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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로 달라지는 것들을 살펴보자

'노동시간 단축' 사각지대 발생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1

노사정이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기로 지난 19일 합의했다. 대신 노동자의 과로를 막기 위해 근로일 사이에 적어도 11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가 탄력근로제를 임금 감축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도록,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에 대해서는 임금보전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탄력근로제 합의의 배경

여야는 지난해 2월 주당 법정 근로시간 한도를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에 합의했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 40시간(8시간X5일)에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허용해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에 맞추는 내용이다. 이를 주 52시간 근무제라고도 한다.

바뀐 근로기준법은 7월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사용자 측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강하게 저항했다. 말이 주 최대 68시간이지 사실상 무제한 노동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해온 일부 사용자한테 주 52시간 근무제의 기본 취지인 ‘노동시간 단축’은 곧 인건비 상승을 뜻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할 때 사용자가 받게 될 처벌을 계속 유예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 사용자 단체에서 새롭게 제시한 카드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였다.

탄력근로제란 유연근로시간제의 한 유형으로, 특정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근로일의 근로시간을 줄여 단위기간(기존 2주 또는 3개월)의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연장, 휴일근로)에 맞추는 제도를 말한다.

예컨대 2주 단위로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모바일 게임업체라면 게임 출시를 앞둬 업무가 몰린 첫째 주에는 64시간(소정근로 52시간+초과근로 12시간)을 일하고,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그 다음 주에는 40시간 일해 2주간 평균 근로시간을 법정 근로시간 한도인 주당 52시간 이내로 맞추는 것이다. 

ⓒ뉴스1

새롭게 합의된 내용들

노동계에서는 사용자 측이 요구해온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에 반대해왔다. 탄력근로제에 따라 사용자 마음대로 근로시간을 늘이고 줄이면, 노동자의 과로사 위험이나 산재사고 발생률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노사정은 19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함께 ‘연속휴식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단위기간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려면, 퇴근한 뒤 다음날 일할 때까지 적어도 11시간의 연속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해서다.

전날 회사의 필요에 따라 밤 12시까지 야근을 했다면, 그 노동자는 다음날 오전 11시까지는 집을 포함해 어디서든 쉬어야 한다는 뜻이다. 11시간 연속휴식 보장이 어려울 경우, 노사가 서면으로 합의해야 한다.

탄력근로제 도입에 따른 임금보전 방안도 노사정 합의안에 반영됐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사업장에서는 일이 몰리는 주에 최대 12시간까지 초과근로를 할 수 있다. 사용자는 이때 초과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사용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초과근로수당을 아끼는 수단으로 탄력근로제를 악용할 가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노사정은 탄력근로제 도입에 따른 노동자 임금 감소 보전방안을 사측이 마련하도록 했다. 단위기간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에 대해서는 사측이 보전수당 지급이나 수당 할증률 조정 등 방안을 마련해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이 경우에도 노사 대표가 임금보전 방안에 서면으로 합의했다면, 예외가 인정된다.

탄력근로제를 좀더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사용자 측 요구도 받아들여졌다. 현행 법상 노사는 탄력근로를 하는 날과 그 노동시간을 사전에 서면으로 합의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사용자 측은 노동시간을 하루 단위로 세세히 정해놓기 어렵다며 주별로 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노사정은 3개월을 초과하는 탄력근로제에 대해서는 주별로 노동시간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노동자가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사용자가 적어도 2주 전에는 하루 단위 노동시간을 통보해야 한다. 

ⓒ뉴스1

‘노동시간 단축’ 사각지대 생기나

노사정의 19일 합의를 살피면, 사용자 측에서는 단위기간 확대와 탄력근로제 도입 요건 완화라는 열매를 얻어냈다. 노동계는 건강권 및 임금 보전 요구를 어느 정도 얻어낸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언제나 디테일에 있다. 먼저 정부가 정한 ‘과로 인정 기준’조차 이번 합의안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노동부는 노동자가 12주 연속 주 평균 60시간 넘게 근무했을 때,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까지 확대하면 이 기준을 쉽게 초과할 수 있지만, 이를 막을 방도가 합의문에 담기지 않았다. 

사용자가 요구해온 탄력근로제 도입요건 완화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반면,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와 임금보전 방안은 추상적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컨대 노사정이 사용자의 요구대로 주 단위 노동시간 확정을 허용하면서 노동자는 2주 범위를 벗어나는 여러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워졌다. 

노사정이 합의한 임금보전 방안의 실효성도 떨어진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는 애초 처벌 조항을 요구했으나 합의 과정에서 이는 ‘신고 의무’ 조항으로 수위가 낮아졌다. 게다가 노사 대표의 서면합의로 이를 피해갈 수 있는 길도 열어줬다. 

이번 노사정 합의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노사정 야합의 결과 노동시간 주도권은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넘어가게 됐다. 민주노총은 내일 전국 확대간부 상경 결의대회와 3·6 총파업 총력투쟁을 보다 강력하게 조직해 탄력근로제 개악 야합을 분쇄하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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