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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양계장 습격한 수리부엉이를 위한 변호

이 부엉이에게 장발장법을 적용해야 한다

  • 박세회
  • 입력 2019.02.18 14:14
  • 수정 2019.02.18 14:35
ⓒ뉴스1

지난 15일 오전 10시 40분께 한 수리부엉이가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한 양계장을 덮쳤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경찰에 이 부엉이를 잡아 넘긴 사람은 양계장의 주인. 민원인은 1달 동안 이 부엉이가 닭 11마리를 잡아먹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뉴스1에 따르면 경찰에 3시간 가량 구금(?)됐던 수리부엉이는 야생동물보호협회에 넘겨져 인근 야산에 방생됐다. 보호해야 할 야생동물이기 때문이다. 

1982년에 천연기념물 제324호로 지정된 수리부엉이는 부엉이류 중 가장 큰 종으로 마릿 수가 적어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돼 있다. 

이 사건 이후 여러 매체는 이 수리부엉이를 ‘무법자‘라 부르며 사람으로 따지면 ‘재물손괴’에 해당하는 범죄 혐의가 있다고 보도했다. 누군가는 이 부엉이에게 ”연쇄살계조”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 야생의 수리부엉이에겐 죄가 없다. 

충북야생동물센터 관계자는 허프포스트에 “2월은 번식철이다. 수리부엉이가 민가가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는 건 그만큼 먹이를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높은 산에 서식하는 수리부엉이는 11~12월에 둥지를 정하고 한겨울인 1~2월에 알을 낳는다. 일부일처제라 암컷은 알을 낳은 후 품는 일을 담당하고 수컷이 먹이를 구해 둥지로 나른다. 알이 부화하고 나면 암컷이 먹이를 나르는 경우도 있다.

야생동물센터 관계자는 ”수컷은 개체 크기가 작은 경우가 많아서 새끼가 부화한 암컷이 아닐까 생각한다”라며 ”시기상 봤을 때 새끼에게 먹이를 나르던 어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 번식 시기에 암수 중 하나가 잘못되면 번식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이탈리아 대법원은 지난 2016년 배고픈 자가 치즈와 소시지를 훔친 사건이 ’긴급사태에 해당한다’며 무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물며 죄인 걸 알고 죄를 짓는 인간도 긴급사태에는 무죄판결을 받는데, 어느 누가 새끼 있는 부엉이가 양계장을 습격했다고 나무랄 수 있겠는가?

특히 수리부엉이의 개체수가 줄어든 것이 인간 때문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한국자연환경보전협회에 따르면 수리부엉이는 그 간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낭설, 발톱이 잡귀를 막는다는 미신 때문에 밀렵의 대상이 되어 왔다. 1960~70년대 전개한 쥐잡기 운동 역시 개체수 감소에 한몫을 했다.

수리부엉이가 쥐약을 먹은 쥐를 먹고 중독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골프장 조성, 도로 건설, 바위산 골재 채취 등으로 인한 서식지의 감소 역시 수리부엉이의 개체 수가 줄어들게 만든 원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문의·미원파출소, 청주시 관계자 및 야생동물센터 관계자들이 내린 판단은 적절했다. 

수리부엉이를 방생에 관여한 청주시 관계자는 ”수리부엉이의 활동 범위는 보통 3km”라며 ”최초에 잡힌 곳에서 너무 멀리 방생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해 1.5Km 떨어진 곳에 방생했다”고 밝혔다.

민원인의 입장을 생각해 더 먼 곳에 방생할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더 먼 곳에 방생하면 그곳에 사는 수리부엉이와의 영역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충북야생동물센터 관계자는 ″피해를 본 양계장 측에는 안타깝지만, 수리부엉이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사육 시설을 관리하는 게 급선무다”라며 ”삵이나 부엉이의 피해를 본 사육 시설을 보면 닭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막아 놓은 정도인 경우가 많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라도 외부에서 야생동물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튼튼하게 개보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야생동물을 지키는 방편이기도 하다. 이 관계자는 ”이번 경우에는 다행스럽게도 양계장 주인이 수리부엉이가 천연기념물이라는 걸 알아보고 경찰서에 인계했지만, 잘 모르고 그냥 죽이는 경우도 있다”라며 “삵의 경우엔 창애(포획 도구)에 걸려 발이 잘려 오기도 한다”고 밝혔다.

ⓒ뉴스1

이 관계자는 또한 ”만약 사육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게 된다면, 이 야생동물을 죽이려 할 게 아니라 ‘야생동물과 같이 먹고 사는 처지’라는 걸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며 ”우리나라에서 양계장을 습격하는 동물들은 대부분이 멸종 위기종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문의면사무소 측은 허프포스트에 ”인근 마을에서 소규모로 33개 농가가 600여 마리의 닭을 기르고 있다”라며 ”야생 동물의 피해로 인한 배상책은 따로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야생동물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울타리를 짓는 데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청주시 전체에 3억원 정도 예산이 책정되어 있고 본인 부담이 40% 정도다. 이번에는 유해조수퇴치기를 신청한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닭 11마리를 잡아먹은 수리부엉이의 사례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야 할지, 정책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해 좀 더 깊은 의문을 던진다. 

박세회 sehoi.park@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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