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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18일 15시 04분 KST | 업데이트됨 2019년 02월 18일 15시 04분 KST

내가 없으면 부모님은 스마트폰 사용도 어려워

'친절한' 디지털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 유튜브 캡처

강원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조수석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데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 와준 직장 동료들에게 고마워 떡을 돌리고 싶은데, 그 떡에 붙일 라벨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라벨을 인쇄할 종이도 이미 집 근처 문방구에서 샀단다. 엄마의 마음도, 라벨용 인쇄 용지도 준비됐지만 어떻게 만드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무직에 종사하지 않는 엄마는 예전에 배운 컴퓨터 사용법을 이미 잊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게 가능한 시대다.

“엄마, 일단 한글을 켜봐라.”

“야, 한글이 안 깔려 있는데 우야노.”

위기다. 급히 아이폰으로 MS 워드에서 라벨지를 제작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엄마에게 일러주었다. 전화기 하나에 귀를 대고 내가 말해주는 대로 따라 한 엄마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 뒤 이내 해냈지만 프린터가 문제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들어보고서 또 급히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검색해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는 라벨지를 인쇄했고 정성스레 떡에 붙여 이튿날 동료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무사히 인쇄를 마치기까지 나는 강원도에서 서울 집에 도착하는 내내 엄마와 통화를 해야만 했다.

한때 부모님도 트렌드 세터였는데

본가에서 떠나 산 지 한참 됐다. 내 어릴 적 기억 속의 첫 휴대폰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엄마와 아빠 목에 걸려 있었다. 32화음, 64화음 벨소리를 뽐내던, 그 시절에도 흔치 않던 휴대폰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꽤 앞서나간 트렌드 세터였지만 기술 발전의 속도는 그보다 한참 빠르고 급격했다. 그 속도는 아예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갖고 놀던 세대의 속도와도 달랐다.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스마트폰을 쓰면서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우리 세대와 점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첫 휴대폰이 스마트폰이었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내 동생과는 말할 것도 없다. 기술의 폭발적 성장을 따라가기 어려운 부모님은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와 휴대폰 사용에서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는데, 동생이 본가에서 나가 살기 시작하면서 부쩍 나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많아졌다. 하지만 당장 옆에 붙어서 설명해줘도 부족할 판에 전화로 설명을 하게 되니 서로 성질만 날카로워졌다. 특히나 오랫동안 아이폰만 써온 나는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부모님의 불편함을 그때그때 바로 해결할 수가 없다. 물론 우리는 잘 모르면 바로 인터넷을 켜고 당장 검색을 해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런 검색도 어렵고 검색을 해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모님은 딸과 아들이 곁을 떠나니 당장 물어볼 데가 없어진 셈이다. 가끔 어떤 문제는 전화로 해결해줄 수 없어 내가 집에 내려갈 때까지 서로 인내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간 이번 설. 거실에 함께 모여 TV를 보는데 아버지가 대뜸 불만을 나타냈다.

“야, 요새는 와 그래 못 알아먹을 말을 많이 쓰노?”

아버지는 유행어인 신조어는 그렇다 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이상한 말들을 조합하는 걸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하루는 TV에서 ‘겟겟’이라는 단어가 나오더란다. ‘get get’이라고 쓰면 알지만 겟겟이라고 한글로 쓰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으셨다고. 인터넷에서는 많은 단어가 쉽게 변형되고 조합된다. ‘줍줍’ 같은 단어와 비슷하게 사용된 것 같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지만 아버지에겐 그 유추마저 어려웠다. TV가 주요 시청자로 잡고 있는 평균 나이대는 1020이 아니라 4050이지만, 티브이 프로그램은 방송을 인터넷에서 짧은 클립으로 소비하는 젊은층들에게 더 적합한 언어로 제작되고 있다. 아버지는 자막을 보며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이 더욱 줄어가고 있다. 물론 자연스러운 언어의 사회성이기도 하겠지만 어쩐지 서글프다.

얼마 전 유명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무인주문기 이용 영상이 화제였다. 박막례 할머니처럼 비교적 키가 작은 노인 세대에게 무인주문기는 꽤 높았다. ‘주문을 하시려면 터치하세요’라는 말도 곱씹어볼수록 어색하고 어렵다. 무인주문기에 뜬 글자는 노인 세대가 읽기에 지나치게 작았다. 터치라는 말을 모른다면, 조그마한 글자를 읽을 수 없다면 박막례 할머니처럼 도중에 주문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모님 세대도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는 말할 것도 없다. 사람을 대체하고 있는 무인주문기는 사람과 접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젊은 세대에게는 유용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주문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박막례 할머니는 다행히도(?) 당장 도와줄 손녀가 곁에 있지만, 혼자 사는 우리 외할머니는?

무인발권기를 사용할 수 없어 버스, 기차표 예매를 하지 못해 고향에 내려갈 수 없었다던 노인분들의 이야기가 그저 말로만 떠도는 소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 디지털 발전 속도에 견줘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접해본 적이 없는 세대를 위한 교육은 그간 더뎠나 보다.

나도 나이가 들면

씁쓸하게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회사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코딩을 배운다더라, 이제 중·고등학교 때 정규 수업으로 코딩을 배운다더라, 그네들은 코딩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로직을 세우는 데 익숙하겠지, 온갖 염려를 나눈다. 개발자가 아니라면 코딩의 ‘ㅋ’ 자도 배워본 적 없는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기술의 발전 속도는 우리보다 분명 빠를 테고 우리는 분명 나이가 들 텐데. 이렇게 혼자 나이가 들어가면? 지금 우리 부모님에게 멀리나마 있는 나와 내 동생처럼 바로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앞으로 나의,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는 디지털 소외 문제일 텐데. 앞으로 기술은 더욱 발전할 테고 이미 무인화돼가는 상황에 현장 지원을 위해 사람을 더 투입하기란 쉽지도 않을 테니,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을 위한 더 적극적인 교육도 필요하겠지.

한편 무인주문기 등 여러 디지털 기술은 노인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에게 이슈가 된다. 이를테면 프랜차이즈 무인주문기의 경우 시각 장애인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도 이용의 장벽이 존재한다. 음성 지원 서비스나 점자가 없는 디지털 기기를 시각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고,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무인주문기는 사용을 시도해볼 수조차 없게 만든다. 결국은 노인에게 좀 더 친화적인, 또 어쩌면 장애인에게도 친화적인 이른바 ‘배리어 프리’나 ‘유니버설 디자인’에 입각한 디지털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들른 기차역 화장실에서 나오니 나를 기다리던 엄마가 역 한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시선이 머무른 곳에는 한 노부부가 무인 물품 보관함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었다. 부부는 한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지문을 찍고 칸을 누르고 카드를 넣어 결제해야 하는 시스템 앞에서 무언가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기차 시간이 촉박한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재촉하며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나 보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던 엄마는 나를 그쪽으로 밀었다. 사회에서 숱하게 겪어온 어른들 탓에 솔직히 처음 보는 어른에게 말을 붙이는 게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게 맞겠거니 하고 그들을 도왔다. 이게 우리 엄마와 아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마도 나의 이야기가 될 거 같기도 했으니까.

글 · 혜화붙박이장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