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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19일 11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19일 11시 31분 KST

자유한국당 ‘급진 우경화’의 속사정

합동연설회장에서 태극기부대가 판을 쳤다.

자유한국당이 심상치 않다. 18일 오후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장도 김진태 후보를 지지하는 태극기부대가 판을 쳤다. ‘박 대통령 잡아먹고 김진태마저 제물로 바치려는가’, ‘김병준·권영진은 사퇴하라’는 펼침막이 등장했다.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에게는 “니네 당으로 가”라는 고함과 욕설이 쏟아졌다.

앞으로 남은 합동연설회 분위기도 비슷할 것 같다. 지난 17일 생중계된 인터넷 토론회 실시간 댓글 창에도 김진태 후보 지지 의견이 가장 많았다.

이런 흐름이 실제 표로 연결되면 27일 전당대회에서 김진태 후보가 황교안·오세훈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파란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김진태 후보는 1980년 ‘광주 5·18’에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극우 논객 지만원씨를 국회로 초청한 당사자다. 그가 대표에 당선되면 지만원씨의 주장을 자유한국당이 추인하는 것이 된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부산 지역구 장제원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급진 우경화’는 보수의 몰락을 의미한다”며 차기 총선과 대선 패배를 강하게 경고했다. 꽤 일리가 있는 걱정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도대체 왜 ‘급진 우경화’하는 것일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으로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하락했다는 보도가 계속 나온다. ‘5·18 망언’에 실망한 국민이 자유한국당 지지를 철회했다는 해석이다. 정말 그럴까?

내용을 들여다보면 좀 이상하다. 권역별로는 ‘대구·경북’,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 지지도가 크게 떨어졌다. ‘대구·경북’과 ‘60대 이상’은 이른바 보수의 강력한 기반이다. ‘5·18 망언’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반대로 ‘당 지도부의 섣부른 사과’에 대한 실망은 아닐까?

민심은 때때로 비이성적으로 움직인다.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터진 초원복국집 사건 때 영남 민심이 그랬다. 27년이 지났다. 수도권의 대다수 유권자는 이제는 지역감정에 민감하지 않다.

그러나 ‘대구·경북’과 ‘60대 이상’은 지역감정에 민감할 수 있다. 정확한 민심은 알 수 없다. 어쨌든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상한 일’은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조직위원장으로 선출한 조해진·류성걸 전 의원에 대해 시도당이 복당을 불허할 때부터 시작됐다. 시도당이 중앙당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사실은 자유한국당만 그런 것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는 무소속 이용호·손금주 의원 복당 및 입당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원들의 반대 여론 때문이다. 과거 당 지도부가 사전 정지 작업을 거쳐 무소속 의원들을 영입하던 관행이 무너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열성 지지자들의 감정 대립으로 시작된 당내 갈등이 가라앉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이재명 지사와 경기지사 후보 경선을 치렀던 전해철 의원 지지자들이 이재명 지사는 물론이고 이해찬 대표까지 공격했다.

전해철 의원이 당내 갈등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전해철 의원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당원과 지지자들을 내가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현상이다.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이상한 일’의 배경에는 공통점이 있다. 당 지도부나 국회의원들이 이제 당원이나 지지자들을 통제하거나 설득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거꾸로 당원과 지지자들의 여론이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의 말과 행동에 점점 더 강한 영향을 미친다.

정당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당론을 결정하는 주체가 총재에서 최고위원들로, 최고위원들에서 국회의원들로, 국회의원들에서 당원들로, 당원들에서 지지자들로 넘어가고 있다.

정당 내부의 권력이 아래로 이동하는 것은 당내 민주화 차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훈련받지 않은 지지자들은 여론조작과 선동에 취약하다. 그렇지 않아도 뉴스 편식으로 확증 편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방치하면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된다.

권력의 분산은 정보화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정당에서도 현실로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여론조작과 선동은 차단해야 한다. 자칫하면 ‘급진 우경화’나 ‘증오 상업주의’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참 어려운 과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