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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인터뷰]셰프 박찬일은 왜 서서 마시는 오사카에 꽂혔나?

  • 박세회
  • 입력 2019.02.20 16:18
  • 수정 2019.02.20 16:50
ⓒ모비딕북스 제공

오사카. 인천에서 비행기로 1시간 40분 거리에 있는 일본 간사이 지역 최대의 도시. 남쪽의 번화가 난바부터 북쪽의 중심지 우메다까지 술집이 빼곡하게 쌓여 있는 이 도시에 이탈리아 요리를 바탕으로 하는 셰프 박찬일이 꽂혔다. 

얼마나 많은 술집에서 마셨는지 책을 읽다 보면 행간에서 술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다행스러운 건 마음은 취했을지언정 그의 혀와 눈은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 가게의 메뉴부터 주종과 술을 내는 방식, 손님들의 분위기까지 빠뜨리지 않고 적어 글로 쓰고 별점을 매겼다. 여행 서적 베스트셀러에 올라 내려올 줄 모르는 책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모비딕북스)에는 박찬일이 고르고 고른 술집 70개와 37개의 밥집이 담겼다. 왜 오사카인지, 어떤 오사카인지 직접 만나 물었다. 

책에 정말 많은 가게가 나온다. 대체 오사카에서 얼마나 많은 술집을 가본 건가?

본격적으로 책을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작업을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부터 오사카에서 먹고 마시고 다니다가 ‘이거 한번 해야겠다’고 농담으로 말을 던졌는데, 출판사 쪽에서 진짜로 ‘해보자’고 덤빈 케이스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오사카에 스무 번 정도 다녀왔고, 그중에 8번이 공식적인 취재였다. 다녀온 술집을 세어보니 700~800개 정도가 되더라. 그중에서 200개의 가게를 골라서 150개로 추려서 원고를 넘겼다. 원고까지 쓴 것 중에서 편집자가 40개를 뺐다. 원고까지 썼는데 빼니까 짜증이 나더라(웃음).

왜 오사카인가?

한국 사람한테는 오사카가 해방이다. 거기선 아무도 나를 몰라서 외롭다. 그런데, 또 외국인이라고 극진한 대우를 해준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들은 서로 날을 세우지만, 시민들은 친절하다. 내가 얻어먹은 공짜 술 공짜 안주가 엄청 많다. 서로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손가락질하고 비판하면서도 시민들끼리는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을 내는 핵심 이유 중 하나다.

″비스듬히 선 채 어깨를 끼워 넣어야 한다. 그것은 이 집에서 손님들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이런 상태를 일본에서는 흔히 ‘다크 덕스(Dark Ducks)’라고 한다. 오래전 활동한 남성 사중창단의 이름인데, 이들이 노래할 때 텔레비전 화면에 4명이 동시에 잡힐 수 있도록 비스듬히 선 데서 나온 말이다.”

-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中

또 다른 이유는 술꾼으로서의 이유인데, 술값이 말도 못 하게 싸다. 우리 술집에선 막걸리 한잔에 안주 하나를 시켜서 먹고 나갈 수가 없다. 그러면 민폐다. 또 2차를 가는 동선이 너무 길다. 그건 도쿄도 마찬가지다. 술집이 빠글빠글한 오사카는 한 집에서 한잔 딱 하고 회전하고 회전한다. 이런 회전을 가능하게 해주는 시스템이 바로 서서 마시는 ‘다치노미야‘다. 다치노미야에는 정원이 없다. 10석처럼 보이는 좁은 가게에서도 여차하면 스무 명이 서서 마신다. ‘다크덕스’라고 서로 어깨를 돌려 포개서 선다. 

참조 : ”서서(立) 마시(飲み)”는 가게라고 해서 다치노미(立飲み屋)다.

한국에도 서서 먹는 술집이 있지 않나?

우리도 선술집이 있었다. 종묘 옆 순라길에 아직 서서 마시는 술집이 서너 개 남아있다. 근데 지금은 거기에 가기가 힘들다. 태극기 장년층이 점령하고 있어 우리 같은 사람이 가면 배척한다. 시골 장터 뒤에 가면 지금도 서서 술을 마시는 문화가 남아 있다. 여수, 함평 같은 곳에 가면 서서 먹는다. 구례에 있는 동아 식당에 가면 지역 주민들은 서서 먹고 금방 나간다.

오사카 사람들은 왜 그렇게 술을 마시나? 

오사카는 좀 숨이 막히는 도시다. 북쪽의 우메다부터 남쪽의 난바까지 남북 5km. 이 5km의 길에서 동서로 가지치기한 곳곳의 거리에 술집이 있고, 그게 다다. 그 짧은 곳에 2백만의 사람들이 모여 마신다. 도쿄는 메이지 신궁, 요요기 공원, 히비야 공원 등 공원이 많은데, 오사카는 고수부지 밖에 없다. 공원이 있다고 해도 놀이터 수준이다.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콘크리트고 모든 게 실용 위주로 돌아간다. 이런 분위기가 술을 마시게 만든다. 

ⓒ모비딕북스 제공

책에도 나오지만, 오사카의 술집하면 떠오른 장면이 있다. 대낮에 시내에서 편한 차림으로 녹차처럼 술을 마시는 나이 든 할아버지들, 배경 음악처럼 흐르는 한신 타이거스나 코시엔 야구 경기의 중계 방송 같은 것들이다. 오사카 특유의 지역 색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간사이 지역에서는 교토가 권력의 중심지고 상업 도시 오사카가 이를 뒷받침해주는 구조였다. (교토, 고베, 오사카 등) 도시마다 색이 다르지만 ‘간사이’로 묶여 아예 동일본과는 다른 나라라는 느낌이다. 이 지역은 전원도 다르다. 서일본은 60Hz를 동일본은 50Hz를 쓴다. 야구도 마찬가지인데, 간사이로 묶여서 간토 지역이라 불리는 도쿄와 라이벌 구도다.

참조1 : 오사카(大阪)의 ‘사카‘(阪)와 고베(神戸)의 ‘고’(神)를 따 음독하면 ‘한신‘(阪神)이 된다. 교토(京都)까지 붙여서 ‘케이한신‘(京阪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부울경’(부산·울산·경남), ‘TK’(대구·경북)와 비슷한 조어다. 

참조2 : 일본의 전압은 100V로 동일하지만 지역에 따라 주파수가 다르다. 동일본은 50Hz, 서일본은 60Hz의 상용 전원을 쓴다. 예를 들어 시즈오카 현의 후지 강을 경계로 동쪽은 50Hz, 서쪽은 60Hz를 쓴다. 우리나라의 전원은 220V에 60Hz여서 간혹 유학생들이 가져간 전자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 국가가 상용 전원에 다른 주파수를 쓰는 예는 전 세계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오사카 시내의 술 마시는 지역에 관해 설명을 해준다면?

난바 지역은 한국과 중국 관광객들로 미어터진다. 그런 곳에서 숨겨진 가게를 발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난바는 유흥의 중심지고 무척 넓다. ‘미나미(南)에서 술 한잔하자’ 하면 난바에서 술 마시자는 뜻이다. 책에서 내가 ‘우라난바’(숨겨진 난바)라는 단어를 썼는데, 난바 지역 중에서도 숨겨진 곳을 찾는다는 의미로 최근에 만들어진 말이다. 우라난바 지역에 가야 러브호텔이 나온다. 러브호텔이 있다는 것은 일단 관광객 중심의 상권은 아니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관광객은 호텔에 가지 러브호텔에 가지 않으니까. 그 외에 책에서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와는 다른 지역)와 덴마 지역에 있는 숨겨진 술집들을 찾았다.

찾아보니 책에 있는 가게들의 정보가 블로그나 카페에 별로 없더라.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쓰면서도 ‘이게 잘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을 계속했다. 남몰래 우라난바, 덴마, 우메다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이 지역들이 알려져서 한국인들이 파헤치기 시작하고 해시태그가 만들어지면 큰일이다. 그래서 내 책이 너무 많이 팔리면 안 된다.(웃음)

참조 : 한국 네티즌이 식당을 평가할 때 ‘가성비’라는 단어를 쓴다. 일본에서는 영어의 코스트 퍼포먼스를 줄여 ‘코스파’로 쓴다. 오사카는 코스파의 도시다.

오사카의 술집들이 계속 싸게 팔 수 있을지는 약간 의문이다. 일본에서도 대출을 다 갚은 자기 점포에서 연금을 받는 부부가 싸게 파는 집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가게를 누군가 인수하거나 대를 이어도 선대의 가격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있었다. 오사카의 술집들도 그런 경우는 아닐까?

오사카의 술집들은 단기간에는 변화는 없을 것 같다. 밥집과는 다르게 술집은 ‘알아서들’ 다 이익을 낸다. 싼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있다. 예를 들면 하이볼에 더 싼 위스키를 넣는다든지, 일부는 자동화된 완제품을 사용한다든지 하는 방식이 있다.

ⓒ모비딕북스 제공

오사카에서 부러운 것 중 하나가 주거지역에 있는 동네 술집의 퀄리티가 매우 훌륭하다는 점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외국이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결정적인 건 완전 경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사카에서 장사는 요행수가 없이 모든 패를 드러내는 경쟁이다. 기술과 좋은 재료를 결합해서 장사해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뭐 거의 완전경쟁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가게마다 실력 차이가 심하고 소비자들이 일본 사람들처럼 까다롭지 않아서 요행수가 존재한다. 요행수가 없는 오사카에는 의외로 노포가 적다. 노포는 절반쯤은 오래되었다는 사실로 먹고사는 가게다. 엄청 노포 같은 데 가보면 7년 됐고, 12년 됐고 그렇더라. 내용과 품질을 유지하지 못하면 얄짤 없이 무너진다. 오사카의 소비자는 철저한 실용주의자들이다.

책에 나오는 곳 중에 다녀온 곳도 있더라. 예를 들어 불과 한 달 전에 우라난바 지역에 있는 마사무네야에 다녀왔는데, 별점이 생각보다 낮더라.

내가 별을 좀 짜게 줬다. 별을 매기기는 했지만, 등재가 된 집은 진짜 다 좋은 집이다. 내 책을 보고 오사카에서 마시는 사람이 별 4개짜리부터 찾아다닌다면 그건 오사카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방식이다. 별 2개짜리 또는 별 없는 집부터 찾아다녀야 진짜 많은 술집을 즐기며 다닐 수 있다.

ⓒ모비딕북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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