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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기적’과 노벨평화상

트럼프와 김정은이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에 나란히 서기를 고대한다.

  • 배명복
  • 입력 2019.02.19 16:47
  • 수정 2019.02.19 16:48
ⓒGetty Editorial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安培晉三) 일본 총리의 옆구리를 찔러 노벨평화상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게 사실인 모양이다. 지난 주말 트럼프의 입에서 이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설마’ 하는 분위기였지만, 일본 언론의 발 빠른 확인 보도에 팩트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위한 국가비상사태에 관해 연설하던 중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아베가 자신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깜짝 발언’을 했다. 참인지 거짓인지 헷갈리는 트럼프의 화법 탓도 있지만, 그게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적극 포용하는 트럼프의 외교 행보에 우려와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아베 아닌가. 그런 아베가 한반도 비핵화와 지역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고? 트럼프가 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를 혼동한 게 아니냐는 보도가 미언론에서 나올 정도였다.

일본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트럼프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아베에게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비공식적으로 의뢰했고, 아베는 지난해 가을 노벨위원회에 추천서를 발송했다고 한다. 그 후 아베는 트럼프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보낸 5쪽짜리 ‘아름다운’ 추천서 사본을 직접 전달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 트럼프에, 그 아베’라는 감탄사가 안 나올 수 없다. 말 그대로 부창부수(夫唱婦隨)다. 트럼프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것이 ‘아베주의(Abeism)’의 요체라고나 할까. 하긴 ‘오야붕(親分·왕초)’을 대하는 ’꼬붕(子分·똘마니)의 자세, 그것이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그늘 아래 일본이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인지 모른다.

트럼프와 아베의 ‘짜고 치는 고스톱’을 통해 새삼 확인된 것은 노벨평화상에 대한 트럼프의 애착이다. 지난해 봄 한반도에서 전쟁의 구름이 걷히고, 평화와 화해의 기운이 무르익자 여기저기서 남·북·미 정상의 노벨평화상 공동수상 얘기가 터져 나왔다. 실제로 공동수상 가능성을 예측한 도박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었던 탓인지 지난해 노벨평화상은 전쟁 중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도운 인권운동가 2명에게 돌아갔다.

겉으로 트럼프는 “아마 나는 상을 못 받을 것이고, 못 받아도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속내는 다른 것 같다. 한 일도 없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전임자에 비하면 적어도 자신은 한반도의 전쟁을 막고,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시키고, 미군 유해와 미국인 인질 송환을 이뤄낸 공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노벨위원회는 매년 2월 당해 연도 평화상 후보 접수를 마감한다. 지난 12일 마감 결과 개인 219명과 기관 85곳이 올해 후보로 추천됐다. 노벨위원회는 1차 심사를 통해 후보를 추리고, 4~5월부터 본격적인 검증과 평가에 들어가 9월 말 수상자를 확정하고, 10월 초 발표한다. 과연 트럼프가 소원대로 올해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을까. 그 여부는 다음 주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달려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원칙을 정하는 회담이었다면, 하노이 정상회담은 원칙을 구체화하는 회담이다. 북·미 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라는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3개 원칙을 구체화하기 위한 실질적 이행조치를 도출하는 것이 이번 회담의 목표다. 알맹이 없는 외교적 ‘쇼’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우려면 이 세 가지 부문에서 뭔가 손에 잡힐 가시적 성과를 이뤄내야 한다. 이를 위한 양측 실무진 간 협상이 회담 직전까지 계속되겠지만 현재로선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렵다.

독재자 김정은이 싫더라도 지금까지 그가 보여온 전략가적 면모를 부정하긴 힘들다. 국제사회의 룰을 깨고, 그 탓에 극심한 제재에 시달리면서도 김정은은 끝내 핵 무력을 완성했고, 그걸 지렛대 삼아 남한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중국 등 주변 강대국까지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그가 과연 트럼프가 약속한 체제의 안전과 경제적 번영을 핵 무력과 맞바꾸는 대결단을 할 수 있을까. 얄팍한 꼼수로 시간을 끌면서 일방적 이익만 챙기려 한다면 언제 변심할지 모르는 트럼프의 분노와 화염에 직면할 각오를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가 실현되는 역사적 대전기를 낳는 ‘하노이의 기적’을 기대한다. 그래서 오는 12월 10일 오슬로 시청에서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에 트럼프와 김정은이 나란히 서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한다.

* 중앙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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