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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평론가들이 분석한 미국판 '복면가왕'이 성공한 이유

"‘마스크드 싱어’는 미국 문화의 저형에서 예상치 못했던 보물이다."

 

“나는 괴물(Monster)이다. 세상이 내게 찍은 낙인이 괴물이기 때문이다.” 네모에 가까운 털북숭이 외눈 괴물 ‘몬스터’가 ‘복면가왕’(The Masked Singer) 첫 에피소드에서 슬픈 듯 말했다. 음성 변조로 줄담배를 피우는 다람쥐 같은 목소리로 말하며, 괴물은 “나는 내 분야에서 최고였지만, 그 분야가 나를 배신했다. 그래서 나는 대중의 눈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내 동굴로 피신했다.”

여러 TV 평론가들은 처음으로 폭스의 괴상한 프로그램 ‘마스크드 싱어’(The Masked Singer)에 끌리게 된 계기가 그 괴물이었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사실 그들은 비현실적인 분장으로 전신을 가린 익명 셀러브리티들이 노래를 부르며 경쟁하는 프로그램에 별 관심은 없었다. 다민 직업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본 것이었다. 출연자들은 에일리언, 레이븐, 파인애플 따위의 가명을 달고 나왔다.

“미친 것 같았지만, 폭스의 사랑스러운 옛날식 똘끼였다. ‘미스터 퍼스널리티’를 기억하는가? 모니카 르윈스키가 진행했던 ‘바첼러’와 거의 같은 데이트 쇼였지만 출연자들이 가면을 썼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크리스틴 볼드윈의 평이다.

(나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볼드윈을 말을 들으니 아마 본 적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Getty Editorial

 

볼드윈은 이 프로그램을 1회 이상 시청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몬스터가 ‘동굴로 피신했다’는 말이 교도소에 다녀왔다는 뜻인지 심사위원들은 고민에 빠졌고, 볼드윈은 구글에서 감옥에 다녀온 뮤지션들이 누가 있나 정신없이 검색하게 되었다. 몬스터가 누구일까?

제저벨(Jezebel)의 리치 저즈위악 역시 그 장면에 놀랐다. 특히 심사위원 중 한 명인 가수 니콜 셰르징거가 몬스터의 말에 “오, 스위트 피!”라고 반응했을 때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첫 회가 끝날 때 쯤에는 다음 회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았다고 내가 만난 모든 비평가들이 말했다.

“직업적 의무 때문만도 아니었다.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비현실적일까?’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벌쳐의 캐스린 밴아렌동크의 말이다.

 

 

검열을 거치지 않는 스트리밍 TV가 우세를 차지한 지금, ‘마스크드 싱어’는 미국 문화의 저형에서 예상치 못했던 보물이다. ‘아메리칸 아이돌’과 매직 머쉬룸을 먹고 취해 피자집에 가는 경험을 섞어놓은 듯한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현실 도피에 대한 욕망, 짧은 주의 지속 시간, 종말론적 불안이 공존하는 2019년에만 일어날 수 있는 터무니없는 스펙터클이다.

누드, 욕설, 폭력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가족이 함께 봐도 괜찮은 프로그램이다. “내 아들이 방에 들어온다 해도 채널을 바꾸려고 얼른 리모컨을 잡진 않을 것이다.” 볼드윈의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TV에서 봤던 중 가장 본능적으로 뇌리에 새겨지는 이미지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몸 전체를 가린 셀러브리티들이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으려 경쟁하고, 하루 더 익명으로 공연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오감으로 유발되는 최면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첫 1,2주는 미심쩍은 마음으로 시청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빠져 들었다. 내 온몸에 쾌감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저즈위악의 말이다.

몬스터 이후에도 어떤 가수의 정체가 드러날지 궁금해 하며 다들 계속해서 시청하는 이유가 뇌를 마비시키는 이런 마법인 것 같다.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출연자 중 심사위원과 관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사람은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혀야 한다. 살아남은 출연자들은 다음 회에도 출연한다.)

LA 타임스의 로레인 알리는 “내가 이 프로그램을 썩 좋아하지 않을 때조차 나는 강제로 미스터리에 빠졌다”면서, 스트리밍 네트워크들에서 일부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미스터리 범죄 시리즈와 비교했다. “묘하고 중독성이 있다. 정체를 밝혀내고 싶어지게 만든다. 시체가 나오지 않는 실제 범죄물과도 같다.”

볼드윈은 블랙박스에 찍힌 실제 교통사고 영상을 보여주는 ‘카 크래쉬 텔레비전’에 비유했다. “불편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최면적인 요소 중에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일단 출연자들의 ‘약빤’ 분장이다. 에미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마리나 토이비나가 공들여 만든 의상들이다. 셀러브리티들을 다른 세계에서 온 괴물들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했다. 볼드윈은 ‘마약을 먹고 텔레토비를 보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휘황찬란하고 과장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부 분장은 정말 기이하고 으스스하다.

“가면들이 무시무시하다. 유니콘은 원래 예쁘고 꿈결 같은 존재이지만, 나는 ‘복면가왕’의 유니콘을 보며 종말 후의 죽음의 사자라고 느꼈다. 최악의 공포를 형상화했다.” 알리의 말이다.

“디어(사슴)는 S&M 고문 기구 괴물 같아 보였다. 나는…” 볼드윈은 말끝을 흐렸다.

보기 불편한 의상들이 많지만, 심사위원들이 의상 속의 셀러브리티를 묘사하는 방식이 더욱 어두운 매력을 지녔을 수도 있다. 켄 정, 제니 맥카시, 로빈 시크, 니콜 셰르징거는 출연자들의 퍼포먼스를 보고, 노래 실력에 대해 별로 도움되지 않는 커멘트를 하고, 과연 저게 누구일지 추측한다. 분장이 얼마나 섹시하다고 느끼는지에 대한 대화도 자주 나눈다.

“이런 괴상한 쇼에 나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스트 심사위원 JB 스무브가 최근 한 말이다. 맥카시는 에일리언(나중에 라토야 잭슨으로 밝혀졌다)이 “내가 본 중 가장 섹시하다”고 말했다. 그 에피소들에서도 이들은 라이언의 ‘맛있는’ 다리, 유니콘의 ‘날씬한’ 몸매, 히포의 전반적인 매력을 언급했다.

ⓒFOX via Getty Images

에일리언만큼 대상화된 출연자는 없었다. 에일리언은 자기 소개를 하며 자신의 외모가 아닌(전신 외계인 분장을 했으면서도) 목소리로 알아봐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에일리언에 대한 욕망을 가장 뚜렷이 밝힌 심사위원은 켄 정이었다.

“에일리언을 성적 대상화 하지 말라, 켄.” 반아렌동크의 말이다.

심사위원들이 가장 군침을 흘렸던 출연자는 에일리언이었지만, 평론가들의 전문적 의견으로는 피콕과 몬스터가 가장 뛰어났다. “피콕에겐 당당함이 있었다. 몬스터도 아주 사랑스러웠지만 섹스 어필만 놓고 본다면 피콕이었다.” 볼드윈의 말이다.

저즈위악도 같은 의견이었다.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피콕이다. 남성의 매력의 많은 부분은 행동하는 모습에 달렸는데, 피콕은 행동이 멋졌다.”
(“이 인터뷰가 없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싶다.”고 저즈위악은 나중에 밝혔다.)

알리와 복스의 토드 반데어워프는 몬스터의 손을 들어주었다. “몬스터에 큰 공감을 느꼈다. 아주 강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공감이 느껴졌다.”

“나는 몬스터가 좋다. 계속 진화하는 내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게 무엇을 말해주는지는 모르겠다.” 반데어워프의 말이다.

토이비나는 이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피콕과 몬스터는 자신만의 성격과 특이함을 가지고 있다. 시각적으로 그들이 가장 인기가 있다는 게 나로선 놀랍지 않다.”

의상 외에도 대중의 당황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요소들은 정말 많다. “나는 한 번 보며 메모를 한다. 한 번 더 보면서 뒤의 댄서들이 괴상한 레오타드, 가면을 착용하고 황당한 춤을 춘다는 걸 꺠닫는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가리는 불편한 분장을 한 출연자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스스로 가면을 쓴 관객들을 보며 놀라는 평론가들도 있었다. 더 링어의 마일스 서리는 관객들의 지나친 에너지가 불편했다고 한다.

“공연을 보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했고 불편한 적도 있었다. 내가 객석에 있었다면 불편했을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들이 모두 즐거워하는 것이 좀 괴상하고 인공적으로 느껴졌다. 지나치게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 프로그램에 대해 놀리는 말을 많이 하는 건 알지만, 이건 정말 농담이 아니다.”

“관객들은 눈이 휘둥그래지고 배꼽을 잡고 웃는다. 이 프로그램은 놀이공원의 유령의 집 거울 같다. 사실 한 개의 거울도 아니다. 일그러진 여러 거울들이 서로에 비친 상을 되비춘다. 정말이지 파편화된 현실이다.” 저즈위악의 말이다. (저즈위악은 ‘마스크드 싱어’ 관객 한 명을 인터뷰하여 제저벨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녀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게 숫자점을 믿느냐고 물었다.”)

 

 

내가 만난 평론가들은 ‘마스크드 싱어’를 좋아했만, 진지한 비판도 던졌다. 단조로운 경쟁 포맷을 문제 삼은 이들도 있었고,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심사위원들이 미스터리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버락 오바마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이 출연했다고 믿고 싶어하는 심사위원들은 가끔 관객들을 한참 앞서가 출연자의 정체를 제대로 맞추기도(예를 들어 켄 정은 유니콘이 토리 스펠링이라고 맞추었다) 했다.

“진행되면서 설정이 식상해진다. 특히 인터넷에 출연자에 대한 단서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사람들은 남은 복면가왕들이 누구인지 대충 알 수 있다.” 서리의 말이다.

반데어워프는 한 번에 몇 명씩 정체를 드러내는 한국의 오리지널 ‘복면가왕’을 보길 권한다.

부상을 입은 운동선수와 약쟁이 코미디언이 아닌 진짜 가수를 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다. “이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전부 훌륭하지는 않지만 계속 등장한다.” 저즈위악의 말이다.

그러나 출연 기준을 높이면 ‘복면가왕’의 특별함, 즉 어처구니없음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노래를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은 바보 같다. 더 바보 같아져야 한다.” 반데어워프의 말이다.

 

ⓒGetty Editorial

다들 이 프로그램이 바보 같다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마스크드 싱어’는 묘하게도 정곡을 찌르는 문화적 비평을 낳고 있기도 하다. 썩 유명하지 않은 셀러브리티들이 할리우드에 삼켜진 다음 내뱉어진 이야기를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기 자신과 스스로의 재능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털어놓는 걸 듣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더욱 모욕적인 상황에서라도 스포트라이트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싶어 돌아온다. 화려한 분장 아래에 숨은 출연자들의 약점은 진짜로 느껴진다.

토미 총이 정체를 밝힌 뒤 했던 표현대로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다.”

“‘마스크드 싱어’가 셀러브리티의 당혹스럽고 낯선 본질에 대한 진실을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특히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는 셀러브리티와 진정한 자아를 가진 셀러브리티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서리의 가설이다.

“‘마스크드 싱어’가 품은 메시지는 답은 결코 질문 만큼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는 실제 인물의 특징에 의해 전혀 제약받지 않는, 가장 순수한 셀러브리티 이미지이다. 애매한 전형, 불분명하고 알기 힘든 힌트만 남아있다.” 반아렌동크의 말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어마어마한 무뇌함의 결과일 수도 있다. “우리의 엄청나게 멍청한 지금 문화에 여러 거울을 들이댄다.” 알리의 말이다.
“난 이제 괜찮다고 생각한다. 내 주위의 세상이 불타고 있고, 이건 괜찮다.” 반데어워프의 말이다.

*허프포스트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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