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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26일 17시 13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26일 17시 13분 KST

청춘과의 공조

20대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Stas_V via Getty Images
huffpost

“사회 일원으로 책임을 지고 싶고 타인 삶에 대해 관심도 갖고 싶어서 여기저기 다닌다. 그런데 한달 꼬박 일해서 받은 월급이 학자금 대출 상환, 월세, 생활비로 다 빠져나가고 십만원 남는다. 그런 내게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가 있나요?”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의하던 자리였다. 청년은 질문을 마치기 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줍지 않은 대답도 하지 못했다. 탄핵 촛불이 한창이던 때 어떤 청년이 했던 말도 잊히지 않는다. “광장에 나오면 모두가 하나인 것 같고, 승리하는 것 같은데…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순간 여전히 청년백수에 불과하다”고 했던 말. 창원의 젊은 기술 노동자가 했던 말도. “박근혜는 내려올 것 같은데, 그다음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열심히 일하고 배우면 미래가 있을 것이라 믿다 산업재해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난 이후, 삶이 그에게 물었을 법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말들. 촛불이 정권을 바꾸고 햇수로 3년이 흐른 오늘, 그들은 잘 살고 있을까?

그들이 떠오른 건 최근 여당 중진 의원들이 20대에게 했다는 말들 때문이다. 민주당에 대한 20대 지지율 하락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지난 정권의 반공 교육 때문이라는’ 분석의 말들. 전적으로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으며 결과에 한가지 요인만 있을 수 없다. 20대 민주당 지지율 하락이 곧, 보수화라고 결론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여당을 향한 20대의 불만이 있다는 것과 그에 대한 여당 의원들 견해가 20대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촛불혁명이 정부와 여당의 관용어가 되는 오늘, 촛불 광장에 서 있던 이들의 상당수였던 청춘이 느끼는 절망과 단절감에 대해 고작 지난 정부 교육 탓을 한다는 것이 아쉽다.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다. “20대 탓 많이 하시는데요. 20대를 누가 키웠습니까? 당신들이 부모입니다.” 모든 인간은 경험을 기본으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습성이니, 자신이 살아온 세상을 반추하며 타인 평가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극단적 양극화, 상대적 빈곤, 노동의 불안정성, 불안한 복지라는 삶의 조건 앞에 놓인 20대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들이 보수화되고 정치적으로 우경화된다 한들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민주주의는 무슨 의미냐고 울먹이던 그를 몇년이 지난 오늘도 잊지 못하겠다.

딸이 스무살이 되었다. 그녀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엄마는 부지런히 집회를 다녔고 딸은 아이돌 콘서트장을 다녔다. 우리는 가끔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를 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기도 한 시절을 살고 있다. 가끔 ‘너희들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니?’라고 물으려다 참는다. 내가 알지 못한다고 그 세계가 없는 것은 아닐 테니, 궁금함은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외환위기가 시작되기 전 대학을 나오면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었던 미래와 너희들의 것이 같겠는가? 다만 나는 그대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의 자원까지 남김없이 소비해버리는 파괴적이며 약탈적인 삶에 반대하겠다. 고독한 개인으로 살아가더라도 벼랑 끝에 내몰릴 만큼 안전망이 무너진 사회는 만들지 않겠다. 그대들이 어떠한 정치적 가치와 신념을 갖더라도 박해와 억압의 대상이 되는 국가가 도래하는 것만은 막겠다. 그대의 정체성이 무엇이라 하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혐오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 그 정도는 되어야 서로에게 던질 말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대들과 공존하기 위해 그대들과 공조하고 싶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