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뛰는가?

때로 우리는 관성에 따라 바쁘게 뛰는 것인지 모른다.

아버지께서 며칠간 내 차를 좀 쓰겠다 하셔서 구파발역에서 접선해 차량을 넘겨드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교통편을 떠올려보니 몇 번 갈아타는 지하철은 싫었다. 주말이라 시간도 여유롭겠다, 이렇게 나온 김에 바깥 풍경이나 구경하며 갈까! 시내버스가 좋겠다 싶었다.

검색해보니 마침 571번 버스가 우리집 앞에 딱 닿는다. 그래, 이거야!

그런데 승장장을 못찾겠다. 친절한 지도앱은 571번 버스가 4정거장 앞에 있음을 알려주었다. ‘승장장이 어디지?’ 두리번거리다 지도앱을 ‘새로고침’해보니 버스는 이제 3정거장 앞으로 다가와 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여기가 어디지? 승장강은 어디지? 지도를 이를 눕혔다 저리 돌렸다 하며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아뿔싸, 지금껏 반대편 도로에 있었구나! 이제 버스는 두 정거장 앞으로 바싹 다가와 있다.

길을 건너려면 마트 건물을 통과하고 다시 육교를 건너야했다. 마트를 후다닥 가로지르고 육교를 뛰어오르는데 문득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버스를 타고자 했던 이유는 ‘여유’였는데 나는 왜 뛰고 있는 걸까?

″식자우환”이라고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가 우리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내가 알아야 할 정보는 우리집까지 몇 번 버스가 가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디에서 타는지 정도면 충분했는데, 굳이 ”버스가 언제쯤 닿는다”는 정보가 끼어듦으로 ‘우환’은 시작되었다.

물론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서비스는 굉장히 유용한 정보다. 정류장에서 하릴없이 대기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때로 버스가 사정상 운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다. 도착 알림 서비스는 우리에게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낭비와 손실을 방지하도록 돕기도 한다.

정보는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정보는 있는대로 받아들이되, ‘내게 필요한 정보가 어디까지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한편으로, 글을 쓰며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너무 많은 정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보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라지만, 어쩌면 그걸 핑계로, 사람들이 굳이 몰라도 되는 일, 알아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고, 알게 되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런 일까지 기어코 끼적끼적 알려주고 있지는 않은가. 세상에는 알아야 할 일보다, 어쩌면 모르는게 맘 편한 일이 더 많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흔들리는 571번 버스 안에서, 타고내리는 사람들의 풍경을 넌지시 훔쳐보며,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앞길을 살핀다. 할 수 있는 말들과 해서는 안되는 말, 조심히 골라가며 해야 할 말들을 갈래갈래 더듬는다.

때로 우리는 너무 많이 쏟아내고 받아들이며, 관성에 따라 바쁘게 뛰는 것인지 모른다.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해왔던대로.

*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