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뉴디터의 신혼일기] 결혼도 했는데 자꾸 길에서 번호를 물어보던 이유

내게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도 있는 것일까?

  • 김현유
  • 입력 2019.02.22 16:15
  • 수정 2019.02.22 16:17
ⓒGalapagosFrame via Getty Images
ⓒhuffpost

허프 첫 유부녀, 김현유 에디터가 매주 [뉴디터의 신혼일기]를 게재합니다. 하나도 진지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만을 따라가지만 나름 재미는 있을 예정입니다.

며칠 전 이야기다. 보무도 당당하게 신촌오거리 앞을 걷고 있는데 웬 남자분이 말을 걸었다. ”저기요...” 네? 남자분은 우물쭈물대더니 ”저기... 아까부터 봤는데 너무 제 스타일이셔서”라고 시작되는 말을 했다. 괜찮은 사람인가 아닌가 평가할 겨를도 없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머 어뜩해. 저 유부녀인데.”

″에?”

그의 시선이 내 왼쪽 손가락으로 향했다가 다시 얼굴로 돌아왔다. 나는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는다. 남자분은 뭐 그런 거짓말을 하냐는 듯 원망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대빵만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그 결혼반지 끼고 다녔다가 누가 손가락 잘라가면 어떡해. 게다가 시어머니가 ‘내 며느리 손가락이 그렇게 거대할 리 없어...!’라며 겨우겨우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치수로 맞춰 주신 결혼반지는 내 손에 좀 낀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걷던 길을 계속 갔다. 물론 곧바로 남편한테 자랑했다. ”나 길에서 웬 청년이 번호 물어봤다~~~~”

사실은... 길에서 뜬금없이 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도 길거리에서 대뜸 나한테 말을 걸어온 남성 중 하나이긴 하다. 내가 잘 알려진 대로 형광등 100개는 켜놓은 듯한 아우라를 풍기는 굉장한 미인 에디터이긴 하지만...

ⓒTV조선

오랜만에 뵙는 짤...

사실 나보다 훨씬 매력적인 친구들도 살면서 한번도 길에서 그런 일을 겪지 않은 경우가 많다. 즉 매력있는 외모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럼 대체 그 이유가 뭘까? 이에 대해 남편이 한 가지 가설을 제안했다.

″여보는 어디에서든 눈에 잘 띄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그런 거야.”

그렇게 말하고 그는 김수용처럼 ‘퓹ㅎ’하고 웃었다. 그 웃음에 몇 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남편(당시 남친)과 상암동 축구장에 갔었다. 만사천원짜리 일반석에서도 그라운드와 가까운 낮은 위치에 앉아 치킨을 뜯으며 축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남편의 친한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저 꼭대기의 스카이라운지에 있는데 우리가 보였다는 것이다.

혹시 천리안인가? 혹은 독수리의 눈을 가졌나? 세상에 저기 스카이라운지에서 바닥 가까운데 앉아있는 우리를 포착한 사람이 있다는데! 깜짝 놀란 제작진, 황급히 상암동으로...는 아니고, 어쨌든 우리를 보려면 시력이 5.0은 돼야 할 것 같아 깜짝 놀랐다. 경기 후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너는 안 보였어. 저기서. 근데 제수씨가 이상하게 눈에 확 띄더라고^^”

하하.

그렇다. 이상할 것 없은 없었다. 왜냐면 나는 머리도 크고 얼굴도 크니까....

천리안을 안 가져도, 몽골 토착민이 아니라도 저 멀리서도 식별가능하게 거대하니까! 마치 예능에서 사람 머리만 커보이게 CG 넣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래서 어떤 여성에게 번호를 딸까 골몰하는 자칭 픽업아티스트(아티스트는 개뿔이라고 하고 싶지만 표현할 단어가 마땅히 없다) or 그냥 평범한 싱글 남성인데 나랑 몇번 눈마주친 사람 모두 내가 눈에 엄청 띄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저 여자분 얼굴이 왜 저렇게 가깝게 느껴지지? .. 나 혹시 사랑에 빠진 걸까? .. 이게 운명일까..?’ 머리가 커서 그렇게 보인다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면 얼굴만 큰게 아니라 눈도크고 키도크니까ㅎ 착시효과 ㅅㅌㅊ?

단연 눈에 들어오는 스타일 나야나

실제로 세상엔 눈에 자꾸 띈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운명을 단정짓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같이 존재 자체로 눈에 띄는 사람은 자꾸 의도치 않게, 잠깐이라도 누군가의 운명의 상대가 되겠지. 남편은 옆에서 지금도 길에 걷다보면 저 멀리에서부터도 나밖에 안 보여서 눈에 잘 띄고 찾기 쉬워서 좋드그 흔드,,, 이 인간이...

어쨌든, 결혼도 했고 어차피 거절할테니 남편한테 자랑이나 할 겸 해서 말 걸어오는 거 다 좋다. 다만 멘트들이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이고 좀 재미가 없는 점은 좀 안타깝다. “저기.. 아까부터 봤는데.. 너무 제 스타일이셔서.. 혹시 번호 좀 주실 수 있으세요..?” 길에서 말 걸어온 사람들 첫마디는 남편 빼고 죄다 똑같았다. 목적이 분명하다면 창의력이라도 기르면 좋겠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아닌가.

혹시라도 아무 여성에게나 다가가 번호를 따는 그놈의 ‘픽업아트’에 관심이 있는 분께서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런 내용은 싹 빼고, 좀 더 창의력을 기르고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셔서 보다 세상에 도움이 되고 모두를 이롭게 하는 다른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물론 당연히, 진짜 길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도 있긴 하다. 그럴 땐 용기를 내야 한다. 대신 운명의 상대라 생각한 사람이 번호 안 준다고 협박이나 위협을 가하면 안 되겠지요? 애초에 안 될 거였으면 뭘 해도 안 되는 거니까.

한편 길에서 말 걸어서 결혼에까지 성공한 그 남자(aka 남편)가 내게 건 첫마디는 이거였었다

: “누나 직업 헬스트레이너에요?”

아... 어이없어...

그때 난 23살이고 그는 30살이었지만, 그렇다. 사실 될놈은 뭘해도 된다.

김현유 에디터: hyunyu.kim@huffpost.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결혼 #라이프스타일 #신혼일기 #신혼 #뉴디터의 신혼일기 #픽업아티스트 #전화번호 #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