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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의 정치학

미테랑 대통령에게는 있고, 한국의 정치인들에게는 없는 것

ⓒpossum1961 via Getty Images
ⓒhuffpost

짓는 것은 곧 권력이다. 모든 정치인은 랜드마크를 꿈꾼다. 가장 유명한 사람은 사회당 출신으로는 최초로 프랑스 대통령이 됐던 프랑수아 미테랑이다. 그는 그랑 프로제, 영어로는 그랜드 프로젝트, 한국어로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계획’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오르세미술관, 라빌레트 산업과학기술 문화공간, 라데팡스 상업지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국립도서관 등이다.

파리를 망치고 있다던 파리지앵들

모두가 찬성한 것도 아니었다. 어떤 파리지앵들은 미테랑이 파리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파리에 유리를 잔뜩 쓴 현대 건축물을 끼얹는다는 아이디어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파리 시민들은 과거를 사랑한다. 그들은 에펠탑이 흉물이라며 반대했던 까탈스러운 인간들이다. 그러나 미테랑이 작고한 지금, 그랑 프로제로 세워진 건축물들은 가히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이제 우리는 피라미드 없는 루브르박물관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유리로 쌓아올린 성전인 국립도서관은 현대 건축의 걸작이다. 이 건축물을 겨우 36살에 만든 건축가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미테랑은 건축가의 대통령이자 문화 건설자였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랜드마크를 꿈꾼다. 이명박은 청계천과 서울광장을 만들었다. 오세훈은 광화문광장과 세빛둥둥섬을 만들었다. 부산 시장들은 북항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했다. 이 모든 랜드마크 계획은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논쟁에 휩싸였다. 현 서울시장 박원순은 새로운 광화문광장을 만들고 싶어 한다. 새로운 광화문광장 건설은 계획안이 발표되자마자 역시나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광장 바닥에 촛불집회 상징 문양을 새기겠다는 계획은 보수 정치인들의 반발을 샀다. 세월호 기억공간 설치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 이전 역시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논쟁적인 이슈다. 동상 이전이 논란이 되자 박원순 시장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충분히 시민들의 의견이 존중된 상황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미테랑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랜드마크를 지으려는 정치인의 야심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랜드마크를 짓고 싶은 정치인에게는 지난 역사와 현재는 물론 아주 먼 미래가 함께 호흡하는 건축물을 선택하고 만드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건축가들에게 예술적 자유를 부여하는 호기로움이 있어야 한다. 프랑수아 미테랑에게는 그것이 있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지금 한국의 정치인들에게는 그게 있을까? 시민들에게 광장과 도로를 되돌려주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시장이 바뀌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변해버린 광장을 거닐고 싶지는 않다. 4년마다 새로운 동상을 보고 싶지도 않다. 시민들에게는 오래도록 남는 건축학적 걸작 위를 거닐 권리가 있다. 차라리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광화문에는 빼곡히 밤나무라도 심어보자. 밤이 익을 무렵 서울에 대한 사랑도 익어가리라.

* 한겨레21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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