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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에서 말한 피라미드의 ‘중간’은 어디일까

학부모들이 '인서울'에 목을 매는 이유가 있다.

ⓒhuffpost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명대사 중 하나는 “피라미드에서 제일 좋은 자리는 꼭대기가 아니라 파라오가 있는 중간”이라는 수한이(스카이 캐슬에서 제일 공부를 못하는 아이)의 말이었다. 피라미드의 중간은 학벌로 치면 어디일까? 주위의 학부모들에게 물었더니 다들 “인서울”이라고 대답했다. 2018년 대학 진학률은 69.7%이다. 그중 3분의 1은 전문대와 산업대, 사이버대 등이므로, 이들 대학이야말로 피라미드의 진짜 중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많은 학부모들은 ‘인서울’을 수한이처럼 평범한 아이들을 위한 소박한 목표로 여기는 것일까?

이 의문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있다. 국가별로 전체 일자리 중에서 고학력/고급기술을 요구하는 일자리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나타낸 세계경제포럼의 통계(The Human Capital Report 2015)다. 이 통계는 전문직, 준전문직, 경영관리직을 ‘대졸 이상의 학력이 필요한 일자리’로 분류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전체 고용에서 고학력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구매력 기준 10만달러가 넘는 룩셈부르크는 이 비율이 무려 59.5%이고, 4만~5만달러인 영국, 프랑스, 독일은 각각 48.0%, 44.9%, 43.1%, 3만달러 수준인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33.4%와 35.4%이다. 예외적인 나라가 한국(21.7%)과 일본(25%)이다. 어째서 이렇게 낮은 걸까? 전문직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것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한국은 인구 대비 의사, 변호사, 회계사 수가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국제 분업 체계에서 한국이 차지한 위치나 그에 따른 산업구조(제조업의 높은 비중 등)도 중요한 요인일 것 같다.

아무튼 이 통계가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한국에서 대졸자의 절반 이상은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학부모들이 ‘인서울’에 목을 매는 이유가 이렇게 해서 설명된다. 대학 교육이 헛된 투자가 될 위험을 피하려면 서울에 있는 대학 정도는 보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구조를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불변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맞춰서 교육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은 4차 산업혁명이 고학력 노동자의 수요를 더욱 늘릴 것으로 예상하고 대학 진학률을 높이려 애쓰고 있다. 반면 우리는 공무원 채용에서 고졸자 할당을 늘리는 것 같은, 논란이 많은 정책을 쓰면서까지 직업계 고등학교 진학을 장려하고 있다. 이 정책은 ‘고졸 취업을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내세우지만, 이렇게 늘어난 일자리는 많아야 연간 500개이기 때문에 취업난을 완화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학생 수가 줄어서 걱정인 직업계 고등학교 관계자들이고, 그다음은 저임금 노동력으로 굴러가는 한계기업 경영자들이다. 저임금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저학력 노동자를 만들어내는 정책이 과연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까?

경제성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입을 모아,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대학 진학률을 낮추는 것은 눈앞의 ‘일자리 미스매치’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경제발전에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모두가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전혀 사회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국민의 높은 교육열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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