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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와 사회적 합의

사회통합조사엔 눈여겨볼 다른 항목이 있다.

ⓒLiubov Khutter-Kukkonin via Getty Images
ⓒhuffpost

며칠 전 한국행정연구원의 ‘2018년 사회통합실태조사’가 발표되었다. 2013년부터 매년 실시되는 조사인데 올해는 동성애에 관한 조사 결과로 주목을 받았다. 동성애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이 처음으로 과반을 넘겼다고 한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포용의 정도를 묻는 항목에서 동성애자를 나의 이웃, 직장 동료, 친구 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2013년에는 37.9%였는데 매년 조금씩 상승을 해 2017년엔 42.8%까지 올랐다. 그런데 1년 사이 8.2%가 확 올라 2018년엔 51%까지 나온 것이다.

조사 결과를 들은 주변 사람들 중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왜냐면 체감으로는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배격이 예전보다 훨씬 더 심해진 것 같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들 때문에 피땀 흘려 세운 나라가 망한다며 법으로 더 강력하게 동성애를 금지하고 처벌하자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정치인들은 선거 공약으로 내걸기까지 했다. 피부에 와닿는 현실은 이렇게 차가운데 설문조사의 결과는 어찌하여 따뜻한 미래를 그리게 하는 것일까. 이 괴리를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사실 최근 몇년간의 설문조사들은 모두 일관되게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수용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 2013년에 국제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2007년과 비교해 2013년에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고 답한 한국인의 비율이 18%에서 39%로 두배 이상 늘었다고 발표했다. 2015년에 발표된 아산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 역시 2010년과 2014년을 비교했을 때 한국 사회의 동성애자에 대한 관용이 소폭이지만 그래도 상승했으며, 특히 20대에서는 두배가량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2017년의 한국갤럽 조사는 더 구체적이다. ‘동성애자도 일반인과 동일한 취업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질문에 응답자의 90%가 그렇다고 답했고, 동성애도 사랑의 한 형태라는 점에 56%가 동의했다. 동성 간 결혼에 대해서도 2001년엔 17%만이 찬성했지만 2017년에 두배가 늘어 34%가 되었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은 점점 줄어들고 동성애자를 함께 살아갈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인식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건 명백한 듯하다. 아직 절대다수의 의견은 아니라고 해도 중요한 건 한국 사회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앞선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다. 1980년대나 90년대에 비해 지금 동성애 혐오의 목소리가 더 높게 들리는 것은 실제로 반대하는 사람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려는 것이기에 두드러져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동성애 혐오 세력은 주로 아직 사회적 합의가 안 되었다는 말로 성적 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한 법이나 정책의 시행을 반대하곤 한다. 사람들은 사회적 합의를 곧잘 다수결로 오해한다. 사회적 합의가 되려면 먼저 반대자가 없는 환경이 되어야 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곤 자신들은 여전히 동성애가 용납되지 않으므로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사항이라며 차별금지법부터 퀴어문화축제까지 찾아다니며 반대하고 방해하며, 가짜 뉴스도 퍼트린다. 하지만 합의란 이미 입장의 차이와 갈등을 전제하는 말이다. 합의는 이해당사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서로 대화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가능하다. 사회적 합의는 때가 되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 나온다. 합의가 도출되는 평화적인 과정과 합의 내용을 이행하는 합리적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회통합조사엔 눈여겨볼 다른 항목이 있다. 사회갈등 해소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하는 집단이 어디냐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압도적으로 정부(41.7%)를 지목했다. 2013년 조사부터 한번도 변하지 않은 1위다. 국회(19.3%), 언론(14.7%)이 그 뒤를 따른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드러내는 결과다. 부디 정부는 눈앞의 이익과 안위, 표를 의식해서 눈치만 보며, 여론이니 국민 정서니 하는 허울에 숨어 더 이상 책임을 방기하지 않길 바란다. 차별과 폭력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미 변하고 있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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