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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나로 살고 싶다

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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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때부터 나는 어린이 캠프 지도자, 글쓰기 교사, 유치원 교사, 아동미술 교사, 놀이수학 교사, 모래놀이 교사, 독서토론 논술지도사, 독서치료 상담사, 연극배우, 코치, 작가 등 열 가지가 넘는 직업을 가지며 상황에 맞게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고 그때마다 투신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일의 영역을 넓혀가며 성장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인식하고 선택했다기보다 당시의 현실에 맞게 아들을 키우고, 가정을 소홀히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했다. 다행히 내가 잘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이었고 좋은 성과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고 묻기 시작한 것은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다. 마흔이 되도록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남편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자 삶 전체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스스로가 길바닥에 버려진 개똥보다 못한 존재로 느껴질 만큼 자존감이 떨어졌다.

그동안은 정말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이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화가 시작되자 나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더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만을 위해 무던히도 애쓰며 살았다는 것을.

삶의 중심에 내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진정한 나로 살고 싶어졌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이 질문은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와 마찬가지의 무게였다.

처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는 아주 오랫동안 이 사회에서 세뇌당한 사람답게 타인에게 인정받는 직업을 먼저 떠올렸다. 교수나 작가처럼 세상이 그럴듯하게 정해놓은 번듯한 직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되기 위해 누군가 인정해주는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자격증을 받기 위해 열심히 이것저것 공부했다. 변화와 성장을 즐기는 터라 배움은 즐거움과 행복을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승인을 받기 위한 자격시험을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딴 자격증이 결국 세상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종잇조각에 불과하며, 그 자격증을 발급해준 사람들 조차 합격 이후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 부여해준 자격증을 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
라는 것, 나도 절차만 밟으면 그들처럼 자격증을 발급해줄 수 있는 자리로 옮겨 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꽤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인 후였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어떤 태도에 마음이 갔다. 우아함, 온유함, 겸손함, 카라스마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또 무언가를 배우고, 어떤 사람인 척 행동했다. 늘 새로운 배움을 선택하느라 그때마다 초보자의 자리에서 긴장하고 떨었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살고 싶어 몸부림쳤지만 언제나 저 멀리 있는 목표에 비하면 나는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스스로를 자책하며 지내던 나이 마흔에 《강아지똥》을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이 책에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강아지똥이 나온다. 강아지똥은 자신의 모습에 서럽게 울며 화를 내고, 홀로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내리는 눈을 맞기도 한다. 그러다 무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어진다.

“난 이렇게 더러운 똥인데,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러다 봄이 오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강아지똥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난다. 민들레는 그동안 강아지똥을 무시하고 함부로 말했던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질문을 친절하게 받아준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더러운 똥이라고 외면당하던 강아지똥은 민들레와 마주 보며 다정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하늘의 별처럼 고운 꽃을 피운다는 민들레를 위해 기꺼이 거름이 되어주기로 결심한다. 내리는 빗물에 몸이 녹아 물컹해진 강아지똥은 기쁜 마음으로 민들레 싹을 힘껏 끌어안는다. 강아지똥은 온몸을 잘게 부숴 고스란히 녹여가며 민들레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민들레 뿌리와 줄기를 타고 올라가 마침내 꽃봉오리를 맺게 한다.

 

스스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서럽게 울던 강아지똥은 별처럼 빛나는 꽃이 되어, 향긋한 꽃향기가 되어 바람을 타고 세상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상처 입은 희생자 역할을 자처하던 나는 타고난 정체성을 십분 발휘해 아름다운 일을 해낸 강아지똥을 보면서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진정한 나로 사는 삶은 태어난 모습 그대로를 발현하며 사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존중하고 타고난 재능과 소질을 맘껏 발휘하며 사는 삶, 진정 원하고 바라는 것을 위해 기꺼이 투신하는 삶, 자아실현을 이루며 계속 성장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명확하게 자리잡았다.

그 후 나는 그 뜻에 따라 여성과 아이를 교육하고 치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게 설립한 ‘마음성장학교’는 내가 20대부터 마흔을 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험하고 배운 모든 것을 다 담아 내어줄 수 있는 자아실현의 장이 되고 있다. 그곳에
서 함께하는 이들과 더불어 계속 성장하고 성숙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때때로 나는 여전히 묻는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이제는 답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아니, 나는 이미 나다. 나인 것이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신뢰하기에 내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따라 방향과 한계를 정하지 않고 계속 걸으며, 자유롭게 성장한다. 오직 스스로 선택해 걷는 그 걸음만이 나를 나이게 하고,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것을 이제 안다.

나는 나다.

나는 죽을 때까지 나로 살다가 나로 기억되고 싶다.

 

나는 나다.

 

* 에세이 ‘마음이 머무는 페이지를 만났습니다(꼼지락)’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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