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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표결 날짜를 또 연기한 건 어떤 의미인가?

브렉시트 날짜 직전에야 승인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 허완
  • 입력 2019.02.25 14:30
  • 수정 2019.02.25 14:40
ⓒKHALED DESOUKI via Getty Images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의회 승인투표(meaningful vote)를 또 연기했다. 애초 이번달 말까지 시행하겠다고 약속했던 표결을 3월12일까지로 미룬 것이다. 브렉시트 공식 발효일을 불과 17일 앞두고 의회 표결이 진행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의원들은 극단적인 두 가지 선택지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통과시키거나, 이를 부결시켜 손 쓸 틈도 없이 노딜(no deal) 브렉시트를 맞이하거나. 만약 의회에서 합의안이 또다시 부결되면 재협상이나 관련 법안 처리 같은 후속 조치를 취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의 위험한 ‘벼랑끝 도박’을 좌절시키 위해 여야 의원들은 물론 내각 각료들까지 행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어 영국 정치는 또 한 번 격랑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FRANCISCO SECO via Getty Images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

메이 총리는 24일(현지시각) EU-아랍연맹 정상회의가 열리는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로 향하면서 승인투표 연기 결정을 발표했다. ”우리 협상팀은 수요일에 (벨기에) 브뤼셀로 복귀할 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는 이번주에 의회 승인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것이다.”

메이 총리는 ”그러나 우리는 투표가 3월12일 전까지는 실시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래도 (브렉시트 발효일인) 3월29일까지 EU를 탈퇴할 시간은 있으며, (예정대로 탈퇴하는) 그게 바로 우리가 계획 중인 일이다.”

메이 총리가 승인투표를 최대한 늦출 것이라는 관측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1차 승인투표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겪은 이래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EU) 측과 재협상을 추진해왔다. 가장 큰 반대에 부딪혔던 ‘아일랜드 백스톱’ 조항을 수정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은 없다. 의회에 제출해 투표에 부칠 협상안 자체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영국 정부는 협상 교착상태를 해소할 만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EU의 한 관계자는 영국 정부가 ”협상을 하는 척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메이 총리가 이미 부결됐던 자신의 합의안을 사실상 고수하며 의원들에게 선택을 강요(my deal or no deal)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제1야당인 노동당, 영국 재계를 대표하는 영국산업연맹(CBI)은 메이 총리가 ”시간을 끌고 있다(running down the clock)”며 한목소리로 이를 비판해왔다. 정부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메이 총리는 EU-아랍연맹 정상회의에서도 틈틈이 브렉시트 협상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브렉시트 피로(Brexit fatigue)”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EU는 ‘조금만 양보해주면 합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메이 총리의 주장 자체를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수당과 노동당 양쪽 모두 브렉시트에 대한 의원들이 의견이 극도로 엇갈리는 데다 메이 총리의 리더십도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Bloomberg via Getty Images

 

‘벼랑끝 전술’을 막아라

의회에서는 메이 총리의 ‘벼랑끝 전술’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 될 조짐이다. 

노동당 이베트 쿠퍼 의원과 보수당 올리버 레트윈 의원은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을 준비하고 있다. 3월 중순까지 의회에서 합의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브렉시트를 연기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노딜 브렉시트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다.

EU 탈퇴 절차에 관한 규정을 담은 영국 ‘탈퇴법(Withdrawal Act)’ 수정안에 따르면, 하원은 정부의 브렉시트 계획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하고 표결을 진행할 수 있다. 브렉시트 합의안 공식 인준을 위한 승인 투표는 아니지만, 정부의 브렉시트 계획에 의회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다.

지금까지 모두 두 차례에 걸쳐 이같은 표결이 진행됐다. 첫 번째 표결에서는 ‘재협상안‘이 통과됐고, 두 번째 표결에서는 메이 총리의 ‘플랜 B’가 부결됐다.

영국 하원은 26일 또 한 번의 수정안 표결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서 한 차례 부결됐던 쿠퍼 의원의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도 다시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앰버 러드 노동연금부 장관, 그렉 클락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 데이비드 고크 법무장관은 22일 데일리메일에 실린 공동 기고문에서 합의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브렉시트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보수당 내에서 친(親)EU파로 분류되는 세 장관은 ”너무 많은 동료 의원들은 합의안 없이 EU를 탈퇴하는 것의 결과를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우리 경제는 단기적으로도 장기적으로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비용은 증가할 것이고, 적기생산(just-in-time) 부품 공급망에 의존하는 산업들에는 심각한 혼란이 초래되고 투자는 감소할 것이다. EU와의 무역이 더 어려워질 거라는 건 분명하지만, 현재 우리가 EU 회원국으로서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리며 무역을 해왔던 일본이나 한국 같은 비(非)EU 국가들과의 무역 또한 마찬가지로 어려워질 것이다.

국가안보는 약화될 것이다. 예를 들어 EU 동맹국들과의 협력은 우리 당국들 간 자유로운 정보 공유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가 EU를 떠나면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한 그와 같은 협력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합의는 마련되지 않았다.”

(중략)

다가오는 며칠 내로 의회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 나라는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3월29일에 (합의안 없이) 떠날 수도 있고, 나중에 합의안과 함께 탈퇴할 수도 있다. 이 며칠이 지난 뒤에는 3월29일 전까지 합의안을 통과시키고 모든 필요한 법안을 처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우리는 3월29일에 합의안과 함께 EU를 탈퇴해야 한다는 것을 의회가 인식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몇 주 내에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의회 다수의 의견은 분명하다. 3월29일에 무작정 EU를 탈퇴하는 대신 우리의 탈퇴 날짜를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것이다. (데일리메일 기고문, 2월22일)

내각 각료들의 이같은 주장은 메이 총리에 대한 ‘공개 항명‘으로 봐도 무방하다. 메이 정부 각료들 중 상당수는 이처럼 브렉시트를 연기해서라도 노딜 브렉시트 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게 메이 총리의 ‘진짜 계획’일지도 모른다는 정황도 드러난 바 있다.   

물론 보수당 내 브렉시트 강경파들은 강하게 반발하는 중이다. 이들은 해당 각료들의 사임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메이 총리는 이 각료들이 ‘반란표’를 던지더라도 해임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북아일랜드부 장관인 존 펜로즈는 텔레그라프에 쓴 글에서 노딜 브렉시트라는 옵션을 제거해버리면 ”체크아웃은 했는데 퇴실은 하지 않는 ‘호텔 캘리포니아’ 브렉시트에 처하게 돼 브렉시트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메이 총리는 ”사람들은 브렉시트 연기로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이건 결정 시점을 늦추는 것일 뿐”이라며 기존의 공식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럼에도 가디언FT는 쿠퍼 의원의 ‘노딜 브렉시트 방지법’이 이번에는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메이 총리의 협박에 가까운 압박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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