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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25일 16시 57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25일 17시 05분 KST

일단은 조울병

감정들과 씨름하느라 하루가 다 가버리는 식이다.

Alessandro Vallainc via Getty Images
huffpost

작은 자극(말, 사건, 관계, 주관적인 느낌) → 연약하거나 흐물거리는 존재들을 수용하지 않는 이 세상이 너무 화가 나 → 세상은 바뀌지 않아 분노스럽고 염세적인 느낌, 이렇게 분노해도 무슨 소용이야 하면서 모든 것에 회의감이 들고 → 인간은 모두 죽어야 마땅하다고 느낌 → 인간인 나나 죽어야지 느끼고 → 이런저런 죽음을 상상하다가 → 옆에 있는 반려견과 엄마, 언니를 생각하면서 애정하는 존재들이 있으니 그래도 살아야지 싶다가 → 애정하는 마음도 낯설게 느껴져서 인연의 업이구나, 슬프다고 느낌 → 다시 일어나야지 기운을 내다가 → 다시 분노스럽고 무기력한 느낌이 들고 → 인도나 가야지 거기서 실종되고 싶다 → 다시 여기서 살아야지 다 말장난이다 싶고 → 발목 잡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더 슬퍼지고 → 의지력 부족인가 싶어 무기력하다가 → 기운이 솟구쳐 새벽 일찍 일어나 이런저런 일을 벌이고 → 좌절해서 이틀간 잠만 자다가 → 병원에 가게 되었다. 나의 조울증은 이런 식의 패턴을 반복했다.

두 달 전부터 먹는 약 종류는 세 가지. 신경막을 안정시켜 경련의 빈도를 감소시켜 주는 약, 하나는 정신활동의 흥분상태를 제거함으로써 사회적응을 돕는 약, 이라고 쓰여 있다. 다른 하나는 위의 약물로 일어날 수 있는 변비를 치료하는 약이다. 정신과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약물치료를 받는 건 처음이다.

약을 먹은 후 강도만 줄었지 이런 패턴이 바뀐 건 아니다. 분노와 충만감 → 다시 무기력과 비참함. 힘을 빼다가 다시 힘이 들어가는 패턴의 연속이다. 죽고 싶으면서도 내가 왜 죽어 반드시 살아야지 싶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내가 왜 그래야 해 밤에 계속 깨어 있을 거야 싶고, 무슨 말이든 소용없다고 느끼면서 더 할 말을 해야만 한다고 느끼고, 나를 죽이고 싶으면서도 절대로 죽지 못하게 막고 싶고, 치료받고 싶다가도 왜 내가 치료를 받아 다 치료받아야지 싶고, 약을 먹으면서도 약에게 권위를 주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특히 ‘정신활동의 흥분상태를 제거함으로써 사회적응’을 하는 게 뭔 의미인가 싶어 다 때려치우고 싶고, 이런 식의 감정이 왔다 갔다 한다. 이런 감정들과 씨름하느라 하루가 다 가버리는 식이다.
약을 먹으면 배경음악 없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느낌이다. 양극성 장애(조울증)는 모든 걸 이분법적으로 볼 위험이 있다. 자칫 피해망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분노가 올라올 것 같을 땐 서둘러 약을 삼켜야 한다. 아니면 이 분노를 설명할 언어를 제대로 찾고 뱉어내거나.

최근 주부들이 겪는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많은 주부들이 신혼 초부터 남편에게 정서적, 언어적,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 고립감을 느끼다가 술을 마시게 되고 점점 알코올중독이 되어 알코올 전문병원에 갇히게 되는 이야기. 아내폭력, 여성폭력이라는 언어를 그녀가 알고 있었다면 술 말고 다른 것으로 감옥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았을까.

병이라는 건 언어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찾는 최후의 언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언어는 아니지만 권위있는 누군가가 찾아준 통계적인 증상의 이름들. 조울증, 우울증, 이인증, 멜랑콜리아, 히스테리… 내가 찾지 못한 언어는 뭘까 싶다.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무기력하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본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