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탈북학교 다닌 한·북·중 출신 학생들은 북한이 변할 거라고 볼까?(인터뷰)

"수업 중에 생방송으로 남북정상회담을 봤는데, 마음이 진짜 복잡했어요"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베트남 하노이 거리에 꽃으로 만든 북한과 미국의 국기가 설치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베트남 하노이 거리에 꽃으로 만든 북한과 미국의 국기가 설치되고 있다. ⓒJEWEL SAMAD via Getty Images

2018년 4월 27일,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난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한 달 후인 5월 26일에는 깜짝 2차 회담이 열렸고, 보름이 지나 6월 12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났다. 불과 다섯 달 전까지만 해도 ‘살벌한’ 말들을 주고 받던 미국과 북한이었다.

 

2017년 9월 17일: 트럼프, 트위터에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 부르다

2017년 9월 19일: 트럼프, 유엔총회 연설 중 “미국과 동맹국들을 보호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2017년 9월 22일: 김정은, 트럼프 유엔 연설에 대해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

2018년 1월 10일: 트럼프, 트위터에 “내 책상에는 더 큰 핵 버튼이 있다”

2018년 1월 18일: 백악관 공식 성명 “미국 정부는 북한과 대화할 생각이 있다”

2018년 3월 5일: 김정은, 한국 대북특사단에 “트럼프 대통령 만나고 싶다” 의사 전달

2018년 3월 6일: 한국 정의영 국가안보실장 “북한은 평화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것”

2018년 3월 8일: 한국 대북특사단이 트럼프 만나 김정은의 회담 의사 전달, 트럼프, “5월 내에 김정은 만나겠다”며 수락

2018년 5월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일방적 핵포기만 강요하려 든다면 북미회담 재고려할 것”

2018년 5월 24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는다” / 트럼프, 북미정상회담 전격 취소 성명을 내다

2018년 5월 29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양측 준비팀 만나 구체적인 일정 등 실무 협의하며 예정대로 진행

2018년 6월 13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

.....

2019년 2월 3일: 트럼프 “나는 김정은과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를 유지하고 있다”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

 

2015년, 허프포스트는 창사 1주년 기획 시리즈의 하나로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장대현학교’의 학생들을 만났다. 당시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최장기 북한 억류 외국인이었던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케네스 배 등이 막 풀려난 직후였고,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을 방문한 해이기도 했다. 핵실험도 계속되었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는 2017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중학생과 고등학생이던 북한, 한국, 중국 출신의 십대들은 지난 4년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남북, 북미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국 생활 6년째를 맞은 탈북 학생 1명, 중국에서 북한 출신 새엄마를 따라 한국으로 온 중국 학생 1명, 그리고 한국 국적이지만 탈북학교에서 공부한 학생 1명을 다시 만났다.

 

“예전에 내가 북한에 대해 말하면 주위에서 당황스러워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통일 이야기를 한다” 

예린은 가장 좋아하는 북한 음식으로 인조고기밥을 꼽는다.
예린은 가장 좋아하는 북한 음식으로 인조고기밥을 꼽는다. ⓒsujean park/huffpost kr

김예린 22살, 한국 국적

 

한국인이지만 부모의 권유에 따라 탈북자 대안학교인 부산 장대현학교에서 고교 과정을 다녔다. 같은 언어를 쓰는 친구들이니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탈북 학생들과의 문화 차이가 커서 처음에는 ”매일 울었다.” 졸업 후 미국 대학에 진학했다가 지금은 휴학 중이다.

 

졸업 후에 생각보다 한국인들이 북한이나 통일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미국에서 만난 한 유학생은 내가 탈북민 학교를 졸업했다는 걸 알고 학교 생활에 대해 자세히 묻기도 하고, 한 한인행사에서도 통일과 북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예전에는 내가 그런 말을 꺼내기만 해도 사람들이 당황스러워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해서 오히려 내가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다들 가능성을 보기 때문인 것 같다. 통일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한다기보다는, 북한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데 그게 통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는 장면은 한국에서 생방송으로 봤다. ‘우리가 진짜 여기까지, 손까지 잡는 지점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에 나오는 김정은을 보고도 당황스러웠다. 학교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말하기로는 악랄한 지도자였는데 한순간에 평화로운 모습으로 나왔으니까. 비핵화를 진짜 할까 의심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믿어줘야 하는 부분 같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 실력을 잘 발휘하셨단 생각이 들었고, 북미회담 앞두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빨리 김정은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다른 나라 정상들에 비해서 트럼프는 김정은을 다루는 법을 좀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예전처럼 지금도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2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될 거라고 생각한다. 손주가 태어날 때 쯤에는 지금 독일이 와있는 정도까지 가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길 바란다. 준비가 잘 되어있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부와 정부가 합쳐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같이 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자립을 어떻게 하게 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 전에 만난 어떤 양계장을 하시는 분이 자립 수단으로 북한 시민들에게 닭 키우는 걸 가르치자는 아이디어를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몇 년 전과 다르게 벌써 사람들이 나름대로 구체적인 생각들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음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탈북한 친구들 만나기 전에는 북한 음식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사실 북한음식 중에 맛있는 게 냉면 말고도 많다. 인조고기밥이라는 게 있는데 졸업하고 나서 가끔 자기 전에 생각났을 정도로 좋아한다.

 

 

″북한 사람들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니까, 잘 될 거라고 믿는다” 

뢰는 한국 대학교에 합격했다. 대학생활을 마치고 나면 모국인 중국보다 한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된다.
뢰는 한국 대학교에 합격했다. 대학생활을 마치고 나면 모국인 중국보다 한국에서 산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된다. ⓒsujean park/huffpost kr

자오 뢰 20살, 중국 국적

 

중국 허베이성 출생. 초등학교 6학년 때 중국인 아버지, 탈북민인 새어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이사와 한국에서 십대를 보냈다. 3월 대학에 진학한다.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악수하는 걸 보면서 설레기도 했고, 불안하기도 했다. 북한은 북한대로 살고, 한국은 한국대로 살게 되는 것 같아서. 어릴 때는 북한에 가서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는데, 지금은 꿈이 더 커진 것 같다. 중국, 한국, 북한 사이의 외교나 경제 문제들이 많이 있으니까 그 중간에서 다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는 중국이 나쁜 나라라는 인식이 있을 것 같고, 중국에서도 북한 사람들을 나쁘게 보는 인식이 있을 것 같아서 양쪽에서 그런 걸 바꾸고 싶다.

 

북한에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되면 양강도에 먼저 가고 싶다. 친한 친구들이 다 양강도에서 와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거기서 온 친구들은 여기 감자는 맛이 없다고 한다. 학교 버스를 탔는데 그게 그대로 북한까지 가서 친구가 “저기가 내 집이야,”라고 말해주는 꿈을 꾼 적이 있다. 그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이 너무 기대된다.

 

김정은이 지금의 북한 정권 마지막일 것 같다. 김정은 이상 가지 않을 것 같고, 10년 안에 통일이 될 것 같다. 북한 사람들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니까. 지금 상황은 정확히 모르지만, 그래도 잘 될 거라고 믿는다.

 

북한 인권단체 링크 한국지부장 박석길씨는 김정은의 행보에 대한 탈북인들의 반응이 한때 엇갈렸다고 말한다. ”처음 남북정상회담을 할 때는 기대가 컸고, 특히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사람들은 다시 연락할 수 있게 될 거라는 희망도 품었다. 한편으로는 이게 다 김정은의 속임수라며 훨씬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나이든 세대에서 김정은의 핵실험 중단 관련 발언들을 강하게 의심한다.”

지난해 여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미회담 이후 9달 동안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던 까닭에 이번 하노이 북미회담에 대한 기대감은 높지 않다. 오히려 북한 정권이 내보이는 이런 대화의 제스쳐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를 잦아들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정은을 믿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기대는 하고 싶은 마음”

한철은 곧 진학할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해, 통일 후 북쪽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것이 꿈이다.
한철은 곧 진학할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해, 통일 후 북쪽의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것이 꿈이다. ⓒsujean park/huffpost kr

이한철(가명) 19살, 탈북

 

국경 마을에 살던 어린 시절, 중국에 사는 먼 친척이 구해준 노트북과 CD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봤다. 어머니가 종교적 이유로 먼저 탈북한 후, 잠시 평양의 친척 집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보낸 브로커를 통해 2013년 탈북, 라오스를 거쳐 한국 부산에 정착했다. 3월 대학에 진학한다.

 

한국에 와서 이제 5년이 넘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기억은 50% 정도? 많이 잊은 것 같다. 한국 생활이 빠듯하니까 조용히 혼자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다. 초딩 때부터 엄청 친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 연락은 안 했다. 안 하는 게 도움이 되는 거 같아서. 어차피 내가 아직 학생이라 도와줄 수 있는 신분도 아니고, 어설프게 하다가 걸리면 그쪽에서 위험할 거다.

 

학교에 2017년에 탈북한 후배가 한 명 새로 왔다. 여자애라서 얘기는 많이 못 해봤는데, 어느 정도 들어보니까 변하긴 했는데 많이 변한 건 아니라더라. 평양은 발전했겠지만, 국경지역은 일부러 많이 발전 안 시키는 것 같다. 옛날 평양 모습이 그나마 지금 지방까지 많이 내려간 거 같고. 평양에서는 스마트폰 쓰지만 지방에서는 거의 폴더폰 쓸 거고, 한 세대씩 지방이 늦다고 보면 된다. 혹시 돈 많은 사람은 지방에서도 스마트폰 밀수해서 쓸 수도 있겠지만.

 

김정은 정권 되면서부터 탈북도 밀수도 전보다 어려워졌다고 한다. 말이 그런 건지 실제로 얼마나 더 어려워진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일부러 지방에서 밀수 잘 하려고 ‘어렵게 됐다’ 소문낸 것일 수도 있고. 금처럼 비싼 거 밀수할 때는 대부분 끼고 한다더라. 금광이 전부 정부 건데, 몰래 캔 순금을 중국에 보내면 가공해서 다시 받고, 그걸 북한 안에서 다시 판다고 한다.

 

남북정상회담은 영어 수업하던 중에 TV 켜고 생방송으로 봤는데, 그때 마음이 진짜 복잡했다. 안그래도 대학 입시 준비하고 있는데, 머리에 생각이 엄청 많아지더라. 자아를 잃어버린 느낌? 정체성 혼란이 왔다. 나는 북한 정부가 싫어서 탈북했고, 그런 나를 한국 정부가 받아줬다. 그런데 내가 싫어한 사람과 날 받아준 사람이 만났다. 그럼 난 뭐가 되는 건가? 소외된 느낌이 좀 들었다.

 

또 만약 김정은이 진짜 변한 것이어서, 북한 사람들 진짜 살기 좋게 해줄 생각이라면 다행인데 옛날처럼 또 속이는 것일까봐 걱정됐다. 그렇지만 또 한국까지 아예 눈 감고 대화 안 하는 것도 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쁜 놈이긴 한데 북한을 책임지는 리더인 건 사실이니 무시할 수도 없고. 다들 어쩔 수 없으니까 기대는 하고 싶다는 심정일 것이다. 판문점 군사분계선 넘는 장면 봤을 때 살짝 노력한다는 생각은 했다. 북한 주민들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노력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대화를 하고 싶은 건 맞는 것 같다. 나는 죽을 때까지 금마가 좋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탈북민들까지 99%는, 김정은이 무릎 꿇고 사죄해도 좋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착한 사람이 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람들 굶겨죽이지는 않는 정도는 되었길 바라는 거다.

  

당연히 다른 나라들도 핵 포기해야한다. 미국도, 인도도, 전부 다. 내가 김정은 입장이라면 살짝 억울할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 지금 핵 포기한다는 게 안 믿긴다. 300만명 넘게 굶겨죽이면서 만든 걸 하루아침에 포기한다는 게… 진짜 핵 포기할 것 같다, 아니다, 이렇게 구분해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김정은 생각은 김정은이 밖에 모르니까. 트럼프는 신뢰한다. 금마는 다음번 대선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도 웬만큼은 잘 끝내려고 하겠지. 믿는 게 그쪽이다. 

 

북한 정책에 대해서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야당이 만약 다음 대선에서 이기면 이제까지 한 거 폐쇄하고, 철도 막고, 말짱도루묵 될 거 같다. 북한 사람들의 인권탄압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을 때가 진짜 통일이 되는 때일 거 같다. 또 기술이 발전 될수록 통일 되기 쉬워질 것도 같다. 예전에는 성경책 보다 빼앗겼는데 지금은 성경을 usb나 스마트폰 앱으로 보낸다더라. 이러다가 나중에는 북한에서 카카오톡도 할 거 같다. 그런 게 가능해지다보면 안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도 더 커지지 않을까. 교류가 되다보면 늦어도 20년 안엔 통일이 될 것 같다.

 

진짜 북한 사람이 요리하는 북한 식당이 한국에 생기면 무조건 갈 거다. 아마 탈북민들 대부분 갈 거다. 진짜 평양냉면은 북한에서도 먹기 힘든 것 아닌가. 실제로 가게 된다면 소감이... 엄청 이상한 기분일 것 같다.

 

(*탈북자학교이자 다문화학교를 다닌 탈북 학생 한철, 연희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http://huffp.st/ngLE7K7)

ⓒsujean park/huffpost kr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북미정상회담 #허프인터뷰 #장대현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