는 인권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증적인 조사를 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2008년 전세계 19개 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고문에 관한 세계여론조사’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①모든 고문이 폐지되어야 한다(평균 57%) ②테러범에게는 약간 고문을 해도 된다(평균 26%) ③고문을 평상시에 허용해도 된다(평균 9%)라는 결과가 나왔다. ①번에서 절반 이하로 답한 나라 ②번에서 30% 이상으로 답한 나라 ③번에서 10% 이상으로 답한 나라, 이 세 범주에 모두 속한 나라가 딱 5개국이었는데 그중에 한국도 들어 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을 내자. 인권에 있어 사람의 심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양육의 초기단계부터 인권 친화적인 마음을 길러야 한다. 과도한 처벌, 무관심과 방치, 지나친 응석 허용은 인권과 반대되는 성격을 만들기 쉽다. 자기 행동으로 타인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 삶에서 경험한 고통을 반추하면서 역지사지하는 공감능력을 키우도록 안내할 수도 있다. 세계시민교육을 통해 자기범주화 수준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인권에는 왕도가 없다. 구속력 있는 법제도가 필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기 집단의 반인권적 규범을 따르지 않게 하려면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인권 규범이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민주시민교육을 통한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이런 노력에 더해 인권 증진의 개연성을 높이는 사회구조의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인권이 조금씩 전진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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