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do Ruvic / Reuters
국제
2019년 02월 23일 12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23일 12시 29분 KST

미국은 왜 화웨이를 의심하는가 : '21세기 냉전'의 간략한 역사

5G 상용화를 앞둔 지금, 화웨이를 겨냥한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은 곳곳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공화당)의 대선 경쟁이 한창이던 2012년 10월, 하원 정보위원회는 폭발적인 보고서 하나를 발표했다. 5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의 보고서에는 국가안보에 관한 꽤 심각한 권고가 담겼다. 핵심 결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중국산 통신장비들이 중국 정부의 사이버공격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는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 정부가 화웨이나 ZTE 통신장비를 도입해서는 안 되며, 미국 기업들도 이 업체들의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진행된 조사였음에도 하원 정보위는 명확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제기하는 의혹의 무게나 이것이 미칠 파장에 비하면 보고서의 문장은 모호했다.

″중국인 행위자들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집요한 경제적 간첩행위의 범인들이다. 미국 민간 기업과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의 소행이거나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것이 거의 확실한, 중국에서 비롯된 정교한 컴퓨터 네트워크 침입 맹공격이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보기관들을 비롯한 민간 기업들, 다른 단체들은 기업 네트워크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이들을 포섭해 기업 비밀과 그밖의 민감한 특허 자료를 훔치고는 한다.

이와 같은 사이버 및 인간에 의한 간첩행위 시도는 (중국의) 정교한 기술적 역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와 같은 역량들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중국산 통신장비 부품과 시스템에 악성 하드웨어를 집어넣거나 악성 소프트웨어를 심으려는 시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 보고서는 서막에 불과했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5G 상용화를 앞둔 지금, 미국은 동맹국들을 압박해가며 이 분야 선두 기업인 중국 화웨이를 겨냥한 대대적인 퇴출 작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화웨이(또는 중국 정부)가 초래할 안보 위협을 거론한다. 중국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곳곳에 설치된 화웨이의 장비를 해킹 도구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진짜 의도’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국 정보기관 정보통신본부(GCHQ) 수장을 지냈던 로버트 해닝언도 그 중 하나다. 그는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미국의 주장은 ”사이어보안이나 5G 네트워크 구조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 따른 것이라고 일축하며 정치적 의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미국은 대체 언제부터, 왜 화웨이를 경계하게 된 걸까? 화웨이는 정말 위험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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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2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사이버 인프라 보안 강화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 전력망과 F-35 전투기 프로그램 등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정부의 대응체계를 재조정하는 내용이다.

 

미국의 오래된 공포

오바마 정부의 대표적인 업적을 논할 때면 대개 ‘오바마케어‘나 이란 핵합의, 이민제도 개혁, 경제위기 해결 같은 것들이 먼저 거론된다. 그러나 사이버보안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정책 중 하나였다. 임기 첫 해에 대통령 특별보좌관인 ‘사이버 보안 조정관’을 최초로 신설해 백악관 컨트롤타워 체제를 강화한 게 오바마다.

오바마는 특히 핵심 기반시설에 대한 사이버보안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전기, 수도, 교통, 통신 같은 분야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대부분의 경우 운영 주체가 민간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민간 기업들의 보안 수준을 강화하도록 하는 법안이 마련된 배경이다. 오바마는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디지털 백도어’를 언급했다.

″앞으로 있을 분쟁에서, 전장에서 우리의 군사적 우위를 감당해낼 수 없는 적국은 우리나라 컴퓨터의 취약점들을 공략하려 할지 모릅니다.” 2012년 7월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이례적인 언론 기고문에서 오바마가 한 말이다. ”사이버 적들에게 백도어를 활짝 열어두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은 없을 겁니다.”

오바마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안은 8월 상원에서 부결되고 만다.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며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한 탓이다. 하원 보고서는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에 나왔다. 이후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던 의회를 우회해 사이버보안 관련 행정명령들을 동원하게 된다.  

오바마는 화웨이를 의심했다. 하원 보고서가 발표되고 약 열흘 뒤, 로이터는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18개월 동안 극비리에 진행된 조사 결과 ”화웨이가 중국 정부를 위해 간첩활동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그런 증거들이 있었다면 우리는 찾아냈을 것이다.” 한 관계자가 말했다. 증거는 없었다.

그와는 별개로 물밑에서는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바마의 두 번째 임기가 막 시작됐을 무렵, 미국 언론들은 2006년부터 이뤄진 에너지, 금융, 항공, 교통 등 주요 기반시설을 겨냥한 사이버 간첩활동과 공격이 중국 인민해방군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미국은 보복 사이버공격으로 대응했다.

그 뿐 만이 아니었다. 미국은 훨씬 오래 전부터 화웨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주 가깝고 은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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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Shenzhen, 深圳)에 위치한 화웨이 본사에서 엔지니어들이 네트워크 장비를 테스트하는 모습. 2011년 5월19일.

 

미국이 화웨이에 심은 ‘백도어’ 

2013년 6월,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비밀정보수집 프로그램 ‘PRISM’의 존재를 폭로했다. 미국과 영국이 전 세계 시민들은 물론, 주요 동맹국 지도자들의 통신 기록을 무차별적으로 수집·사찰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빅브라더’에 대한 우려와 논란, 거센 반발이 쏟아지면서 파문이 한동안 이어졌다.

이듬해 3월,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화웨이를 겨냥해 NSA가 벌여 온 사이버 침투작전을 폭로했다. 스노든이 건넨 NSA 기밀 문건들을 인용한 기사다. NSA가 화웨이 본사 네트워크에 침투해 백도어를 심어 핵심 정보를 빼내고 고위 임원들의 통신을 들여다봤다는 내용이었다. 작전명 ‘샷자이언트(Shotgiant)’. 

이에 따르면, 2007년부터 시작된 작전의 목표는 화웨이와 중국 인민해방군의 ‘진짜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0년경 네트워크 침투에 성공하자, 작전 범위는 확대됐다. 동맹국들을 비롯해 다른 국가들이 구입한 화웨이 장비로 연결된 네트워크를 NSA가 마음대로 활보하며 감시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타깃들 중 상당수는 화웨이가 만든 제품으로 통신을 주고받고 있다. (...) 우리가 관심을 갖는 네트워크들에 접근하기 위해 이 제품들을 어떻게 뚫어야 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문서에 적힌 말이다.

화웨이의 기밀 정보를 노골적으로 들여다보려는 의도 또한 분명했다. 2010년에 작성된 기밀문건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화웨이의 계획과 의도를 알아낼 수 있다면, 중국의 계획과 의도를 알아낼 수 있게 될 거라고 본다.” NSA의 사이버전 정보부서 TAO(Tailored Access Operations)는 CEO들의 통신 기록을 수집했다.

그러나 이 문건 어디에도 미국 정책 결정자들이 오랫동안 품었던 의혹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 

이 문건들은 핵심 질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 화웨이는 그들의 주장대로 독립된 회사인가, 아니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제기했으나 공개적으로 입증한 적은 없는 의혹대로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위부대인가?

‘샷자이언트’가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지 2년 뒤, 하원 정보위원회는 화웨이와 다른 중국 회사 ZTE에 대한 공개 보고서를 냈다. 중국 정부와의 연계 의혹을 입증할 증거는 지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2012년 10월에 나온 이 보고서는 이 회사들이 미국에서 ”인수, 합병”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외국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롭다고 신뢰할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뉴욕타임스 2014년 3월22일)

미국의 이같은 우려가 스스로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볼 여지도 있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의식하는 한 가지 이유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똑같은 목적으로 자국 기업들을 일상적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지난해 3월 장문의 분석 기사에 이렇게 적었다.  

″계약직 직원으로 일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유출돼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문서에는 NSA가 ‘매우 기꺼이 도우려 한다’고 추켜세울 만큼 AT&T가 거리낌없이 NSA의 도청을 지원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미국은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이용할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일지 모른다는 얘기다.

화웨이 미국 법인의 임원 윌리엄 플러머는 NSA의 화웨이 침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미국)이 우리에게 하고 있는 일(백도어)이 바로 중국 정부가 우리를 통해 하고 있다고 그들이 의혹을 제기해 온 일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런 간첩행위가 정말로 벌어졌다면, 화웨이가 독립된 회사이며 어떤 정부와도 이례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혀 이 잘못된, 허위정보의 시대를 끝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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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 정보위원회가 1년여에 걸친 조사 끝에 발표한 '중국 이동통신 업체 화웨이와 ZTE가 초래하는 미국 국가안보 이슈에 대한 조사 보고서'의 모습. 2012년 10월8일.

 

미국이 화웨이를 의심하는 이유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은 꽤 뿌리가 깊다. 유력 민간 싱크탱크 ‘랜드연구소’가 공군의 의뢰를 받아 2005년에 낸 보고서가 불을 지폈다는 게 정설이다. 보고서에는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이 중국 군, 국가 연구기관들과 함께 사실상 한 몸을 이루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른바 ‘디지털 트라이앵글(Digital Triangle)’이다. 

화웨이는 1988년 런징페이에 의해 설립됐다. 그는 중국 군의 통신 연구를 담당하는 인민해방군 총참모부의 ‘정보기술학교’ 디렉터 출신이다. 화웨이는 중국 군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군은 화웨이의 중요한 고객이자 정치적 후원자, 연구·개발 파트너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와 군은 화웨이를 국가대표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 업체는 현재 중국 최대의, 가장 빨리 성장하는, 또한 가장 인상적인 통신장비 제조사다. (랜드연구소 보고서 ‘A New Direction for China’s Defense Industry’, 2005년)

그러나 화웨이가 ‘민간 기업으로 위장된 중국의 간첩 부대’라는 의혹을 입증할 증거는 공개된 적이 없다. 미국에게도 논리는 있다. 국가방첩보안센터(NCSC)의 윌리엄 에바니나 국장은 ”중국 기업과 중국 정부의 관계가 서구 사회에서 민간 기업과 정부의 관계와는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NYT에 말했다.

″중국이 2017년 제정한 국가정보법에 따라 중국 기업들에게는, 그들이 어디에서 운영되든, 중국 정부의 첩보 활동을 언제든 지원하고, 도움을 제공하며 협력할 의무가 있다.” 그의 설명이다. 지금 당장 백도어가 발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국 정부가 언제든 화웨이가 만든 네트워크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에서 스마트폰 백도어 논란이 실제로 벌어진 적이 있긴 하다. 2016년 11월, 미국에서 판매된 일부 저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백도어가 발견된 것. 미국 저가폰 제조사 ‘블루 프로덕트’ 등의 기기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 ‘아둡스(Adups) 테크놀로지’에서 만든 이 사전설치 소프트웨어는 사용자의 위치정보, 연락처, 문자메시지 내용, 통화기록, 앱 사용기록 등을 72시간마다 중국에 위치한 서버로 전송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업체가 화웨이에도 소프트웨어를 납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화웨이는 해당 업체와 거래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아둡스 측은 중국 시장용 소프트웨어가 ‘실수로’ 탑재된 것이며, 중국 정부가 아닌 민간 업체 서버로 전송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건 민간 업체가 실수를 저지른 사건이다.” 

화웨이는 2001년 처음 미국에 진출한 이후 특허침해, 기술 절도 등으로 여러 차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3년 시스코와의 소송 건이다. 미국 주요 통신장비 업체인 시스코는 화웨이가 자사 소스 코드를 도용했다며 소송을 냈다. 소송은 양측의 합의로 마무리됐다.

화웨이는 각종 유엔 제재를 위반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미국산 부품이 들어간 장비를 불법으로 이란에 공급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화웨이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 부회장을 사업 기밀 절취, 사법방해, 대이란 경제제재 위반 등의 혐의로 전격 기소했다

보다 넓은 차원에서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부정적 인식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보기에, 중국은 해킹, 기업 비밀 탈취, 저작권 침해, 자국 인터넷 검열, 인권 침해 등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국가다. 이들에게 화웨이는 다국적기업이 아니라, ‘중국 기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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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 '2019 CES'에 마련된 화웨이 부스 뒤편을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 2019년 1월9일.

 

미국의 만리장성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화웨이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정부, 의회, 심지어 화웨이와 경쟁 관계에 있는 미국 기업까지 가세한 전방위적 작전이었다.

2008년, 화웨이는 미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쓰리콤(3Com)을 합병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오바마 정부가 국가안보 침해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탓이다. 화웨이는 2010년에도 미국 서버 업체 ‘3Leaf 시스템즈’ 인수를 포기해야만 했다.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을 심사하는 해외투자위원회(CFIUS)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다.

정부 기관이나 정부에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에게도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령이 내려졌다. 중소 업체들에 꾸준히 장비를 공급하긴 했지만, 화웨이가 미국에서 시도했던 인수·합병 계약은 번번이 좌절됐다. 최종 단계에서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업체들이 화웨이와의 계약을 꺼렸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멈추지 않았다. 2010년 NYT 기사에는 화웨이의 대대적인 로비전이 묘사된다. 당시 화웨이는 미국 통신사 스프린트와 30억달러(약 3조3700억원)짜리 초대형 계약을 추진하고 있었다. 의원들은 이 계약을 정부가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재무부와 국가정보국 등을 향해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장애물들을 예상한 화웨이는 미국에서 계약을 따내는 것을 도울 수 있는,  놀랄 만한 다수의 워싱턴 로비스트, 변호사, 컨설턴트, 대외협력 업체들을 고용했다. 미국에서 화웨이 제품을 공급할 업체 아메리링크 텔레콤 설립을 돕기도 했다. 이 업체의 막강한 이사진에는 전 하원의원 리처드 게파트, 전 세계은행 총재 제임스 울펀슨, 통신장비 업체 노텔 네트웍스의 CEO를 지냈던 윌리엄 오웬스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타임스 2010년 10월25일)

그러나 결국 스프린트가 중국 업체의 장비를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화웨이의 시도는 무산되고 만다. 사활을 걸었던 가장 큰 베팅에서 패배한 것이다. 화웨이의 순환 CEO 중 한 명인 구오핑은 2014년 BBC에 미국의 금지 조치가 회사의 매출에 ”별로 중요하지 않다”며 ”그들이 준비가 안 됐다면 우리는 기다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2018년이 되자 화웨이는 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며 중국 기업들에 대한 장벽을 더 높게 쌓았다. 그해 1월 미국 송금 서비스 업체 머니그램을 인수하려던 앤트 파이낸셜의 계획을 불허한 게 단적인 사례다.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앤트 파이낸셜은 알리바바그룹의 자회사다. 

비슷한 시기, 통신사 AT&T는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 계획을 철회했고, 버라이즌 역시 화웨이 스마트폰을 일절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의회는 통신장비 분야에서도 화웨이와의 모든 계약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베스트바이 같은 소매점들도 가세해 화웨이의 모든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FBI, CIA를 비롯한 정보기관의 수장들까지 일제히 나와 공개적으로 화웨이 제품 불매를 권고하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정부에 신세를 진 기업 또는 업체가 우리 이동통신 네트워크 내부에 장악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것의 위험성을 깊이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4월에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나섰다. 국가안보를 해칠 위험이 있는 통신장비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금지한 것. FCC는 화웨이 등을 거론하며 ”라우터, 스위치, 그밖의 네트워크 장비들에 숨겨진 ‘백도어들’”이 ”미국인들의 개인 정보를 빼내고,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 간첩활동”을 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정부는 ‘모든’ 미국 기업들이 핵심 네트워크에 중국산 장비를 일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 초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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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화웨이 브리핑 센터에서 열린 5G 제품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언론인과 초대객들이 홍보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2019년 1월24일.

 

5G 네트워크의 결정적 순간

특히 주목할 만한 사건은 또 있다. 트럼프 정부는 2018년 3월 브로드컴과 퀄컴의 1170억달러(약 132조원)짜리 초대형 인수합병 계약을 무산시켰다.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로 점쳐지던 인수를 무산시킨 이유는? 브로드컴이 ‘중화권’(싱가포르) 업체 소유가 됐으므로 미국의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CFIUS가 두 회사에 보낸 문서에는 이 계약이 성사되면 브로드컴이 (미국 기업인) 퀄컴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는 “5G 표준화 절차에 중국이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여기에도 화웨이가 등장한다.

″화웨이와 다른 중국 이동통신 업체들에 대한, 널리 알려진 미국 국가안보상 우려를 감안하면, 5G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미국에 국가안보에 중대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5G는 차세대 모바일 통신 네트워크의 줄임말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데이터 속도가 지금보다 최대 100배쯤 빨라지고, 자율주행차나 사물인터넷(IoT) 보편화에 필요한 전파 속도와 대역폭을 갖게 되며, 실시간에 가까운 낮은 지연율(Latency)을 보인다는 것 정도만 이해하면 된다.

5G 시대가 되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기기와 장비들이 연결된다. 자동차와 신호등이 서로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에 가까운 속도로 직접 주고 받고, 센서와 자동화 기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스마트시티 등 5G는 단순히 ‘인터넷이 빨라진다’는 수준을 뛰어 넘는다

거의 모든 것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만큼 보안의 중요성도 커진다.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의 사이버공격이 성공한다면 도시 하나 쯤은 어렵지 않게 마비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율주행차가 제 멋대로 움직이거나 발전소가 일제히 작동을 멈추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미국은 이런 이유를 들어 5G 네트워크가 ‘속셈을 알 수 없는’ 중국 업체들이 만든 장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두 가지 불리한 조건과 싸워야 한다. 첫째, 화웨이의 거대한 지배력. 둘째, 얼마 남지 않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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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는 유럽 곳곳에 연구소와 사무실을 차려 고용을 창출하는 한편, 주요 대학과 단체, 정치권, 문화예술계 등을 후원해왔다. 사진은 화웨이가 AI 기술을 활용해 완성했다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잉글리시 세션 오케스트라'가 영국 런던 카도간 홀에서 연주하는 모습. 2019년 2월4일.

 

미국 진출이 사실상 막혔음에도 화웨이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 삼성의 뒤를 이은 세계 2위 휴대폰 제조사로 발돋움했다. 유럽 시장 공략에 성공한 덕분이다. 그 역사를 정리한 NYT 기사에 따르면, 화웨이는 현재 유럽 14개국에 23개의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고 있으며, 수백개의 대학과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화웨이는 세계 2위의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는 물론, 아프리카, 중동, 남미 등지에서도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미국을 빼면 사실상 세계 곳곳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수직계열화, 제품군 다양화 등에도 힘을 쏟았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화웨이는 5G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는다. 중국 테크 기업들 중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R&D 예산을 쏟아부어 온 덕분이다. 화웨이의 R&D 예산은 인텔(Intel)이나 퀄컴, 노키아 같은 업체들마저 뛰어 넘는다. 

올해 상반기 세계 최초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통신사들은 5G 통신장비 업체를 이미 선정했거나, 곧 선정해야 한다. 수백억달러 규모의 계약이 세계 곳곳에서 체결되는 ‘큰 장’이 서는 셈이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의 6개월이 중요하다고 본다. 

각국 통신사들은 화웨이 장비를 선호한다. 화웨이 장비를 쓰지 못하면 막대한 돈이 추가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5G 상용화가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 없는 5G 시장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없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같다고 믿는다.” 화웨이 통신 네트워크그룹의 CEO 라이언 딩이 말할 수 있는 배경이다.

WSJ에 따르면, 한 영국 통신사 임원은 화웨이가 5G 기술에서 노키아(핀란드)나 에릭슨(스웨덴) 같은 서방 국가의 경쟁 업체들보다 최대 1년 앞서 있다고 말한다. 또 그는 화웨이 장비를 전면 금지하면 5G 상용화가 최대 18개월까지도 늦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유럽의 주요 이동통신사들 역시 한목소리로 화웨이 장비 전면금지에 반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말을 경청해왔고, 화웨이와 ZTE 장비를 국내 네트워크에 사용하도록 허용할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유럽 최대 통신사와 인터넷 서비스업체들의 반응이 그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영국을 비롯한 이 업체의 임원들은 장비 사용 금지 조치가 이뤄지면 그 비용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그들은 화웨이가 우월한 하드웨어를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하므로 금지는 곧 유럽이 5G 보급에 화웨이 장비를 쓰는 아시아 및 다른 국가들에 뒤쳐지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중략)

한 이탈리아 이동통신사 CEO는 지난해 여름 로마주재 미국 대사관에 소집됐다. 외교관과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증거를 공유하지는 않은 채 그에게 화웨이 장비 사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통신사가 화웨이 장비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며 ”시장에 화웨이를 대체할 제품은 없다”고 덧붙였다. (월스트리트저널 2월14일)

동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대놓고 화웨이 편을 드는 곳도 있다. 체코의 정치지도자들은 미국이 국가안보 보다는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고 말한다. 페테르 펠레그리니 슬로바키아 총리는 ”무역전쟁이나 경쟁자들끼리의 싸움에서 꼭두각시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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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전(Shenzhen, 深圳)에 위치한 화웨이 본사의 테스트 센터에서 한 엔지니어가 무반향실(anechoic chamber, 無反響室)을 걸어가고 있다. 2014년 8월7일.

 

미국의 진짜 의도가...?

미국의 외교적 노력은 최근 뜻밖의 장애물을 만났다.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영국의 정보기관이 미국과는 사뭇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영국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 함께 미국과 상호 첩보 동맹(파이브 아이즈 ; Five Eyes)을 맺고 있으며, 미국 정보기관들과 긴밀하게 첩보를 공유해왔다.

17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익명의 관계자 두 명을 인용해 영국 국립사이버안보센터(NCSC)의 비공개 검토 결과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은 중국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장비들이 초래할지 모르는 보안상 위험은 ‘관리 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전면 금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진 것은 아니라지만 영국 정부의 이같은 판단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 관계자는 FT에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영국이 국가안보 위협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영국이 권고한 것들과 똑같은 예방 조치를 취하기만 하면 통신사들이 계속해서 중국 부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도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대중과 미국 정부를 안심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곧이어 독일에서도 비슷한 소식이 전해졌다. 19일 WSJ은 독일 정부도 5G 네트워크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은 초고속 인터넷에서 시기를 놓쳤다. 우리에겐 빠른 인터넷이 필요하다. 시급히 필요하고, 가격도 저렴해야 한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보통신보안청(BSI)은 미국 및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아 조사를 벌였지만 화웨이가 자사 통신장비를 활용해 데이터를 몰래 외부로 빼낼 수 있다는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미국·영국 정보기관에게서도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영국과 독일에는 화웨이가 세운 사이버보안 연구소가 있다. 2010년 영국 남부 밴버리에 처음으로 세워졌고 2018년 가을에는 독일 BSI 본부가 위치한 본에도 문을 열었다. 두 나라 정보기관들은 화웨이와의 합의에 따라 이곳에서 화웨이 제품과 소스코드를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며, 보안성 검토 결과를 정기 보고서로 낸다.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인 뉴질랜드도 입장을 바꿀 조짐이다. 저신다 아던 총리는 19일 5G 네트워크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배제할지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기된 우려를 ”완화”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 최근 중국 관광객들은 대거 뉴질랜드 여행을 취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가운데 동맹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은 화웨이 문제를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활용하는 듯한 트럼프 정부의 모습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미국의 진짜 의도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관점은 화웨이가 간첩행위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부족한 것과 결합되면서 일부 국가들로 하여금 미국의 (화웨이 금지) 캠페인이 정말 국가안보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에 따른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뉴욕타임스 1월26일)

블룸버그는 스티므 므누신 재무장관을 비롯한 무역 협상팀 관계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화웨이 금지’ 행정명령 서명을 유보할 것을 조언했다고 22일 보도했다. 미국 네트워크에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산 통신장비를 쓰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이 행정명령이 현재 진행중인 미국-중국 무역협상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 실무회의를 앞둔 21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린 유화적인 트윗의문을 키운다.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화웨이 장비를 쓰는 국가와는 민감한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반면 같은날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 금지 조치를 완화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나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미국에 5G, 아니 6G 기술까지도 나왔으면 한다. 이건 현재 기준(4G)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빠르고, 똑똑하다. 뒤쳐지지 않으려면 미국 기업들은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누가 봐도 미래인 기술에 우리가 뒤쳐져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미국이 현재 더 뛰어난 기술을 금지함으로써가 아니라, 경쟁을 통해 이겼으면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서 언제나 리더가 되어야 하며, 특히 매우 기대되는 기술의 세계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다음날(22일), 기자들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중국과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고 말했다. ”공정한 경쟁. 나는 누구도 금지하고 싶지 않다.” 중국과의 무역협상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류허 중국 부총리와의 면담 도중 그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웨이 금지’ 행정명령에 대해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그게 중국과의 무역 합의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관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보나 다른 이유가 있다면 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없는 건가? 그렇지만 그건 오늘 우리가 논의할 것들 중 하나다. 우리는 개방된 경쟁을 원한다.”

 

 

 허완 에디터 : wan.he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